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분야 주요 이슈와 정책과제

전성훈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
전성훈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

[의학신문·일간보사]

영어 ‘라이센스(license)’를 우리는 흔히 ‘면허’로 번역하여 사용한다. 하지만 ‘license’와 ‘면허(免許)’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고, 단어의 발생 연원이 각기 다르다. ‘라이센스’라는 개념은 15세기 초 베네치아 공화국의 유리 제조장인으로부터 비롯되었고, ‘면허’라는 개념은 근세 일본의 사무라이로부터 비롯되었다.

근세 일본에서 면허는 ‘일정한 기예를 연마하는 유파의 본가가 문하생에게 유파 이름을 드러낼 수 있게 허락하는 것’을 지칭했다. 즉 검술, 다도 등에서 유파 간 경쟁이 치열하던 시기, 실력 없는 문하생이 대외적으로 떠버리고 다니다가 망신을 당하면 그 유파의 명성이 떨어지므로, 문하생이 일정 수준에 이르러야 밖에서 ‘나는 OO파이다’라고 칭할 수 있게 허락했던 것이다. 이에서 파생되어, 근대에 이르러 ‘원칙적으로 금지된 특정 행위를 특정인에게 특별히 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 또는 그 허락된 행위’로 그 의미가 확대되었다. 그리고 구한말 일본의 침략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면허와 자격의 의미가 혼동되는 경우가 많다. 자격이란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사회적 위험을 일으킬 가능성이 적은 특정 행위에 대해, 특정인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국가 등이 보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송이나 법률사무는 당연히 본인이 직접 수행할 수 있지만, 여기에 필요한 전문지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에게만 타인의 소송이나 법률사무를 대리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반면 타인의 생명과 안전에 위험을 일으킬 수 있는 특정 행위는, 국가가 이를 금지시키고 엄격한 심사를 거쳐 특정인이 일정 수준에 도달한 것을 확인한 경우에만 다시 허용하며, 그 수준이 유지되고 있는지를 정기적으로 관리한다. 그래서 이를 ‘면허’라 한다. 대표적인 것으로서 의료인면허, 운전면허 등을 들 수 있다. 그래서 타인의 생명과 안전에 위험을 일으킬 가능성이 적은 변호사에게는 자격을 부여하고, 그럴 가능성이 있는 의사에게는 면허를 부여한다.

이처럼 면허는 엄격한 심사 후 부여되고, 관리되기 때문에, 그 박탈 여부 역시 엄격하게 판단된다. 그렇기에 헌법재판소는 변호사의 경우 (의사와 다르게) 변호사 결격사유가 되는 범죄의 종류를 제한하지 않아도 변호사의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다시 말해 변호사는 포괄적 직무범위와 독점적 지위를 가지는 반면, ‘의사는 그 직무범위가 전문영역으로 제한되고 법령에 따라 부담하는 의무도 그 직무영역 관련 범위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비추어 볼 때, 의료인면허의 박탈은 변호사자격의 박탈보다 당연히 더 엄격한 요건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21대 국회 출범 직후인 2020년 6월 권칠승 의원의 발의를 시작으로 8개의 의료인면허 취소사유 확대법이 발의되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이들을 병합심리한 후 2023년 2월 보건복지위원회 대안을 이른바 패스트트랙으로 의결하여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위 법안들이 거의 3년 동안 상임위원회에서 심의되었던 것은, 그만큼 위 법안들이 가진 문제점이 많아 그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었음을 반증한다. 수년간 반복적으로 지적되어 온 위 법안들의 문제점을 간략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평등원칙에 위배된다. 앞서 본 것과 같은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비추어 보면, 범죄 유형에 상관없이 일정 이상의 형사처벌 사실을 의료인면허 취소사유로 삼는 것은 입법재량을 일탈한 자의적이고 불합리한 차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 형 집행 이후 최대 10년까지 의료인이 될 수 없도록 제한하는 것은, 적절한 의료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갖추었음에도 그와 무관한 사유로 지나치게 긴 기간 동안 불이익을 부과하는 것으로서,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 하더라도 그 수단과의 연관성이 존재하는지 매우 의문이다.

셋째,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 의료인면허 취소사유를 직무 관련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로 제한하지 않고 직무와 무관한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까지 확대하는 것은, 앞서 본 의료인면허 재교부 제한기간의 과도함과 더하여 본다면 입법재량을 일탈하여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넷째, 의료인면허 재교부 제한기간을 확대해야 할 타당한 근거가 없다.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은 의료인이 면허 재교부 이후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 면허 재교부 제한기간을 10년까지 확대하거나, 면허 취소 후 재교부 받은 의료인이 다시 자격정지사유에 해당하는 경우 무조건 면허를 취소하는 것은, 다른 제재적 행정처분에서 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심각한 불이익의 가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법안들은 의료인에 한하여 심각하게 불이익을 가중해야 하는 이유에 관해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 않다.

영국이 1858년 세계 최초로 의사면허제도를 실시한 이후 세계 각국은 같은 취지의 제도를 도입했고, 우리나라 역시 대한제국 시기인 1900년 ‘의사규칙’을 제정하고 ‘의사인허장’을 부여함으로써 의사면허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근대국민국가의 탄생 후 국민의 생명과 건강 보호라는 국가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보건의료체계의 근간이 되는 가장 중요한 의료자원인 의사를 보호·관리·육성하고자 했던 당연한 시대적 흐름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의료인면허 취소사유 확대법이 국회 문턱에 서 있다.

국회는 ‘의사 부족’을 주장하며 지역의대 신설 입법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진료와 관련 없는 행위로 처벌받았음을 이유로 더 많은 의사들의 면허를 취소하려 하고 있다. 국민과 의료계는 이러한 대한민국 입법부의 이중적 태도에 혼란스러울 뿐이다. 교통사고나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은 의사가 10년까지 진료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국민의 생명과 건강 보호에 도움이 되는가? 국회는 상식적인 시각에서 의료인면허제도에 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 전성훈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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