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득&nbsp;<br>부산대학교 약학대학 교수&nbsp;<br>&lt;약사평론가&gt;<br>
김남득
부산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약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 지난해 5월 정권교체 이후 윤석열 정부는 여러 방면에서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규제개혁이다. 문재인 정부는 규제샌드박스 제도 도입, 네거티브규제 시스템으로의 전환, 규제개혁 신문고 운영 등을 시도한다고 하면서도, 부동산 투기 과열을 완화하기 위해 각종 신규 부동산 관련 법규를 통한 새로운 규제 재정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이전 정부의 여러 규제를 개혁하기 위해 기존의 불필요한 규제를 모래주머니라고 부르며, ‘모래주머니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규제 혁신이 어떻게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영국의 붉은 깃발법(Red Flag Act)

우리나라 정부의 규제 혁신에 앞서 부당한 규제의 대명사라고 알려진 영국의 붉은 깃발법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누구에게나 자동차 왕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혁신적 일관 조립공정으로 대량생산의 길을 연 미국의 헨리 포드(1863~1947)를 떠올리고, 자동차를 미국의 발명품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퀴가 넷 달린 증기 자동차는 영국에서 1801년 리처드 트레비식(1771~1833)이 처음 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프랑스, 독일, 미국에게 자동차 산업 주도권을 내주게 된 것은 1865년부터 1896년까지 거의 31년간 시행됐던 '붉은 깃발 법'(Red Flag Act)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이 않다.

당시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마부들이 실직하고 마차 사업자들이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이 예상되자 이들은 자동차 보급에 반기를 들었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영국 의회가 '붉은 깃발법'을 제정하였는데, 자동차에는 반드시 3(운전수, 기관원, 기수)을 태워야 하고, 그중 기수는 낮에는 붉은 깃발, 밤에는 붉은 등을 들고 자동차의 55m 앞을 달리면서 행인들에게 자동차가 다가옴을 소리쳐 알리도록 했다. 그리고 자동차의 최고 속도는 마차의 속도와 비슷하게, 교외에서는 시속 4마일(6.4km/h), 시가지에서는 시속 2마일(3.2km/h)로 제한하였다.

그러던 중 영국 의회는 1878년 법을 개정하면서 전방 55m가 아닌 18m 앞에서 알리라고 규제를 완화했다. 그러면서도 말을 놀라게 하는 연기나 증기를 내뿜지 말라는 조항을 추가했는데 규제를 완화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자동차의 보급을 완전히 봉쇄한 것이다.

[영국의 붉은 깃발법(1865년 제정 당시 기수는 자동차로부터 55m에서 앞서가며 자동차가 오는 것을 알려야 했으나, 1878년 개정되면서 18m만 앞서가면 되었고, 결국 1896년 폐지되었음)]<br>
[영국의 붉은 깃발법(1865년 제정 당시 기수는 자동차로부터 55m에서 앞서가며 자동차가 오는 것을 알려야 했으나, 1878년 개정되면서 18m만 앞서가면 되었고, 결국 1896년 폐지되었음)]

이런 와중에 외국의 자동차 산업은 급속도로 발전하였지만, 영국은 뒤처졌고 또 불편한 현실을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규제를 풀고 새로운 혁신 방식을 받아들였지만 시기를 놓친 뒤였다. 마부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을 염려해 만든 붉은 깃발법은 결국 1896년 폐지되었고, 마부의 일자리도 사라졌고, 자동차 산업도 다른 나라를 뒤쫓아 가기에는 이미 늦었다. 1906년 롤스로이스 자동차 회사가 설립됐지만 미국, 독일, 프랑스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붉은 깃발법의 교훈은 간단명료하다. 이 법은 산업 발전 동향을 읽지 못하고 기득권 편에 선정치인들의 잘못된 정책 선택의 대표적인 사례로 단적인 예로, 4차 산업혁명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적지 않다.

대학 등록금 14년간 동결 규제

대학 등록금은 지난 2009년부터 사실상 동결됐다. 정확히 말하면 등록금 인상 폭을 규제한 등록금 상한제. “대학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는 여론이 이어지자 당시 이명박 정부는 2009반값 등록금을 추진했다. 2010년에는 등록금을 직전 3년 치 평균 물가상승률의 1.5까지만 올릴 수 있도록 고등교육법을 개정했고 2023년 현재도 법이 시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은 각종 정부재정지원사업 참여가 금지되며, 등록금 동결·인하 대학에만 국가장학금유형을 지원하면서 사실상 등록금 인상을 규제해왔다.

