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담 유형준 교수의 의사 문인 열전(82)

유형준 의사 문인 열전

[의학신문·일간보사]

1951년 가을, 스물일곱 살의 젊은 미군 군의관 리처드 혼버거(Hiester Richard Hornberger Jr. 1924~1997)가 38선 바로 아래에 위치한 제8055 육군 이동 외과 병원에 부임되어 왔다. 부족한 군의관 수를 충족하기 위해 발령한 의사 징집에 따른 것이었다. 치열한 전쟁으로 가중되는 업무 중에도, 육군 의무대 대위 혼버거는 유머가 넘치는 매우 좋은 외과 의사였다.

한국 전쟁 후 메인주로 돌아와, 재향군인회 병원 외과에서 근무하며 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워터빌(Waterville)에서 개원하다가, 브로드 코브(Broad Cove) 해변마을로 옮겨 진료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한국 전쟁은 잊혀 갔지만, 혼버거에게선 그렇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1956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군 이동 외과 병원의 외과 의사들은 대부분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극도의 고된 노동, 긴장, 지루함, 더위, 추위, 좌절, 그리고 만족과 여유에 노출되었다. 일관성과 일상이 헝클어지고, 때론 사라져 버린 듯한 상실감은 이전의 민간인 행동 양식과 일치하지 않는 행동을 많은 사람에게 일으켰다. 소수는 분노했고, 대부분은 다양한 방식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매시』 초판본(1968년) 표지(왼쪽), 리처드 혼버거(출처. 페디스쿨 인터넷 사이트), 영화포스터(1970년).
『매시』 초판본(1968년) 표지(왼쪽), 리처드 혼버거(출처. 페디스쿨 인터넷 사이트), 영화포스터(1970년).

삼 년 만에 집필을 끝냈다. 그러나 원고를 받아 본 출판사마다 거절했다. 그러던 중, 드디어 출판하게 되었다. 책 제목은 이동 육군 외과병원(Mobile Army Surgical Hospital)의 약자인 『매시(M*A*S*H)』로, ‘세 명의 군의관에 관한 소설’이란 부제를 달았다. 저자 이름은 리처드 후커(Richard Hooker)라는 필명을 썼다. 집필 완료 후 십이 년만인 1968년, 그의 나이 마흔네 살이었다.

『매시』는 “일관된 줄거리가 있는 소설이라기보다는 다소 느슨한 일화 모음집에 가까운 수수한 노력의 열매”라는 정도의 평가와 함께 밍밍한 주목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의 다음과 같은 한 단락 서평은 이 소설의 모자람을 넉넉히 벌충하였다. “연속성이 거의 없지만 여러 가지 색상의 삽화가 풍부하다. 촬영 대본이나 연속 기획물로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뉴욕타임스》의 평은 적확했다. 로버트 올트먼(Robert Altman)이 감독 제작한 영화 <매시( M*A*S*H)>는 1970년 개봉과 함께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다섯 개의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고,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열네 개의 에미상을 수상했다. 우리나라에선 <맛슈>란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더구나 1972년부터 1983년까지 방영된 미국 CBS 텔레비전 시리즈 <매시>는 시청률을 폭발시켰다. 한 텔레비전 방송국은 <매시> 시리즈의 마지막 방영 당시를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미국의 참전 사실을 모르고 있던 일부 미국인들에게, 한국전쟁은 일억 이천백육십만 명의 시청자가 <M*A*S*H>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시청한 1983년 2월 28일에 끝난 것처럼 보였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이 본 텔레비전 방송이었다.”

이러한 대성공에는 소설 자체의 넉넉한 모자람에 더하여, 개봉 당시 뜨거웠던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라는 사회 상황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매시’는 반전 주제의 징표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도완 전연 상관없이. 평소 외부에 공개되기를 꺼렸던 혼버거는, 별세 한 해 전에 가졌던 매우 드문 인터뷰에서 『매시』를 이야기했다.

“나는 어떤 메시지 전달도 의도하지 않았다. 한국 전쟁의 체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야전병원 수술실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의사들의 진지한 이야기와, 수술실 밖에서 엉뚱한 야단법석으로 스트레스를 누그러뜨리려는 의사들의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온화하게 풍자했을 뿐이다.”

『매시』에 이어 『매시, 메인에 가다』와 『매시 마니아』를 발표했으나 『매시』 보다 못했다.

미국 뉴저지주의 주도인 트렌턴에서 태어난 혼버거는 아버지가 교사였던 페디스쿨(Peddie School)을 마치고, 보든(Bowdoin) 대학과 코넬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예순네 살까지 개원하며 의학 연구에도 집중하여, 《이비후두학 연보》에 <편도선 절제술과 아데노이드 절제술을 동반한 종격동 폐기종>(1958년), 《미국 외과학회지》에 <위 우회술>(1976년) 등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메인주 포틀랜드의 한 병원에서 백혈병으로 일흔세 살의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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