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담 유형준 교수의 의사 문인 열전(75)

유형준 의사 문인 열전

[의학신문·일간보사]

매혹적 복잡성과 뛰어난 다재다능함을 지닌 소아과 의사이자 작가, 레이폴트(Christiaan Frederik Louis Leipoldt, 1880~1947)는 케이프 식민지(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선교사 부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출생지에서 북쪽으로 수백 마일 떨어진, 선사시대 암벽화와 함께 꽃의 다양성이 풍부한, 클랜윌리암 마을에서 자랐다. 그곳에서 식물 채집을 하던 식물학자 해리 볼러스를 만났다. 세상 현상에 호기심 많은 열여섯 살의 소년과 예순세 살의 식물학자는 이내 가까워졌다. 레이폴트의 꽃에 관한 열정은 노란색 꽃의 화려한 관목인 비보르지엘라 레이폴티아나(Wiborgiella leipoldtiana) 등의 공식 이름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레이폴트, 그의 이름이 붙은 비보르지엘라 레이폴티아나 꽃, 『부쉬벨트 의사』 표지
레이폴트, 그의 이름이 붙은 비보르지엘라 레이폴티아나 꽃, 『부쉬벨트 의사』 표지

볼러스의 제안과 격려를 받아, 스물두 살에 영국 런던의 가이스 병원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졸업 후 외과 보조 인턴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수련 중에, 형편없는 아동 의료의 심각성을 깨닫고 소아과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더 깊은 소아과 경험을 얻기 위해 유럽으로 연구 여행을 떠났다. 런던으로 돌아와 치른 왕립의사회 시험에 떨어졌다. 마침 에드워드 7세와 조지 5세의 외과 주치의인 앨프리드 프립 경의 제안으로, 미국 백만장자이자 신문 발행인인 퓰리처의 어린 아들 주치의로서, 사 개월 동안 퓰리처의 고급 요트 리버티호를 타고 남미의 여러 항구를 방문했다.

스물여덟 살에 재도전하여 영국 왕립의사회 회원이 되어 빅토리아 소아 병원 등에 근무했다. 런던의 학교 부감독관, 남아공 최초의 트랜스발 학교 의료 검사관으로 활동했다. 또한 뒤에 초대 총리가 된 루이스 보타 장군 휘하의 군의관으로서 독일령 남서아프리카 침공에 참전하였다. 제대 후 트란스발로 돌아와 학교 보건 검사관, 프리토리아에 기반을 둔 신문의 부편집장 등을 역임했다.

이태 후, 케이프타운으로 이사하여 소아과 개원을 했다. 남아프리카 최초의 개원 소아과 의사였다. 다음 해 케이프타운 대학의 소아과 시간강사로 임명되었다. 대학에서 “모든 신생아는 수영을 할 수 있다.”, “케이프타운의 어린이들에게는 포도주가 우유보다 안전하다.” 등의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이곤 했다. 결국 교수직을 사임하고, 그루트슈어 병원 명예 상담 소아과의사로 위촉되었고, 남아프리카 의학 저널의 편집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무렵 케이프타운 외곽에 테니스 코트가 딸린 주택을 구입하여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의 숙소로 제공했다.

시, 드라마, 여행기, 탐정 소설, 요리책 등 모든 장르 여러 분야의 글을 두루 썼다. 첫 시집 「게르트 삼촌의 이야기와 다른 시들」은 구어체 아프리칸스어*로 쓰인 독백으로, 전쟁 후 아프리칸스의 굴욕과 항의 감정을 신랄하게 드러내면서, 남아프리카 풍경의 아름다움을 극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학교 의료 감독관 시절의 회고록 『부쉬벨트 의사』(1937년)에서 볼 수 있듯이, 레이폴트는 의학적 문제에 관해 항상 진지했다. 예를 들면, “이곳은 아름다움과 질병이 가까운 이웃처럼 지내는 곳”, “어린이들의 정신적 결함은 영양실조와 말라리아의 결과” 등으로 정착민 자녀의 빈곤 및 영양실조를 기술하였다. 특히, 당시 풍토병이었던 주혈흡충증과 말라리아에 관한 적절한 서술은 예방 의학의 가치를 빛나게 했다고 평가받는다.

레이폴트는 의사로서, 문인, 언론인으로서,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아동전문가로서 시대를 앞서갔다. 백인 의사 수련보다 낮은 기준으로 흑인 의사를 수련시키려는 시도에 끊임없이 반대했고, 인종과 피부색에 관계없이 모든 어린이를 위한 통합 의료 시스템을 중앙 국가 기관에서 운영하도록 강력히 옹호했다.

어린 시절 류마티스열로 심장병을 앓았던 그는 결국 심장병으로 육십칠 세의 삶을 마쳤다. 평생 독신으로, 흥미로운 다양함과 함께 산 의사 작가. 저마다 지어 부르는 자신들만의 노래로 가득 찬 세상에서 조화의 체온(體溫)을 나누고 싶어 했던 의사 문인. 다재다능한 개성이 자신과 세상을 향해 외쳐 부르는 노래 한 소절을 듣는다.

“단 한 줄의 내 오래된 밴조로 / 나는, 달빛 아래에서, 무엇이든 연주한다” - 「나의 오래된 밴조」 부분

*아프리칸스어: 남아프리카에 이주한 네덜란드인이 쓰던 네덜란드어가 현지어의 영향을 받은 언어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공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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