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석 서울시의사회 부회장
황규석 서울시의사회 부회장

[의학신문·일간보사] 지난 2022 12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년 동안 68회나 초음파를 사용하여 진단하면서 자국 내막암을 진단하지 못한 한의사의 의료법 위반 혐의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8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환송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4인으로 구성되는 일반부와 달리 대법원장과 대법관 13명으로 구성되며, 주로 정치·사회적으로 논란이 있고 파급력이 큰 사건들을 담당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나온 선고 결과는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기존 판례를 모두 다 뒤집는 엉뚱한 판결을 내린 이유로 제시한 여러 가지 사유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유로 시대변화에 따른 새로운 판단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제시한 새로운 판단 기준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1) 법령에서 한의사에 대한 사용금지를 명시하지 않으면 모든 진단용 의료기기를 한의사도 사용할 수 있고, 2) 만약 의사와 한의사가 서로 의견이 다르면 법정에서 다투라는 것이다.

하지만, 본인은 대한민국 최고의 의결 기관인 대법원에서 이렇게 의료의 특수성과 전문성 구분을 없애버리는 판결을 한 저의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아주 쉽게 그냥 한의사들의 밥벌이를 위해서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사법부의 양심을 팔아넘긴 것인지, 아니면 시대의 변화 및 한방의 비과학적 낙후성을 인정하여, 한국 사회에서 한의사, 한방 의료는 더 이상 필요 없으므로 그냥 의사로 일원화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강제 의료일원화'를 전제로 한 판결을 한 것인지 매우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으며, 분노의 마음마저 들었다.

의사들이 이번 판결을 황당해 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법조계는 1) 의사가 하는의료행위는 의학적 전문지식을 기초로 하는 경험과 기능으로 진찰, 검안, 처방, 투약 및 외과적 시술을 시행하여 하는 질병의 예방 또는 치료행위와 그밖에 의료인이 행하지 아니하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를 의미하고, 2) 한의사가 하는한방의료행위는 우리의 옛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의사와 한의사의 면허 범위를 구분해 왔다.

더구나 헌법재판소에서는 2012년 이후 2020년까지 수차례에 걸쳐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라는 이유로 처벌하는 것에 관한 위헌 소송에서 '의료법에서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기에 한방의 초음파 진단 기기 사용이 위법이 아니라'는 피고인 측 주장에 관해서한방의료행위는 우리의 옛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죄형법정주의에서 요구하는 형벌법규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 된다고 볼 수 없다고 일관성 있게 판결한 바 있다. ,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은 명확하게 한방의료행위에 포함되지 않고, 한의사에게 초음파 기기 사용은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라는 것이다.

가장 최근이었던 2020년 헌법재판소의 판결 이후 2년 동안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의료법 관련해서 중대한 변화가 없었고, 한의학과 한의사의 전문성이 획기적으로 변화를 가져온 것도 없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갑자기 기존의 모든 판례와 상반되게 '의료행위의 가변성, 학문적 원리와 과학기술의 발달, 국가시험 등' 의 이유로 판결 기준을 바꿨다. 그리고 그러한 대법원의 논리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몰라도, 최근 한의사협회에서 주장하는 논리와 거의 유사하다. 대법관의 남편이 한의사라는 사실이 제척 사유가 되는지에 대한 논쟁과는 별개로 어제까지 명확하게 우리 소유였던 집이 법의 변화 없이 단지 법원의 판결만으로 통째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게 생겼는데, 집주인이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동안 한방계가 전통적 한방의료에서 벗어나고자 의사들의 영역을 호시탐탐 노릴 때, 오히려 KCD(Korean Standard Classification of Diseases)도 내어주고, 한의대에 가서 의학을 강의 해주고, 아침 방송에 한의사와 함께 출연해서 TV 시청률 올려주던 의사들의 무심함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하는 대한민국 의사들의 뼈아픈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반성보다는 앞으로의 대책 마련을 시급하게 준비해야 한다.

앞으로 한의사들은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에 근거하여 관계 법령에서 한의사의 사용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의료기기 이외에 모든 의료기기를 자기들이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을 할 것이며, 간호협회와 조산사협회의 환영 성명서에서 보듯이 법에서 금지 되지 않은 의료기기는 의료인 모두가 사용할 수 있다는 반문명적(反文明的) 주장이 의료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에서 난무하게 될 것이다.

향후 벌어질 각종 분쟁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일단 애매한 용어 사용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의료법 제2조에서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고 했지만, 이미 의료는 의료인 모두가 공유하는 포괄적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에 의사들은 의료, 의료행위, 의료기기라는 용어 대신, 의사(醫事), 의사계 (醫事界), 의사업무(醫師業務), 의사행위(醫師行爲), 의사기기(醫師器器) 등과 같이 의사들만 할 수 있고, 의사들만 사용 가능한 새로운 개념의 용어들을 정립하여 사용하고 의사들만이 할 수 있는 배타적인 영역을 만들어서 타 직역이 침범할 수 없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각 직역들도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이번 대법원이 내세운 판단 기준에 따르면 향후 의료 영역에서 각 직역 간의 진흙탕 싸움은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국가에서 의사의 권리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비록 극단적인 생각일 수는 있지만, 차라리 의사들은 앞으로 신의료기술 신청을 거부하고 2007년 신의료기술 제도 도입 이후 단 한 건이 통과된 한방계의 발전 속도에 맞춰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치열한 세계의 의료 기술 경쟁 속에서 뒤처져가는 한국 보건의료의 현실을 보게 된다면 아마도 한국 정부와 사법부의 판단이 얼마나 잘못된 판단인지 뼈속 깊이 느끼고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대한민국 의사들은 말썽 안 부리고, 말 잘 듣는 모범생처럼 한국 정부와 사회의 수많은 부당한 요구에도 환자분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의료 현장을 지켜왔다. 하지만, 더는 물러설 곳이 없어진 지금 상황에서 비록 아무리 힘든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 14만 의사들에게 남겨진 마지막 자존심과 오진으로 인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온 힘을 다해 강하게 저항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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