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우철<br>한국보건의료정책연구소 이사<br>&lt;제주한국병원 흉부외과 과장, 의사평론가&gt;
송우철
한국보건의료정책연구소 이사
<제주한국병원 흉부외과 과장,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의료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은 환자와 보호자 뿐이 아니다. 의료 행위를 하는 의사의 바램도 그에 못지 않다. 그래도 의료사고는 생긴다. 의사의 단순한 실수거나 능력부족일수도 있지만, 의료진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예기치 않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사고가 생기면 빨리 해결되는 게 좋다. 해결까지의 과정이 환자나 보호자, 의료진 모두에게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애초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분쟁조정법)은 이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11년 국회를 통과하고, 2012년부터 시행된 이 법을 이해하려면, 이 법이 만들어진 배경을 알 필요가 있다.

86, 당시 의학협회 문태준 회장은 의료사고특례법입법을 추진했다. 당시 의료계는 89년 전국민의료보험 시대를 앞두고 늘어나는 의료 수요와 함께 덩달아 증가하는 의료분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의료 분쟁이 생기면 브로커를 동원해 병원에서의 난동, 농성, 진료 방해를 하거나 의사를 인신 구속하는 경우도 빈번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료사고특례법을 만들어 의료사고 분쟁을 빠르게 해결하고, 교통사고 특례처럼 의사의 인신 구속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 의료계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반의사불벌 조항이 의사에게만 유리한 법이라며 강력히 반대했다. 반의사불벌은 의료사고 후 합의가 성립하면,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을 경우, 형사 처벌을 면책하는 조항이다.

시민단체 등이 의협의 의료사고특례법에 거세게 반대하자, 91년 보사부는 의료사고 피해구제법입법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워낙 쟁점 사항이 많아 20년간 공회전하다 2011년에야 국회를 통과하게 되었다. , 의협이 입법을 추진한 86년으로부터 26년만에 법이 시행된 것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의협은 수많은 연구와 설문 조사, 토론회 등을 통해 1. 과실입증 책임 전환 불가 2. 필수적조정전치주의 채택 3. 반의사불벌제도 (형사처벌특례) 도입 4. 대불금 제도 도입 5. 무과실보상 기금 도입이라는 분쟁조정법 입법의 대 원칙을 세워 두었다. , 이 다섯가지 항목이 모두 수용되지 않으면 분쟁조정법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중 과실책임 입증은 조정전치주의와, 반의사불벌제도(형사처벌특례)는 대불금 제도 및 무과실보상과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2011년 법안 전까지 의협은 필수적 조정전치주의 입장을 고수했다. 필수적 조정전치주의는 모든 의료분쟁은 반드시 조정중재 절차를 거친 후 재판을 받도록 강제하는 규정이다. 2002, 16대 국회에 임의적 조정전치주의를 골자로 하는 법안이 제출하자 의협과 병협은 조정절차를 의무적으로 거치도록 해야 피해자 구제를 신속히 할 수 있고, 안정적 진료를 할 수 있으며, 임의적 조정절차를 거칠 경우, 소송을 남발할 수 있다고 강력히 반대했고 결국 입법은 무마되었다. 이 같은 기조는 이후에게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2011년 입법 과정에서 의료계는 입장을 바꿔, 임의적 조정전치주의를 주장했다. 왜 일까?

이는 이 법안에서 의료과실 입증 책임을 조정중재원의 감정부에 넘겼기 때문이다. ‘의료과실 입증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건, 91년 이후 꾸준히 제기되었던 주요 쟁점 사항이었다. 과실 입증 책임은 형사 사건인 경우 검사에게, 민사 사건인 경우는 피해자에게 있는 것이 통례이다. 그러나 의료사고는 전문적 영역이므로 피해자가 의료인의 과실을 직접 입증하는 건 어렵고 가혹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 의료사고가 생기면 피해자들이 농성하며 억울함을 호소한 것도 이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시민단체 등은 과실 책임이 없다는 걸 의사가 직접 입증하라고 주장했는데, 이를 입증책임 전환이라 한다. 입증책임 전환은 과실 하지 않은 자가 과실 책임이 없다는 걸 입증하라는 것이며, 이 역시 쉽지 않고 법체계에도 맞지 않아, 입증 책임은 분쟁조정법 입법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2011년 법안에서는 과실 입증 책임을 가해자나 피해자가 아니라, 분쟁조정원의 감정부가 떠안도록 입법되면서 이 쟁점을 피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경우, 피해자는 과실 입증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므로 조정을 남발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해졌고, 실제로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 2018년 조정중재원에 신청된 건수는 모두 2,926 건인데 이중 1,171 건이 각하 혹은 취하되었다. 신청 건수의 40%가 사건이 되지 않는 건이었다는 의미이다. 2019년에도 각하 건수는 36%에 이르렀다.

따라서, 감정부가 입증 책임을 안을 경우, 의료계는 조정과 재판에 대한 선택권이 필요했고, 이런 이유로 필수적 조정전치주의에서 임의적 조정전치주의로 입장을 바꾸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16년 사망 및 중상해 의료사고의 경우 의무적으로 조정중재를 거치도록 하는 법개정 (이른바, 신해철 법)이 이뤄졌다.

