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뺑뺑이, 의사수 늘려서 해결 못한다

우봉식&nbsp;<br>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

[의학신문·일간보사] 언론에 ‘응급실 뺑뺑이’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필수의료 붕괴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커지자 정부가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이 OECD 국가에 비해 우리나라 의사 수가 부족해서 생긴 것이라며 의사를 늘려야 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의 응급실 내원환자는 전체 환자의 10% 이내만 진짜 응급환자(KTAS 레벨 1~2)고, 나머지는 비응급환자다. 이들은 대부분 야간이나 휴일에 이용할 만한 의료기관이 없거나, 빨리 치료받고 싶거나, 입원 대기를 위해 내원한 환자들이다. 이러한 비응급환자의 응급실 이용은 응급실 과밀화를 초래하여 응급실 뺑뺑이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는 2012년 ‘119 구조·구급에 관한 법률(119법)’ 개정으로, 응급의료정보센터가 119로 흡수·통합되면서 우려했던 일이다. 응급의료정보센터는 80년대 말 부산과 대구에서 교통사고 환자가 병원을 전전하다가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1991년 7월 ‘적십자 129 응급환자센터’라는 이름으로 개설되었다. 그 후 1997년 2월에는 129에서 1339로 번호를 바꿔 환자 이송은 119가 전담하되, 이송중인 구급차에 대한 처치 지도, 병원 안내 및 질병 상담 등은 1339가 하도록 업무가 조정되었다.

1339의 주된 업무는 의료기관에 관한 정보의 제공이었으며, 전문과목, 진료시간, 병상과 장비 현황 등에 대한 실시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놓고 환자나 119구급대원에게 어느 병원으로 가야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를 안내하는 업무를 공중보건의사의 주관하에 시행했다. 1339가 활성화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병원간 전원 조정 업무도 활성화되기 시작했었다.

1339의 역할 중에는 비응급전화(nonemergency telephone number) 기능이 있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자신의 증상과 질병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전화상담을 하되, 필요에 따라서는 응급실 이외에도 야간휴일에 문을 여는 개인 의원과 약국 등을 포함한 의료기관을 안내하여 스스로 방문하게 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119로 이관하여 구급차를 출동시키는 업무를 수행했다.

선진국에서도 구급차 출동요청을 의미하는 응급전화와 별도로 비응급전화가 존재한다. 영국의 ‘NHS111’이나 일본의 ‘#7119 또는 #8000(소아)’이 그 예다. 이러한 기능은 경증환자의 구급차 요청 및 응급실의 방문을 줄이고, 응급실의 과밀화를 방지하여 희소한 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돕는다.

반면 구급차 출동을 전제로 하는 응급전화는 미국의 911, 영국의 999, 일본과 우리나라의 119를 들 수 있는 바, 선진국에서는 ‘Emergency Medical Dispatch(EMD, 응급의료디스패치)’라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EMD는 시급한 신고에 대응하여 구급차를 출동시키고 심폐소생술 등의 몇몇 응급처치를 돕는다.

‘응급의료이용통계(2011년)’ 자료에 따르면, 1339 상담 건수는 1339가 폐지되기 직전 2008년(102만393건), 2009년(138만7799건), 2010년(161만5024건), 2011년(193만977건) 등 1339가 국민들에게 잘 인식되어 정착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119로 통합된 1339 기능 유명무실

반면 1339가 119로 통합된 지 10여 년이 지난 후 ‘2023소방청통계연보(2022년)’를 살펴보면, 과거 1339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119구급상황관리센터의 2022년도 상담 건수 181만7535건 중 이송병원 안내는 3만7405건(2.0%)에 불과하였고, 의료상담도 병원 82만4796건(45.3%), 약국 5만5626건(3.0%)이 있으나 환자의 위치 정보를 기반으로 환자 주변에서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이나 약국을 안내하는 정도의 역할에 그치고 있다. 이는 지난 2012년 소방청이 의료상담 기능을 119로 통합하여 원스톱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명분으로 1339 기능을 흡수·통합한 것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것임을 보여준다.

