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담 유형준 교수의 의사 문인 열전(91)

유형준 의사 문인 열전

[의학신문·일간보사]

1940년대 홍콩, 유라시안 미망인 의사와 미국 유부남 특파원 기자의 불륜한, 그러나 찬란한 사랑 이야기, 영화 모정(慕情)(1955)의 원작 소설을 쓴 한수인(韓素音). 본명은 저우광후(周光瑚)이며, 1917년 허난성 신양에서 태어났다. 중국 쓰촨성 지주 가문 출신의, 철도 엔지니어 아버지는 벨기에 유학 중 귀족 가문 출신의 어머니를 만났다. 한수인은 동급생들로부터 유라시아 아이라 불리며 베이징에서 가톨릭 선교학교에 다녔다.

한수인
한수인

딸이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자 중국에서의 삶이 불행한 어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유라시안들은 모두 의사가 되고 싶어 해. 그것이 사회적 수용으로 가는 길이다.” 자신의 바람대로 열일곱 살에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베이징의 옌칭대학교에 입학했고, 이듬해 장학금을 받아 벨기에 브뤼셀에서 계속 공부했다. 이 년 후 중국으로 돌아와 장개석의 국민당 소속 젊은 군 장교를 만나 결혼했다. 며칠 후 우한이 일본군에 함락되자, 부부는 장개석을 따라 내륙 충칭으로 도피했다. 그곳에서 미국 선교병원에서 조산사로 일했다. 당시 선교사 의사의 격려에 힘입어, 남편과 함께한 위태로운 여정을 글로 썼고, 이 소설은 스물다섯 살에 소설 행선지 중경으로 출간되었다. 같은 해 런던으로 가서, 로열 프리(Royal Free) 병원에서 의료 수련을 재개했다. 서른 살에, 남편은 중국에서 공산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다음 해 런던대학교에서 의학 수업을 마치고, 일 년 후에 홍콩으로 딸과 함께 이주하여, 산부인과 레지던트 수련을 마쳤다.

이듬해, 서른세 살 미망인 한수인은 호주계 영국인 기자 유부남 이안 모리슨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이안 모리슨은 종군기자로 갔던 한국 전쟁에서 지뢰가 터져 사망한다. 1950년 한국 전쟁에서 사망한 최초의 언론인 중 한 명이었다.

슬픔에 잠긴 그녀는 그들의 사랑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결과 자서전적인 하 많은 찬란한 것(A Many-Splendoured Thing)(1952)이 탄생했다. 소설은 한수인이라는 인물이 일인칭으로 서술하고 있다, 평론가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에 비유한 금지된 사랑 이야기는 혁명과 로맨스를 혼합해 정치적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윌리엄 홀덴과 제니퍼 존스 주연의 영화 모정에서, 수인이 마크의 사망 소식을 듣고 집을 뛰쳐나와, 둘의 추억이 어린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달려 올라가 흐느끼는 장면은, 관객들의 가슴에 찬란한 슬픔으로 남았다. 소설 모정으로 한수인은 일약 세계 문단의 신데렐라가 되었고, 영화 모정1950년대 홍콩을 세계적 관광 도시로 급부상시켰다.

소설 끝부분에 이안이 한국전선에서 보내온 스물한 통의 편지를 그대로 실었다. 이안의 사망 소식을 신문보도를 보고 알고 난 뒤에, 편지가 오기 시작했다. “그의 생생한 종이, 필적, 표현들이 내 손 아래 있는데 어찌 죽었다고 할 수 있을까? 한 통 한 통 3주간에 걸쳐 편지가 왔다.” 드디어 마지막 편지가 도착했다. 이제 더 이상 편지가 올 수 없었다. 한수인은, “타자기에 종이 한 장을 끼웠다. 그리곤 모정을 쓰기 시작했다.”

문학적 명성과 재정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한수인은 1950년대까지 말레이 반도 최남단 조호바루(Johor Bahru)시에서 약 십 년 동안 가정의학 일반의 개원을 계속했다. 당시 풍토병이었던 결핵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바쁜 진료 중에도 창작을 멈추지 않았고, 두 권의 소설을 냈다. 점차 여의사 한수인의 취미이자 열정이었던 글쓰기는 의사 한수인을 압도해 갔다. 마흔여섯 살, 마침내 그녀는 의업을 접고, 글 쓰는 데 집중했다. 의사 한수인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의사들은 선견자와 성직자들이 한때 받았던 경의와 존경심을 받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권력을 향한 우리의 욕망은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삶과 죽음을 지배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패한 일인지 상상해 보십시오.” 아시아의 역사적 세대 격변을 배경으로 한, 이십여 권의 소설과 다수의 논픽션, 회고록, 에세이를 썼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그리고 그 모든 동기와 전개와 결말을 찬란하다고 흐느꼈던, 본디 의사였던, 작가 한수인을 평자들은 이렇게 줄여 말한다. “중국의 3세대를 포괄한다. 과거와 현재의 문화가, 개인과 국가가, 그리고 다른 이념들이 교차하는 작가였다.”

2012년 스위스 로잔 자택에서 구십오 년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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