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협회 "제조사들, 병의원과 직거래 기피..다수 물량 도매상으로 풀어 담합 의심"
대개협, 가격 상승-반품불가 조건 주문 지적.."개원가 백신 구입 어려워..정부 조치 절실"

[의학신문·일간보사=이재원 기자] 인플루엔자 국가예방접종(NIP)이 시작된 가운데, 개원가에서 NIP용 인플루엔자 백신을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또한 예년에 비해 가격마저 대폭 오른 상태다.

이에 대해 의원협회를 비롯한 개원가는 병의원과 직거래를 기피하고, 다수의 물량을 도매상으로 풀어버린 백신 제조사들을의 행태를 지적하며, 담합의혹을 제기하는 중이다.

지난 9월 14일부터 인플루엔자 국가필수예방접종(NIP)이 시작됐다. 생후 6개월부터 만3세까지 어린이 중 2차 접종대상자와 임신부에 대한 접종이 시작되었고, 10월 14일부터는 1차 접종대상자 접종이 시작된다. 역시 10월 12일부터 순차적으로 어르신에 대한 접종도 시작될 예정이다.

그러나 일선 개원가에서는 NIP용 인플루엔자 백신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중이다.

대한의원협회는 16일 성명을 통해 "백신 제조사들은 병의원과 직거래를 기피하고 다수의 물량을 도매상으로 풀었다"며 "예년에 비해 가격이 대폭 오른 것도 문제지만 이들이 병의원에 요구하는 조건이 더 놀랍다. 미처 사용하지 못한 백신의 반품은 불가할 뿐만 아니라, NIP용으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협회는 "이러한 변칙적인 유통행위의 의도는 뻔하다. 의료기관이 인플루엔자 백신을 구매하여 NIP용으로 접종할 경우 정부가 책정한 금액(2021년 기준 1만천원정도)을 넘어서는 비용은 제약사나 도매상이 환급을 해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해주기 싫다는 것"이라며 "다시 말해, 현재 의약품 쇼핑몰에서 1만 7천~8천 원대로 판매되는 일반 백신을 NIP용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여서 판매하여, 환급금만큼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의원협회는 "올해는 이런 일반 백신들마저 작년보다 가격이 크게 올라서 제약사들의 담합이 의심되고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불공정거래행위로서 고발의 대상이 된다"고 지적하며 "더구나 비단 올해만의 일은 아니지만 일부 제약사들은 의료기관이 평소에 자사의 의약품을 얼마나 처방하느냐에 따라 물량을 배정하는 식의 갑질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의원협회는 "백신 제조사나 유통업체들은 작년에 인플루엔자 백신 운송 중 상온노출 사건이나 부작용에 대한 언론의 과잉 반응으로 접종률이 떨어져 손실을 보았으며, 그로 인해 올해 이런 식으로 변칙적인 유통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변할지도 모른다"며 "그러나 이런 행위들은 명백히 불법 또는 탈법적인 작태이며,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률을 저하시켜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방역 실패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방역 시스템을 더욱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악재가 아닐 수 없다"고 꼬집었다.

협회는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도 비판했다. 최근 일간 코로나 확진자 수가 2천 명을 넘나들고 있는 상황에서, 다가올 겨울을 맞이하여 한시 바삐 인플루엔자 접종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개원가에서 백신을 제때 구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피해자는 국민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의원협회는 백신 제조 유통사들에 반품 불가, NIP 사용 불가라는 비상식적인 갑질 행태를 중단할 것, 정부에는 작년보다 크게 앙등한 백신 가격이 불공정한 담합에 의한 것이 아닌지 조사할 것과 지금이라도 예산을 투입하여 NIP용 백신 금액을 올려 물량 확보할 것 등을 주문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도 NIP 백신 부족에 대책마련을 정부에 요구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이하 대개협, 회장 김동석)는 지난 13일 질병청과 온라인 간담회를 갖고, 최근 개원가에서 독감 백신을 구하지 못해 일반 접종은 물론이고 국가필수예방접종(NIP)까지도 파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전달하고 정부 차원에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 김동석 대개협 회장은 백신 생산 제약사들이 직거래를 기피하고 도매업체를 통해 인터넷 쇼핑몰에서 백신을 판매하고 있고, 예년에 비해 가격이 대폭 오른 데다 반품 불가, NIP 불가 등 불평등한 조건으로 주문을 받고 있어 개원의들이 백신을 구입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점을 피력했다.

더욱이, 유소아나 임신부의 NIP용 백신은 기존 거래 여부나 주문량 등에 따라 차별적으로 주문을 받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입한 백신을 NIP용으로 사용할 수 없게 함으로써 이제 시작된 국가필수예방접종 사업의 파행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대개협은 작년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코로나 방역 사태를 맞이하여 올해 독감 예방접종 사업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며, 특히 저출산·고령화의 난국에서 유소아, 임산부에 대한 배려가 절실한 시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올해 보건당국이 파악한 독감 백신의 양이 예년에 비해 적지 않다고 하는데도 품귀 현상이 생긴 것은 결국 제약사와 도매상의 변칙적인 공급 행태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김동석 회장은 “이날 회의에서 제약사와 도매상의 행태에 대해 질병청은 물론 정부 차원에서 바로 잡는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요구했다"며 "똑같은 백신인데도 NIP용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조건을 붙여서 판매하는 것은 접종을 원하는 어린이와 임산부를 곤경에 빠지게 하는 것이며, 의사들은 민원에 시달리고 전체 접종률이 떨어지면 국민 건강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본다”고 질타했다.

대개협 참석자들은 그 외에도 정부가 공급 업체들의 계약관계에 개입할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기존의 규정들을 잘 활용하고 필요하면 행정지도권을 발동해서라도 시장 질서를 파괴하는 불공정 거래 행위를 시정해주도록 건의했다. 아직 본격적인 독감 예방접종 사업이 시작되려면 다소 시간이 남아있는 바, 그동안 서둘러 현실적인 대책을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다.

김동석 회장은 “이러한 사태의 이면에는 작년 독감백신 운송 시 상온노출 사건과 백신 부작용 의심 사례로 접종율이 떨어져서 제약사들의 손해가 빚어졌던 탓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손실을 국민이나 의사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작년보다 올해 백신 가격이 일제히 급등한 것은 불공정한 담합이 아닌지 의심되며, 만약 이것이 사실로 드러나면 법적인 조치까지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제약사나 도매상이 일반 물량을 NIP용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데는 NIP 공급 가격과 일반가의 차이에서도 온다. 따라서 정부는 지금이라도 예산을 추가로 투입하여 간극을 좁히는 조치를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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