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분야 주요 이슈와 정책과제

선우성 대한가정의학회 이사장
선우성 대한가정의학회 이사장

[의학신문·일간보사]

75세 할아버지가 “대변검사 하느라고 힘들었어요”하면서 국가암검진 대변잠혈검사 음성 결과지를 내 놓는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전화로 계속 재촉해서 채변을 하셨다 한다. 지난달에 대변에 피가 묻어 나와서 대장내시경을 하셨던 분이다. 주치의인 나와 상의하셨거나, 주치의인 나에게 이 환자분의 대변검사 검진 안내서를 보냈으면 시행하지 않아도 됐을 검사이다. 이런 상황이 대변검사가 아니라, 위내시경 등으로 벌어졌으면 할아버지는 더 힘드셨고 경제적인 낭비는 더 컸을 것이다.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다제약물관리와 노인주치의제 논의를 위한 공청회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전체 약물사용자 중 5개 이상의 다제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들은 2018년도에 31.7%에 달하였으며 이 비율은 점차 증가 추세에 있다. 또한 다제 약물 복용 비율은 65세 이상에서 10.3%, 85세 이상에서 15.7%로 연령이 증가하면서 높아졌다. 다제 약물의 복용은 화자의 안전문제와 직결됨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며 다제 약물 복용을 줄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노인주치의제도의 시행이다.

초기 코로나 위기 때를 생각해 보자. 발열 등의 증상이 생겼을 때 국민 개개인에게 주치의가 있었다면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어서 상담을 할 수 있다. 전화를 받은 주치의는 내 환자를 안심시킬 수도 있고 내 환자에게 검사를 권하거나 약을 처방할 수도 있다. 주치의가 환자에게 권하는 약은 평소에 드시는 약과 상호작용이 없는 안전한 약일 것이다. 또 평소 환자의 기저 질환 상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으므로 바로 입원을 권유하거나 그 응급의 정도를 질병관리처에 정확히 알릴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 보는 전화번호 1339로 전화해서 생판 처음 목소리 듣는 간호사에게 내 자신의 기저 질병과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 것과 비교가 되겠는가?

이렇듯 국가건강검진의 효율성을 위해서나, 환자 안전을 위해서나, 미지의 감염병 시대를 대비해서도 가장 필요한 보건의료제도가 ‘전국민 주치의제도’이다. 여기에 흔들리는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상태를 고려할 때 ‘전국민 주치의제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필수의료제도인 것이다.

주치의제도의 시행을 위해서는 보건의료 체계의 모든 분야에서 여러 단계의 정책 준비와 제도 정비가 필요할 것이다. 대통령 선거 직전에 대통령 후보를 내었던 4당의 관계자들과 토론회를 열었을 때, 각 당 모두 원칙적으로는 주치의제도에 찬성하였으나 그 시행의 방법과 시기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차이를 보였었다. 그렇지만 어떤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시작을 하던 일단 이런 변화의 큰 축을 담당할 ‘일차의료정책국’같은 전담 부서가 필요할 것이다. 이 부서에서 시범사업을 통하여 사업의 방향, 시기, 지불제도의 변화 등을 주도해야 하지 않을까?

현행 행위별 수가제에서 환자 등록 및 관리, 성과지표에 따르는 지불제도를 추가하여 적정선의 지불체계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며, 기존 일차의료를 담당했던 전문과목들은 주치의로부터 의뢰된 좀 더 중증도가 높은 환자를 봄에 따라 그 수가를 올려서 보전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단과전문의들은 전문병원 등을 통하여 질높은 2차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하며, 3차병원은 중증환자 위주의 진료로 유도하여 지금처럼 동네의원과 대학병원이 경쟁하는 구도를 빨리 없애야 할 것이다.

시범사업 기간에 대국민 홍보에도 힘써야 한다. 2020년 7월 사단법인 녹색소비자연대 전국협의회에서 시행한 온라인 조사에 의하면, 병원 방문자들 중 절반 정도가 이미 한 명의 의사를 주로 방문하고는 있었으나, 정작 주치의제도에 대해서는 3분의 2가 ‘들어는 봤으나 내용은 잘 모른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시범사업의 시행은 지역적으로 농촌·중소도시·대도시를 각각 대상으로 시행해야 하겠으며, 일단 수요자들의 필요성이 두드러지는 장애인과 노인층부터 시행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참여율이 적어서 그리 성공적이라고 볼 수는 없었으나 의사, 환자 모두 그 필요성을 인정한 장애인주치의제도는 환자, 의사 모두의 참여를 늘릴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하여 진행하도록 하고, 환자안전과 관리효율성, 의료비용 절약을 위하여 노인주치의제도도 빠른 시일 내에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양질의 일차의료 전문의들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그 수련비용의 상당 부분을 지원하여야 할 것이다. 수련환경이 좋은 3차병원에서 좀 더 양질의 수련이 이루어지기는 일차진료 분야도 마찬가지인데, 3차병원의 특성 상 1차의료 수련에 호의적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표 참조>

◇1차의료 수련교육 방향과 상급병원 진료 방향의 비교

상급 병원 진료 방향

1차 의료 교육 방향

질환

중증

경증

중점

진료 (경쟁)

교육

신환 위주

지속적 진료

접촉점

마지막 진료

최초 진료

진료/검사

민감도 (놓치지 않도록)

효율성 (1차 진료 모형)

획일적

개별적

따라서 3차병원에서 양질의 일차진료 전문의를 수련시키기 위해서는 선진국들처럼 국가가 일차진료의의 수련비용을 지원해 주어야 하며, 그렇게 할 때에 국가가 일차진료 수련 과정에 참여를 할 수도 있게 된다. 수련기간 중 지역사회 파견수련을 늘리거나 일차의료 수련센터를 따로 운영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일차의료 전공의들의 비율을 점차적으로 늘리고 기존 개원한 단과전문의들 중 주치의로 전환을 원하는 의사에게는 재교육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일차의료 적합질환들에 대한 표준진료지침을 만들고 질평가 방법 및 기준을 정하여, 그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보상 방안도 필요하다.

이렇게 한 편으로는 일차진료의를 육성하며 미래를 준비하면서 시범사업의 결과가 예상했던대로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서 만족도가 높고, 중복검사와 다약제 복용이 줄고, 의사 환자의 신뢰 향상으로 인한 의료분쟁의 감소, 건강보험 재정의 절감 효과, 3차병원 쏠림 현상의 완화 등으로 나타나 준다면, 전 국민, 전 지역으로 확대하여 국민 모두에게 대통령처럼 주치의를 임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 날을 기대해 본다.

- 선우성 대한가정의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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