지난 5년간 평균 등록금을 보면 등록금 동결의 결과가 여실히 드러난다. 1인당 평균 등록금은 20186711800, 20196707300, 20206726600, 20216733500원으로 나타났다. 그동안의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실제 등록 인하로 인한 부정적인 효과는 매우 크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따르면 2020년 소비자물가지수를 기준으로 환산한 실질 등록금 평균은 지난해 20226326000원으로 20088237000원보다 23.2% 줄었다.

등록금은 14년 동안 동결됐지만 대학에서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비용은 꾸준히 증가했다. 20214년제 대학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연간 17084000원으로, 2020(16165000)보다 919000원이 늘었다. 대교협 분석 결과 전국 사립대의 등록금 수입은 201111554억 원에서 2021102007억 원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인건비, 관리운영비는 97405억 원에서 11254억 원으로 늘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 시설 개선, 4차 산업혁명 전문인력 확충, 교육 환경 개선은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14년째 대학등록금이 동결된 가운데 전국 4년제 대학 10곳 가운데 3(30%)2023년과 2024년 사이에는 등록금을 인상할 계획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그동안 등록금을 올린 대학에 국가장학금를 지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등록금 인상을 억제해왔는데, 최근 물가 급등으로 등록금을 올리는 게 교육부 국가장학금지원을 받는 것보다 재정적으로 유리해졌기 때문이다.

부산에 위치한 동아대학교는 사립대학 최초로 지난 127일 학부 등록금을 3.95% 인상하기 결정했다. 등록금 인상으로 약 50억 원의 추가 수익이 있는 반면에 국가장학금유형 지원액은 약 20억 원으로 알려져 반대에도 불구하고 등록금 인상으로 가닥을 잡았다. 동아대 등록금심의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학교 측은 등록금 인상분을 교육환경 개선에 쓰되 장학금 보전 방안도 함께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학생 위원들은 등록금 인상 부담이 있다면서도 등록금 인상분 사용계획을 학생들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인상에 찬성했다. 현명한 결정이라 여겨진다.

등록금 동결 규제 해제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있다고 하나 아직까지 등록금 인상 자유화 조치가 나오지 않고 있다. 최근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된 상황에서 등록금 인상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반발도 거세질 전망이다. 그 결과 2023년 교육부 업무보고와 윤석열 정부의 교육 개혁에는 대학 등록금 규제 완화가 포함되지 않았다. , 등록금 동결이 1년 더 연장된다. 물가가 오르는 시기에 등록금 규제완화 시기를 어떻게 풀고,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을 덜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관련 당사자들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

결언

1800년대 중반 영국 사회는 그동안 듣도 보도 못한 자동차란 괴물이 등장했기에 31년이란 장구한 세월 속에 자동차 산업 발전을 막았을 것이라 짐작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1977년 소규모 사업장 적용 시범 사업에서 1989년 전 국민에게 확대시행되는데 12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1963년 약사법 개정을 통해 의약분업의 원칙 제시가 있었지만 의사의 직접 조제를 허용한 상태로 37년의 세월이 지난 2000년에야 의약분업이 실시되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종식되는 현 상황에서 우리나라 의료계에서 가장 큰 화두는 비대면진료(원격의료) 제도화여부일 것이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말미암아 사회 전반에 걸쳐 그동안 듣도 보도 못한 일들이 많이 발생했고, 의료계에서는 그동안 반대했던 비대면진료를 코로나19 ‘심각단계에 한해서 한시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진행되어 오던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통해 1300만명의 국민이 3500만 건 이상의 사례에서 보듯이, 일각에서 제기하던 문제점과 위험성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조만간 코로나19 ‘경계단계로 하향되거나 아니면 올해 5월경 코로나19 위기가 종식되면 비대면진료 제도화가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정부는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의료계를 비롯한 반대가 만만치 않다.

등록금 인상 동결 규제로 돌아가 보자. 4차 산업혁명시대의 도래와 함께 의약업계를 비롯한 사회전반의 미래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특히 새해 초부터 전해진 ChatGPT의 위력, AI의 새로운 기능, 일반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의 등장 등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도전들이 닥치는 변화의 시기에, 대학에서는 보다 개선된 교육 환경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등록금 인상 등 재정 확충이 시급하다. 누구를 위한 등록금 인상 동결인지 다시 묻고 싶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미래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혁신에 대해 정부와 대학, 국민 모두 현명한 판단과 결정을 내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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