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질 진료 서비스-의료수익 훼손되면 안돼

김충기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
김충기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

[의학신문·일간보사] 코로나19 시대 ‘비대면’은 의료 영역에서도 중요한 요구사항이 되었다. 넓은 국토에서 의료접근성이 현저히 낮은 미국·중국·인도와 같은 나라들의 경우, 원격의료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그 활용도가 매우 증가하였으며, 지속적인 의료서비스 제공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같은 시기 허용된 우리나라 원격의료의 모습에는 그리 높은 점수를 부여하기 어려울 듯하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우리나라 원격의료의 이용률은 전체 진료 대비 0.3% 정도에 불과하였으며, 대부분은 코로나19 위기와 관련하여 실제 의사와의 대면이 어려운 상황보다는, 대면 진료를 다소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는 증상이나 질병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원격의료가 이처럼 삐걱거리며 충분한 효용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그 존재의 필요성에 대해 그 누구도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 상태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대에 급격히 확산된 다양한 비대면 체계들은 뚜렷한 요구와 목표에 부합한다. 또한 어느 정도의 질적인 수준 저하를 감수할 수 있거나 혹은 질적 수준을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비대면이 제공할 수 있는 편익을 체계의 존재 이유로 정당화시킬 수 있다.

비대면 업무나 교육 활동은 다소 제한적이나 달성 가능한 분명한 목표에 동의하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상호 합의 하에 이뤄지고 있다. 개발 업무를 주로 하는 프로그래머들은 메일이나 메신저를 통한 소통만으로 업무지시를 받고 수행하는 데에 무리가 없다. 이는 코로나19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다. 다양한 수익 서비스들은 비대면 수단을 통해 다양한 관점의 소비자들의 만족을 최적화하며 이를 통해 추가적인 비용을 부담시킬 수 있다. 집에서 편하고 빠르게 받아서 먹을 수 있다면 식당에서 먹을 때보다 조금 맛이 덜하더라도 오히려 더 비싼 돈을 주고 음식을 주문하는 것이 당연하다. 원격의료에 있어서도 이러한 조건에 대해 간단히 논의해보고자 한다.

◇원격의료는 과연 충분한 의료의 질적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검증된 바가 없다. 질적 수준에 대한 목표도 불분명하다. 접근성 향상만으로 어느 정도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도 있는 해외 국가들도 있으나, 우리나라의 의료환경에서는 보다 높은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제한적인 조건과 상황에 따라 질적 수준을 담보할 수도 있으나 객관적으로 검증될 필요가 있다.

◇질적 수준이 다소 저하되더라도 사람들이 수용할 것인가= 조금 다른 질문으로 접근해보면 좋겠다. “당신은 직접 의사를 대면했다면 진단받았을 어떤 병을 비대면 진료를 이용하면서 진단받지 못했다. 그런 가능성이 얼마 이하일 경우 비대면 진료의 이용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아마 1%라도 명확히 위험이 존재한다면 비대면 진료에 선뜻 동의할 수 있을까?

◇의료에 있어서 최대의 편익은 자유경제시장의 그것과 동일한가= 의료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목표는 최대의 이윤이나 효율성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에 있다. 가격이 통제된 의료 환경에서 질적 향상에 대한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기 어려우며 질적 수준을 객관적으로 드러내기도 쉽지 않은 의료의 특성을 감안할 때, 원격의료 산업은 최대 이윤 추구를 위해 질적 저하를 감수하는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또한 의료 소비의 집중화가 지역의료와 의료전달체계의 근간을 훼손할 경우 효율성만으로 원격의료를 정당화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원격의료 또한 의료의 한 형태라는 점에서 시장과 산업의 관점이 아니라 철저히 의료의 본질적 가치를 보호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원격의료의 핵심적 가치는 의료서비스의 제공자인 의사로부터 발생한다. 따라서 의사들의 자발적인 참여 의지를 이끌어내지 않는다면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전달하기 어렵다. 환자에게 동등하거나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믿으며, 기술에 대한 적응이 수월하고, 적어도 수익이 훼손되지 않는 것 등은 의사들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될 것이다. 특히 환자에게 높은 의료 수준을 유지하며 안전하게 의료를 제공하는 것은 의사나 환자들에게 공히 만족할 수 있는 가치라는 점에서 원격의료의 중요한 전제 조건으로 제시할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이에 관한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까지 추구되어 온 방식처럼 사회와 기술의 변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을 강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진료에 활용 가능한 비대면 기술 자체만으로는 의료 현장에서의 안전한 활용을 전혀 담보하지 못한다. 어떠한 환자에게 어떠한 형식으로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에 따라 매우 위험한 방법이 될 수도,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지난 30년 이상의 시간 동안 우리나라 환경에서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많은 연구와 논의가 계속되었음에도, 어떠한 비대면 방식이나 체계가 국민 보건이나 환자 진료에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분명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는 원격의료에 대한 논의가 의료 이용의 중심이 되는 환자와 의사의 진료의 과정을 어떻게 보완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관점보다는, 비대면 관련 기술과 세계적인 관련 산업의 급격한 발전에 편승하고자 하는 막연한 조바심으로 비롯된 탓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코로나19 위기는 아마도 인류의 문화와 생활양식의 중대한 변혁의 시작점이 된 중요한 사건으로 인류의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또한 지금 원격의료를 논하고 있는 오늘날의 시간은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는 의료 발전의 역사로 남겨질 것이다.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의료의 본질과 목표를 벗어난 잘못된 변화의 길에 들어서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많은 고민을 나누고 노력해야 할 큰 숙제를 갖게 되었다.

- 김충기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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