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안병정 기자] 의대 정원 확대 논의가 본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방법이나 내용은 지켜봐야겠지만 일단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이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기로 한 것은 큰 진전이다.

그동안 정부는 기회 있을 때 마다 의대정원 확충 당위성을 제시하며 로드맵을 밝혀왔고, 특히 최근 들어 야기된 필수의료 공백 사태와 소아진료 대란, 잇단 응급환자 사망사고 등으로 정치권이나 국민들 사이에 ‘의료체계부실=의사 부족’이라는 등식이 형성되어 있어 논의 자체를 미루기 어려운 사안이다.

이런 배경으로 논의가 ‘공론화’ 됐지만 의료계 내부는 들썩이는 모습이다. 대체로 ‘정원 확대에 왜 합의했느냐’고 의협 집행부를 몰아 세우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대의원회 수임사항을 어기고 있다’며 질타하고 있다. 이에 집행부는 그동안 의료계 내부적으로 제기되었던 각종 대책을 전제조건으로 테이블에 올려놓고 ‘함께 얘기해보자는 것이지, 당장 어떤 결정을 한 것은 아니다’며 해명에 진땀을 흘리는 모습이다.

양쪽 다 나름의 일리는 있어 보이지만 의대정원 문제는 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안이고, 비켜갈 수 없는 현안이다. 그런 중대한 정책적인 문제를 두고 의료계가 분열상을 보인다는 것은 전략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의료현안협의체의 합의문을 보면 그동안 의료계가 제기해 온 제반사항 즉,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미래 의료수요 분석을 통한 필요인력 수급 추계, 사후평가를 통한 정원 재조정 방안, 필수의료 유입을 위한 법적 부담 경감방안, 전공의 수련 및 근무환경 개선방안’ 등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이런 전제가 충실하게 지켜진다면 굳이 협상을 피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오히려 철저한 준비를 다해 협상력을 잘 발휘한다면 왜곡된 의료체계를 바로잡는데 한 걸음 다가서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물론 의사인력만 증원한다고 해서 의료수급상의 제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먼저라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는 것이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의사 인력’에 관한 한 의료계만 빼고 모두가 ‘의사수를 늘려야 한다’는 정서다. 심지어 병원계도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마당에 의료계가 논의 자체를 거부한다면 ‘기득권 카르텔’로 지탄받기 십상이다.

더욱이 의료계 일각에서 “의협이 정부에 말려들었다”고 답답함을 토로하지만, 여론은 “기득권층인 의료계의 요구만 다 들어주고 있다”며 정부를 나무라는 상황이다. 일부 시민사회단체는 “핵심 의료 정책을 이해 당사자인 의사 단체와만 논의해선 안된다”며 협상에 영향력을 행사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의료계가 빈틈을 보여서는 안된다. 혹시라도 정부가 여론이나 정치권의 압력에 떠밀려 왜곡된 의사인력 정책을 만들지 못하도록 밀착 마크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알다시피 내년 초 2025년도 의대입학정원이 확정 될 시기는 총선과 맞물려 있다. 자칫 우물우물 하다가는 정치권이 개입할 빌미를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정책의 큰 흐름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오히려 의료계가 협상에 적극적 이었으면 한다. 당장 의대 정원을 몇 명 늘리느냐 보다, 의대정원을 주기적으로 평가하고 재조정할 수 있는 기전을 만들고, 소위 ‘기피과목’을 최고의 인기과로 만들 수 있는 법률적‧제도적인 틀을 만드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의료계가 단일대오로 협상의 주도권을 쥐었으면 하고, 필요충분조건의 의대정원 정책이 도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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