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 법적 리스크 완화 필요하다!

전성훈&nbsp;<br>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
전성훈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

[의학신문·일간보사] 필수의료의 붕괴는 두려운 예측이 아니라 이미 현실이다. 미용성형과 같은 일부 분야의 외견상 호황에 가려진 우리 의료제도의 본질적 왜곡은 이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의료의 본질보다 효율을 추구하며 세계가 놀라워하는 의료 접근성과 진료 수준을 초단기간에 이뤄냈지만, 여기에 안주하면서 문제 해결을 외면한 대가이다.

문제의 원인은 명확하다. 필수의료에 대한 ‘터무니없는 저수가’와 ‘과도한 형사처벌’이다. 의료계는 10년 전부터 이런 상황과 원인을 경고해 왔다. 정부는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먼저 의료인의 법적 리스크 완화 방안을 찾기 시작했고, ‘의료분쟁 제도개선 협의체’를 구성해 환자단체·시민단체·법조계·의료계와 협의하고 있다.

의료계는 지속적으로 ‘의료분쟁 특례법’ 제정을 주장하고 있다. 이 법의 이름은 생소할 수 있지만, 그 내용은 생소하지 않다. 이 법은 1982년부터 시행 중인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교특법)’과 유사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의학적 의료행위 처벌하지 말아야

교특법은 일정한 확률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교통사고를 처리하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교특법은 교통사고 발생 시 종합보험에 가입하여 피해자에 대해 충분한 보상이 가능한 것을 전제로, 이른바 12대 중과실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처벌하지 않는다.

의료분쟁 특례법 역시 마찬가지이다. 의료분쟁 발생 시 종합보험 등에 가입하여 환자에 대해 충분한 보상이 가능한 것을 전제로, 의학적 근거 없는 의료행위 등 문제 있는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처벌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러한 입법을 통해 의료인은 정당한 의료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환자는 소송 같은 어려운 법적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의료사고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 의료분쟁 특례법 입법 논의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들이 있다. 첫째, 의료행위의 본질상 의료과실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이른바 그레이 존(gray zone)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입법이 되어야 한다. 기존의 방식대로 그레이존을 최대한 흑백으로 다시 구분 지으려 한다면,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둘째, 일부에서 형사면책의 전제로 주장하는 ‘입증책임 전환’ 주장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므로 절대 불가하다. 가령 사망이라는 악결과가 의료인이 전적으로 잘못하여 발생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환자의 고령이나 기왕증에 기인한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럼에도 입증책임을 통째로 전환하여 의료인에게 무과실을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며, 입증책임과 관련한 법조계의 입장과도 맞지 않는다.

셋째, 심각한 의료분쟁이 발생하는 경우는 대부분 환자가 사망한 경우이므로, 사망도 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는 고액 보상이 필요한 환자나 유족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입법의 실효성을 얻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넷째, 단순한 의학적 소견과 법적 구속력 있는 감정 의견은 전혀 다른 것이므로, 감정인 자격 요건을 강화하여 전문학회 등의 일정한 감정교육을 이수한 의료인에게만 감정인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 또한 복수감정, 집단감정을 더욱 활성화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는 감정의 공정성·객관성·신속성의 제고를 주장해 온 시민단체, 환자단체의 주장과도 부합한다.

의료분쟁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비용의 급증은 그 자체로도 심각한 문제이고, 동시에 필수의료의 붕괴를 가속화하고 있다. 정당한 의료행위를 제공했음에도 형사고소로 고통받는 의료인이 계속 나오는 한, 의료인의 필수의료 기피현상과 그에 따른 필수의료의 붕괴를 막기는 어렵다. 의료인의 법적 리스크 완화가 곧 국민의 의료적 리스크 완화이다. 국민의 의료적 리스크 완화를 위해 정부가 전향적인 태도로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 전성훈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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