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태<br>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br>한국 골든에이지 포럼 공동대표<br>
정지태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한국 골든에이지 포럼 공동대표

[의학신문·일간보사] 지난 6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이라는 기나긴 이름의 법안이 안규백의원에 의해 대표발의 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논의가 이곳저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법안에 대한 설명과 토론회에 참여한 후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이 법안의 제안 이유를 보면 [말기환자로서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환자들의 경우에는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 담당의사의 조력을 받아 자신이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존엄사를 도입함으로써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증진하려는 것임.]이라 되어있다. 여기에 “담당의사의 조력을 받아”라는 문장이 등장하는데, 환자가 죽고자 하는데 이를 도와서 죽게 해 주는 행위가 <의료행위>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의사가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의료행위는 아니다. 고통을 당하는 환자를 죽을 수 있게 도와주는 행위가 과연 의료행위인가? 이런 문제가 단 한 번도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논의된 적이 없는데, 이런 문제에 대해 당사자인 의사 집단과 논의도 하지 않고, 법안 발의에 들어간 것은 과잉입법이라 생각된다.

의료법 제 27조 제 1항에서 정하는 ‘의료행위’라 함은 의학적 전문지식을 기초로 하는 경험과 기능으로 진찰, 검안, 처방, 투약 또는 외과적 시술을 시행하여 하는 질병의 예방 또는 치료행위 및 그 밖에 의료인이 행하지 아니하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를 의미한다. ‘보건위생상의 위해’에 명백히 해당하는 [환자의 죽음]에 의사가 관여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이 법안은 기술하고 있다. 필자는 ‘조력존엄사’라는 행위는 의료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현재의 상태로는 의사가 관여해서는 안 되는 행위라고 본다. 법으로 다루어지기 이전에 높은 수준의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하는 일이라 믿어진다. 의료법이 바뀌어 의료행위의 정의가 바뀌기 전에는 이 법안에 의사가 언급되어서는 안 된다.

이 법안의 내용을 보면 제20조의2(조력존엄사대상자신청) ① 이 법에 따른 조력존엄사의 이행을 희망하는 사람은 말기환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 및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발생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 등을 첨부하여 서면으로 제20조의3에 따른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에 조력존엄사대상자 결정을 신청하여야 한다. 심사위원회의 위원장은 보건복지부장관이 되고, 위원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 중에서 보건복지부장관이 임명하거나 위촉한다. 1. 관계 중앙행정기관 소속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공무원 2. 의료법에 따른 의료인으로서 조력존엄사 관련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3. 윤리 분야 전문가 또는 심리 분야 전문가라고 되어있는데, 국민이 죽음을 선택하고, 이를 시행하는데 정부의 고위직이 나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또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물어보고 싶다. 고차원적인 생명윤리와 임상의료윤리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논의가 깊은 사전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힘든 장관과 고위공무원이 참여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적어도 의사의 조력에 의한 자살이 ‘의료행위’라고 정의되려면 이를 행할 임상의사들과의 합의가 선행되어야 법이 시행되었을 때 의사들이 경험하게 될 윤리적 갈등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대한의사협회는 이 법안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냈고, 대표발의한 의원은 여론 조사를 바탕으로 자신의 입장을 주장할 것이다. 이 여론 조사에 대한 필자의 의견은 이런 문제를 사회적으로 심각히 논의할 시기가 되었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지, 법안을 만들어 시행하자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더구나 이 법안은 의료법과 충돌하는 면이 많다.

법안 제20조의7(형법 적용의 일부 배제)에 의하면 제20조의5제1항에 따라 조력존엄사대상자의 조력존엄사를 도운 담당의사에 대해서는 「형법」 제252조제2항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라고 하였는데, 이는 조력존엄사가 합법적인 의료행위가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지 않은가? 그 행위가 합법적 의료행위라면 왜 이런 예외 규정이 필요한 것인가?

초고령사회가 임박한 지금, 죽음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국회의원, 의료법학자, 윤리학자, 고급 공무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 법이 실행되었을 때 접점에 서 있는 임상의사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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