노동훈 편한자리의원 원장 
노동훈 편한자리의원 원장

[의학신문·일간보사] 금요일 밤 9시 서초동 보호자에게 전화가 왔다. 93세 여성 환자로 식사를 못해 영양제 말고 지금수액을 맞겠다고 한다. 잠실의 보호자는 새벽 6시에 전화를 했다. 콧줄(L-tube)이 빠졌으니 지금와서 해 달라 한다. 금요일 저녁 경기도 양주에서 의사소견서 작성으로 지금방문해 달라고 한다. 방문 진료를 하면서 제 전화번호를 묻는 보호자가 있지만, 가급적 알려드리지 않는다. 위와 같은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대학병원 외래에서 20분을 기다렸다고 분통을 터트린 뉴스를 봤다. 대한민국은 의사 숫자가 부족하다고 한다. 그래서 의대 정원을 매년 2천 명씩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부의 주장은 엉터리다. 우리 국민들의 인식 속에 의사는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다. 의사를 만나는 것이 쉬우니, 아무 때나 연락해서 지금 당장 방문 진료 해 달라 한다. 그래서 제 번호를 드리지 않는다.

정부가 좋아하는 OECD 평균 의사를 만나는 시간과 한국에서 의사(특히 전문의)를 만나는 시간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해외 교포는 귀국해서 의료 서비스를 받는다. 해외에서 병의원을 방문해 본 국민은 대한민국 의료가 저렴하면서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의사 파업이 없다고 한다. 영국의 자랑 NHS, 전공의 최장 기간 파업을 한다고 한다. 국민이 깨어나야 한다.

정부는 의사 숫자가 부족하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필수의료 패키지를 발표했다. 생명을 살리는 필수의료는 의대 쏠림 현상에도 불구하고 부족하다. 업무량에 비해 보상이 적기 때문이다. 높은 업무 강도, 고난이도 의료에 비해 보상이 적고, 의료 소송 등 위험에 직면해 있다. 의료 소송으로 손해 배상하면 다른 길을 찾게 된다. 비 급여 진료 영역인 피부과, 성형외과로 쏠리는 이유다.

정부는 2035년 우리나라 의사 숫자가 15천 명이 부족하다고 한다. 2025년부터 2천명의 의대생을 증원한다 했다. 부족한 의사 1만 명을 충원하고, 필수의료 강화 정책으로 5천 명의 의사를 끌어들여 부족한 의사 15천 명을 채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복지부가 제시한 3개의 논문(서울의대 홍윤철 교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KDI)은 논리와 근거가 부족하며,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홍윤철 교수는 의사 부족은 지방과 필수의료에서 발생하며, 지금 의료 시스템에서 의사를 늘리면 수도권 피부과와 성형외과만 증가할 것이라 한다. 의사 숫자를 늘리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는 말이다. KDI 논문도 2030년까지 의대 정원을 매년 5%씩 점진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한다. 한 번에 2000명 증원해야 한다는 보건복지부의 주장과도 다르다. 정책의 근거가 되는 3개의 논문 중 2개가 잘못된 근거이다.

정부는 필수의료 패키지로 5년간 10조 이상 투여하고 다양한 정책을 통해 필수 의료로 의사가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의사 숫자가 늘어나면 낙수 효과로 필수 의료 의사 숫자가 늘어날 것이라 한다. 정부의 다른 정책도 실효성이 부족하며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 예상된다. 의사가 원하는 것은 당장의 처우 개선인데, 정부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국민들은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이라 치부한다.

2000년 의약분업을 할 때 정부와 약사, 국민들은 의약분업을 찬성했다. 당시 언론을 보면 의사는 비도덕적이며 돈만 밝히는 집단으로 매도되었다. 결국 의약분업은 실시되었다. 약사의 조제료가 발생했고, 2003년 건강보험 재정은 파탄 났다. 재정이 건전한 직장보험과 상대적으로 약했던 지역보험을 통합해 위기를 극복했다. 의사 집단을 매도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사태가 올바른 방향으로 해결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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