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AI 혁신신약 개발 잠재력 갖추고 있다

황재성 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신약개발지원센터 책임연구원
황재성
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신약개발지원센터 책임연구원

[의학신문·일간보사]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인 2016년 3월에 구글(Google)의 자회사 딥마이드(DeepMind)가 제작한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 불패소년 쎈돌로 불리던 이세돌 9단과의 대결에서 인간의 충격적인 패배 이후부터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AI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산업계의 혁신은 2023년에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가 선정한 과학계를 빛낸 10인에 비인간으로는 처음으로 이름을 올리게 된 챗GPT(ChatGPT)와 같은 초거대 생성형 인공지능 열풍까지 휘몰아치며 4차산업시대의 핵심 아이템으로 자리를 잡아 왔다.

컴퓨터와 신약개발과의 밀접한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서 역사를 조금 더 올라가 1946년 최초의 컴퓨터라고 불리는 에니악(ENIAC) 이후 트랜지스터가 상용화되기 시작하는 1962년부터 곧바로 코윈 한슈(Corwin Hansch) 교수에 의해 컴퓨터를 이용한 신규 화합물 디자인이 개발되었을 만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의 인공지능 기술 발전은 제약·바이오 관련 산업계에서는 절대 놓칠 수 없는 기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세계 AI 신약개발 시장은 연평균 45.7% 성장해 2027년에는 40억 350만 달러(약 5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이를 증명하듯 해외 주요 제약기업들은 신약개발에 AI를 활용하기 위해 수천 억윈의 비용을 들여 AI 신약개발 전문업체들과의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한편, 화이자의 디지털혁신센터, 아스트라제네카의 데이터사이언스&인공지능센터, 사노피의 AI신약개발가속센터 등은 독자적 연구시설을 설립하여 수백명에서 많게는 천명 이상의 관련 연구원들을 채용하고 있다.

기존 주요 제약기업들의 AI 도입 물결도 거세지만 이와 반대의 융합작용으로 구글, 아마존(Amazon), 엔비디아(Nvidia)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초거대 IT 기업들도 자사의 신약개발 AI플랫폼을 개발하여 제약기업에 제공하거나 협업을 통한 신약연구를 수행하고 있어 언제든 단백질 구조 예측의 이정표를 세웠던 3년 전의 알파폴드(AlphaFold) 충격이 연구 현장에 전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러한 거대한 시대적 물결에 직면한 우리 제약바이오기업들도 AI 전담부서 설치, 자체 AI 플랫폼 구축, 약 90건에 이르는 국내외 AI 기업과의 협업 연구 및 지분 참여를 통하여 지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투자를 진행하고 있으나, 막대한 자금을 연구개발비로 사용하는 주요 글로벌 제약기업인 로슈(15.4조원), J&J(14.2조원), BMS(13조원) 등과 비교하면 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비에 사용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 매출 3대 제약기업의 연구개발비는 4천억원 이하 수준으로 세계 3대 제약기업의 2~3% 수준밖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 규모의 경제로는 따라붙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연구개발비의 차이는 신약개발 기술력의 차이로도 나타나 절대강자 미국을 100%의 기술력으로 보았을 때 유럽 93%, 일본 90%, 한국 78% 순을 보이며, 한국은 미국과 비교해 약 3~4년의 기술격차를 보이는 것으로 파악된다.

산업계의 투자와 함께 다가오는 AI 뉴노멀(New-Normal) 시대를 주도하기 위하여 세계 각국은 앞다퉈 AI 발전 전략을 세우고 신약개발 분야에도 많은 정부예산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AI 신약개발 분야에 대한 투자를 시작하여 2019년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보건복지부가 인공지능을 활용한 신약개발 플랫폼 구축사업(후보물질 디자인, 뇌질환선도물질 탐색, 항암신약 후보물질 개발, 신약후보물질 도출, 항암표적약물 재창출, 면역항암제 부작용 예측 등 6개 분야)에 258억원을 3년간 공동 투입하였으며, 2022년부터는 후보물질을 도출하여 임상시험 신청단계까지 끌고 가는 AI 신약개발 플랫폼 고도화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위와 같은 눈에 보이는 AI 신약개발 사업을 포함하여 AI신약개발지원센터(이하 AI센터)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23년 5월 기준 AI신약 개발 누적 투자유치 금액은 6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 6년의 시간 동안 6000억원이라는 투자금액은 보는 시각에 따라 금액을 크게 느낄 수도 있고, 작게 느낄 수도 있는 금액이라는 생각이지만, AI 신약개발에 투자하기 시작한 후 이제 3~4년 후면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게 되는 상황이라 하이프 사이클의 기술 발전 단계상 AI 신약개발 관련 업체들에게는 현재가 가장 힘든 시기라고 느낄 것이다.