특히 과거의 1339는 응급의료의 핵심업무 중 하나인 최종진료가 가능한 병원으로의 병원간 전원 업무도 행하였다. 전원업무는 응급의료 관련 업무의 최종 종결을 의미하며, 응급실 뺑뺑이를 방지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기능으로, 의료 전문성이 없으면 수행할 수 없는 업무이다. 1339가 전원 업무를 잘 수행했던 이유도 지역의 의료기관 내에서 의사 중심으로 소통이 원활했기 때문이다. 사업이 시작된 2000년 이래 1339가 폐지된 2012년 6월까지의 병원 간 전원 실적이 점차 증가하여 연간 2만 여건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119구급상황관리센터에서는 전원 업무에 관한 통계가 따로 없다.

만일 1339를 유지·발전시켜 나갔더라면 자연스레 야간 응급환자 상담, 의료기관 안내 및 전원기능 등을 담당하게 되면서 응급실 뺑뺑이가 지금처럼 문제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응급의료정보체계의 두뇌부에 해당하는 1339를 119에 통폐합하면서 기능을 없애 버리는 바람에 지금도 119구급대는 환자를 전원할 병원을 찾느라 전화 돌리기에 바쁘다.

2010년과 비교해 2020년 소방 인력은 6만 1000여명으로 2만 5000여명이 증가했고, 예산도 이와 비례해 크게 늘었다. 그러나 신고·상담·이송·전원의 통합 운영체계는 크게 미흡하다. 또한 소방청은 응급환자 분류를 5단계로 평가·분류하여 치료 가능한 적정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 119구급대는 4단계(응급·준응급·잠재응급·대상외) 중증도 분류체계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119구급대의 4단계 분류체계가 병원 응급실에서 사용하는 5단계(소생·긴급·응급·준응급·비응급) 중증도 분류(KTAS)와 기준이 달라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소방기관과 의료기관 간 원활한 소통이 안되어 많은 문제가 제기되었다. 지금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증도를 ‘한국형 병원 전 중증도 분류(Pre-KTAS)’로 통일하기 위한 시범사업을 하고 있을 뿐이며, 응급환자 5단계 분류는 아직 전면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일선 구급대에서는 Pre-KTAS의 시행으로 구급대의 응급실 뺑뺑이가 전면 해소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Pre-KTAS는 ‘적절한 환자를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병원에’라는 응급의료체계 목적의 달성을 위한 큰 시스템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응급실 뺑뺑이, 응급의료체계 문제

이처럼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이 의사수 부족이 아니라, 응급의료체계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의대정원을 늘리고, 대학병원 의사 수를 대폭 늘리고, 응급환자를 수용 못하면 처벌한다며 엄포를 놓고만 있다.

중증응급환자의 치료는 응급실에서 완결할 수가 없다. 응급실은 환자의 응급치료를 위한 시설이지 최종 치료를 하는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환자가 적기에 적정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여건도 안되는 상황에서 무조건 응급실에서 수용했다가 사망 사건 생기면 또 의사와 병원 탓하며 거액의 배상금을 내놓으라고 소송까지 한다.

이러한 상황에 문제의 해결은 하지 못한 채 처벌로만 내달리면 이는 응급의학과 전공의 기피로 이어지면서 결국 응급의료체계의 붕괴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응급실 뺑뺑이를 없애려면 응급의료체계 전반의 개선이 필요하다. 경증 환자의 응급실 이용을 억제하고, 비응급환자 상담을 위한 전화(1339)를 부활하고, 최종 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에 대한 실시간 운영현황에 관한 정보체계를 구축해야한다. 그렇지 않고 처벌만 강화하고, 응급실 뺑뺑이를 빌미로 총선 전략 차원에서 의대정원을 증원하려는 발상으로는 오히려 사태만 악화시킬 뿐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책무가 있다.

-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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