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훈 
노동훈
편한자리의원 원장

[의학신문·일간보사] 2000년 의약분업을 실시했다. 의사는 처방전을 발행하고 약은 약국에서 조제하는 방식이었다. 항생제 오남용을 줄이고, 의사의 리베이트를 줄이는 등 의료 시스템을 선진화하는 것이 명분이었다. 당시 언론에 비친 의사는 탐욕스럽고 돈만 밝히는 모습으로 비쳤다. 정부는 의약분업을 강행했고, 약사회는 찬성했다. 국민의 80% 이상은 의약분업을 찬성했다. 예과 2학년 때였는데, 버스를 타고 과천, 보라매병원 등지에서 투쟁을 했던 기억이 있다.

2011년 전문의를 취득 후 안동에서 약국을 개설한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94학번이 계층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는 마지막 학번이었다고 한다. 94년에 약대에 입학해 2년 만에 병역을 마치고, 2000년에 졸업하고 대학병원 앞에 약국을 차렸다면 인생이 풀렸을 거라 했다. 실제로 정보가 빠른 약사들은 대학병원 앞으로 옮겼고, 일부는 병의원 밑으로 약국을 옮겼다. 1980년대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던 약국은 사라졌다.

정부는 약제비를 줄이기 위해 성분명 처방을 강행했다. 생물학적 동등성이 같은 약은 효과가 같으니, 의사가 처방한 약을 약사가 변경 조제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면서 복제약 사용을 권장했다. 약제비를 줄이기 위해서지만, 당시 막대한 이득을 얻은 제약사도 있었다. 100원하는 타이레놀 대신 20원 복제 약을 70원으로 가격을 올렸기 때문이다. 의사의 반발을 잠재우려 수가를 올렸고, 당시 대학병원 교수를 중심으로 개원 러시가 일었다.

이후에 문제가 생겼다. 2003년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 났다. 약사의 조제료가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킨 것이다. 상대적으로 재정이 건전한 직장 보험과 취약한 지역 보험을 통합함으로 건강보험을 재정비했다. 의약분업을 통해 원래의 목적을 얻었는지, 국민의 의료 안전성, 접근성, 편리성은 개선되었는지 궁금하다. 고령자 방문 진료를 하는데 약 배달 문제는 여전히 풀기 어려운 문제다. 의약분업 정책이 성공적인지 의문이다.

20년 전과는 다르지만 유사한 문제가 발생했다. 대한민국은 의사 숫자가 부족하며, 응급실 뺑뺑이 등 필수의료 공백이 생겼다. 국민들의 의료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의대 정원을 한 번에 2000명을 늘리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의사 숫자는 OECD 기준 뒤에서 2번째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의료 수가는 OECD 평균 이하라는 사실은 감춘다. 일본도 인구 1000명 당 의사 숫자가 2.6명으로 같지만 의료 수가는 한국의 5배에 달한다.

방문 진료를 하면서 환자들이 묻는다. 의사들이 자기 욕심만 챙기려 파업을 한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방문 진료 대상자들은 고령자가 많고, 의약 분업 이전의 의료를 경험했다. 필자는 되물어 보았다. 의약분업 후 병의원과 약국 이용이 편해지셨는지. 의약분업 당시에도 의사들은 돈만 밝히는 집단으로 언론에 묘사되었다. 20년의 시차가 있지만, 지금도 같은 전개가 이뤄진다. 연봉 10억을 제시해도 의사를 못 구한다는 자극적인 뉴스와 함께.

의사들이 필수의료에 지원하지 않는 근본적인 대책은 없다. 매년 3000명의 의사가 나오지만 상대적으로 덜 힘들고 위험이 적으면서 수익이 좋은 비급여 시장으로 가는지에 대한 분석도 없다. 건강보험과 국고 보조금으로 매년 100조 가까운 비용이 나가는데, 의대생 정원 2000명이 늘어난다면 추가로 지출되는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논의도 없다. 현재 건강보험은 8% 룰이 있는데, 어느 정권에서 깨질 것인가 조마조마한 심정이다.

대한민국 의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깊이 있는 분석은 없고, 자극적으로 의대생 숫자만 늘리면 된다고 한다. 의약분업 강행 때의 악몽이 떠오르는 것은 기우일까. 필자는 보험과 진료를 한다. 하지만 보험 진료만으로는 의료기관을 운영하기 어렵다. 요양병원을 운영하면서 진 빚을 어떻게 갚을지 마음이 답답하다. 보험과 진료를 해도 수익을 보전할 수 있고, 불가항력적인 의료 사고에 의사가 희생되지 않아야 필수 의료로 의사가 갈 것이다.

정부는 의약분업 강행 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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