한편, 분쟁조정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 법을 악법으로 규정하고 반대하기 시작했고, 이 법이 시행된 2012년 의협회장이 된 노환규 회장이 반대의 전면에 나섰다. 의료계가 이 법을 악법으로 규정한 가장 큰 이유는 대불제도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분쟁조정의 양대 핵심은 피해 배상과 형사처벌 면책이라 할 수 있다. 조정이 되어도 배상하지 않으면 제도의 실효성이 없고 피해 구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며, 피해 배상이 이루어졌을 때 가해자에 대한 무리한 인신구속을 막는 것이 애초 이 법을 추진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조정중재는 이 둘의 연결고리인 셈이다.

따라서 의료계는 배상책을 내놓아야 한다. 피해배상을 하는 방법은 대불제도 외에 의료사고 피해보상 기금 조성, 배상보험이나 공제 조합 의무 가입, 대불제도와 유사한 의료분쟁 분담금 등이 있으며, 모두 의협 내부에서 오랫동안 검토되었다. 분쟁조정법을 절실히 원했던 의협은 91년 보사부 주도 입법 당시 총 진료 수입의 1%를 전체의료기관으로부터 각출하여 기금을 조성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는 정부의 요구가 아니라 의료계의 안이었다. 당시 의협은 회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응답자의 86.6%가 진료비 수입에 따른 비율로 각출하여 피해보상기금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답했다. 예상 기금 규모는 당시 금액으로 500억원이었다. 95년에는 정부와 의료계는 의료사고피해 보상금 재원 마련을 위한 분담금을 매월 납부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의협은 기금 조성이 배상보험이나 공제 조합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것보다 유리하다 보았다.

대불제도는 조정중재 후 피해자에게 배상 결정이 내려졌을 때 가해자에게 배상할 자금이 없을 경우, 조정중재원이 먼저 배상하고 후에 구상하는 제도이며, 기금조성이나 배상보험 의무 가입보다 의료계의 부담이 월등히 더 적은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대불금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2011년 입법 당시 법 47조에 건보공단이 요양기관에 지급하여야 할 요양급여비용의 일부를 조정중재원에 지급하는 방법으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공단의 잉여금으로 재원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입법 취지를 무시한 체, 하위 법령에서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대불제도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였다. 이건 의협의 실책으로 봐야 한다. 악법으로 규정하고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하위법령 제정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 건보재정 잉여금을 재원으로 삼도록 했어야 했다.

현재 대불금 비용부담은 연간 종합병원은 약 1백만원, 병원은 약 11만원, 의원은 39,650 원이다. 이렇게 모인 금액은 연간 약 12 억원 가량이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91년 기금으로 500억원으로 모으려고 한 것에 비하면 월등히 적다고 할 수 있다.

분쟁조정법을 악법이라 주장하는 측도 대불제도 자체보다는 그 재원을 의료기관이 떠안는 것이 불만이라고 할 수 있다. , 정부가 국고로 재원 마련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불제도의 수혜자는 당장 목돈을 마련하지 않아도 되는 가해자라 할 수 있고, 이 제도의 대가로 형사처벌특례가 따라올 뿐 아니라, 과거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부담을 수 차례 약속한 걸 생각하면, 대불제도 재원을 부담해야 한다고 이를 악법이라 주장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게다가 대불금은 예치금 성격이므로, 의료기관을 폐업할 경우 반환 받을 수 있고, 의료분쟁의 당사자가 아닌 국가가 이 재원을 마련할 근거도 부족하다.

악법인 또 다른 이유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 (46)때문이다. 현재, 분만 의료사고 중 의료인의 과실이 없음에도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하는 무과실 의료사고의 경우 피해 보상을 하고 그 재원 중 30%를 분만의료기관이 나누어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과실이 없는데 왜 의료기관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이 악법인 이유이다.

그런데, 사실 의료사고피해구제의 범위에 무과실 보상을 포함해야 하며, 의료기관의 수입 비율로 각출금을 내 기금을 조성하고 그 안에서 보상하자는 것이 과거 의협 회원들의 절대적 입장이었다. 또한 불가항력적(무과실) 의료사고 보상은 의협으로서는 분쟁조정법 입법의 필수 요건이었다. 그러나 모든 의료영역에서 무과실 의료사고를 보상하는 것은 그 빈도에 대한 통계와 추정 예산을 가늠할 수 없으므로 우선 분만 사고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입법하고, 후에 충분한 통계가 쌓일 경우 질환을 추가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 부담금을 강제 징수하는 것은 명백히 국민의 재산권 침해로 볼 수 있는 점, ‘보상재원의 분담비율에 관하여 대통령령에 포괄적으로 위임함으로써 분담금 납부의무와 관련해 의료기관개설자의 법적 안정성을 현저히 해치며, 포괄위임금지원칙에 반할 수 있는 점은 물론, 무과실 의료사고 보상은 사회보상의 성격을 갖는 점,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분만기관과 저출산을 고려할 때 분만을 독려해야 하는 점 등을 감안해 국가가 모두 보상을 부담하도록 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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