국내외적인 상황으로 전체적인 신약개발 스타트업 회사로의 투자가 얼어붙은 상황에 더하여, 인공지능을 이용한 신약개발 스타트업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원래의 기대했던 흥분이 사라지고 빠르게 기술을 받아들였던 얼리어답터(Early Adopter)가 성능 문제에 대해 의문을 품고 투자사들은 낮은 투자이익률(ROI)에 고민하게 되는 환멸의 최저점(Trough of Disillusionment) 상태를 향해 가는 단계이기에, 미래와 잠재력은 크다고 모두 공감하지만 투자와 가시적 성과의 간극으로 현재 매우 어려운 국면에 있다.

최다 투자금과 기술력의 미국이 AI 생명공학 특허만 약 600여개 보유하는 등 우리보다는 앞서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까지의 정부의 투자와 관심으로 인해 우리도 충분한 경쟁력과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필자의 눈으로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관련 업계 분들의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회사명은 적시하지 않도록 하겠다.)

일단 인간과 인공지능의 바둑 대결이 열렸던 2016년에 고작 2개였던 국내 기업의 AI 신약개발 파이프라인이 수적으로 10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제는 이렇게 늘어난 파이프라인이 AI가 예측한 바와 같이 실제 임상에서 일반적 신약개발보다 성공확률이 높다는 것을 확인하는 단계까지는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영국에서 발간하는 전문 조사 업체인 딥파마 인텔리젼스(Deep Pharma Intelligence)의 2023년 1분기 AI 신약개발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50대 AI 신약개발 기업 중에 우리나라 기업 3군데가 포함되어 있다. 2022년 기준 매출액으로 국내 전통 제약사 중 가장 높은 매출액을 기록하는 기업의 매출 세계 순위가 80~90위권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AI 신약개발 관련 업체의 세계에서의 경쟁력을 간접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

역시 2023년 초,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파마슈티컬스 저널(Pharmaceuticals Journal)에 글로벌 AI 신약개발 사례 중 최근 10년간 항암제 설계에 AI를 적용해 임상 진입에 성공한 글로벌 사례 5건을 소개했는데, 시가 총액이 1조원을 넘는 나스닥 상장사 리커젼(Recursion)과 릴레이 테라퓨틱스(Relay Therapeutics)를 비롯해 엑싸이언티아(Exscientia), 베르그(Berg) 등 유수의 글로벌 AI 신약개발사들과 국내 기업 한 곳이 언급됐다.

더불어 2023년 9월에 보고된 신약개발 관련 리서치 그룹인 코텔리스(Cortellis)사에 따르면 주목해야 할 7개 AI/ML 기업 중에 우리나라의 한 개 기업이 올라가 있다. AI 기술 대두 초기 기대했던 3개월에 하나씩의 유효물질 확보와 같은 성과는 없었다고 하지만,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이만한 성과를 낸 분야도 많지 않을 것이다. AI 신약개발에 대한 지속적인 정부의 관심과 투자로 신약개발에서 인공지능의 실제적인 이점이 임상성공 등으로 확인되고, 제약·바이오 업계에 혁신이 적용되는 시기가 발생하는 깨달음의 기울기(Slope of Enlightenment)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한국인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과 K-멜로디와 같은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가 추가되도록 정부의 지원을 바란다.

아울러 이러한 투자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은 AI 신약개발과 관련된 전문인력의 배출이다. 보건복지부의 ‘디지털바이오헬스 인재양성 방안’의 하나로 한국제약바이오협회의 AI센터를 통하여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2021년 9월 개설된 AI신약개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5000명 이상의 인원이 온라인 수강하였으며, 40여명의 선별을 통해 국내 최고의 교수님과 현업 연구원들을 강사로 하는 오프라인 멘토링 교육으로 인재 양성에 힘써 급성장하고 있는 AI신약개발 산업에 비해 부족한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사업은 정부의 관심속에 지속적으로 운영이 되어 통상 6~12년이 걸리는 대학의 석박사급 고급인재 양성에 걸리는 공백을 메워 우주산업처럼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AI 신약개발 산업의 도약의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때 MS 워드 자격증이 몇몇 사람의 자격을 증명하는 세상이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제약사의 연구원들이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되었듯이, 파이썬(Phython) 코드를 이용한 AI 신약개발 도구들은 제약사 연구원이라면 자연스럽게 사용해야 할 시기가 머지않아 올 것 이라는 생각이다. 올해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 제약사의 연구원이라면 혹은 제약회사에 꿈이 있는 청소년들이라면 새해의 계획으로 AI센터의 온라인 강좌(www.laidd.org/)를 한번 시청해 보기를 권해본다.

- 황재성 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신약개발지원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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