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신
- 한국여자의사회 공보이사
-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 임상교수
퇴근길 전철 안에서 습관적으로 아이폰을 꺼내들고 초록색 네이버 아이콘을 누른다. ‘스티브잡스는 힙스터였다’는 문장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들어가 보니 열 개의 질문이 있고 예, 아니오 대답을 하다 보니 ‘나도 힙스터’ 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다섯 가지 항목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사용하고 그곳에 나열된 음악 앱 중 하나를 통해 음악을 듣고 집에서 원두커피를 내려 마시고 등등 이었다.

내가 힙스터라니? 힙스터가 무엇인지 몰라서 재빠르게 네이버의 검색창을 누르니 네이버의 패션전문자료 사전에 ‘1940년대 미국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속어로, 유행 등 대중의 큰 흐름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패션과 음악 문화를 좇는 부류를 뜻한다’ 라는 정의가 나왔다.

나의 패션센스는 다소 떨어지고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결심하다가도 결국에는 비싸고 멋진 옷보다는 싸고 편안한 옷에 손이 간다. 때로는 아들과 함께 스파브랜드에서 옷을 사 입고 인터넷 쇼핑에서 싸게 산 옷이 맘에 안 들어도 반품하는 것이 귀찮아서 그냥 입어주는 무심한 신경도 갖고 있다.

음악 취향은 극에서 극을 달린다. 음악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이렇다 내세울만한 취향도 없지만 기회가 주어지면 그저 즐기는 잡식성이다.

확실히 패션 힙스터는 아니다. 그렇지만 주류에 반하여 스스로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자신만의 문화를 향유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나도 나름대로의 힙스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혼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나서 내가 힙스터일 수도 있는 이유를 나름대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내 인생은 다수의 의대 동기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가는 것은 사실이다. 의대를 들어갈 때부터 목표로 삼았던 회교국의 의료선교사는 되지 못하였지만 목사인 남편을 따라 중국에서 선교사의 신분으로 4년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우여곡절을 통해 현재는 대학병원에 있는 국제진료소에서 임상교수로 일반내과를 담당하고 있다.

외국인 환자들은 문제가 생기면 전문의보다는 일차주치의의 소견을 먼저 듣기 원하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전문의를 보고 나서도 일차주치의의 의견을 다시 듣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다. 간혹 어떤 환자들은 어디에 가야 할 지 잘 모르고 여러 과를 다니면서 해결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을 진료하고 빠진 틈새를 채우는 것이 내 몫이다.

요즈음 나의 관심사는 인슐린 저항성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환자들도 많지만 나 역시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늘어나는 체중과 함께 발견한 나의 인슐린 저항성이 동기가 되어 연구를 하다 보니 이제는 환자들과 다이어트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고, 때로는 운동 방법에 대해 논의하기도 한다.

어떤 환자들은 관리가 잘 되어 당뇨약을 줄이기도 한다. 의사로서 정말 기쁜 순간 중의 하나이다.

병원 안에서 내 위치가 그렇게 영광스런 자리는 아니지만 환자들과 친구가 되어 수다를 떨 수도 있고,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많은 것을 배울 수도 있는 진료시간이 내게는 정말 즐겁고 감사한 시간이다. 이쯤 되면 나도 나름 의료계에서 독특한 문화를 가진 힙스터 의사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나를 무엇이라고 정의하든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다. 살아오면서 오해를 받은 적도 있고. 억울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그저 묵묵히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궁극적인 기준은 세상 사람들에게 있지 않다는 나 나름대로의 철학 혹은 신앙 때문이다. 내 인생의 막이 내리고 그분 앞에 서게 되는 날 그분이 “브라보!” 박수를 쳐주지는 않더라도 “참 수고 했구나! 내가 너에게 준 길을 나만 바라보고 따라와 주어 고맙다”라고 하시며 꼭 껴안아 주시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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