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보건의약업계(이하 ‘업계’라 함)가 이심전심 함께 일어섰다. 똘똘 뭉쳐 지난 8월12일 발표된 보건복지부(이하 ‘당국’이라 함)의 ‘건보약가 일괄인하 정책 방안’에 강력히 맞서고 있다. 제약협회를 비롯한 제약 5개 단체와 도매협회 그리고 약사회와 약학 2개 단체 및 의사협회와 병원협회 등 업계와 학계가 총망라된 12개 조직이 약가 일괄인하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공동 성명서를 냈다.

업계 전문 언론들도 한결같이, 당국이 그래서는 안 된다는 논조다. 요즈음 업계의 인터넷 검색어 순위를 살펴보면 ‘약가 일괄인하’라는 용어가 단연 1위다. 매일같이 약가인하 관련 기사가 안 나오는 날이 없다. 미증유의 일이다. 난리다.

왜 그럴까? 첫째는 당국의 약가 일괄인하 정책이 아주 잘 못된 정책이고, 둘째는 핵폭탄이 될 약가 일괄인하 정책으로 제약업계가 망하면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인 업계 또한 온전치 못할 것이며, 나아가 국민 건강 및 경제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국이, 1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업계의 마케팅 활동에 지각변동의 영향을 주고 있는 시장형실거래가상환제도(저가구매인센티브제도)와 리베이트 쌍벌제도를 시행해 놓고도, 그것이 못 미더워 부랴부랴 무리하게 약가 일괄인하 정책까지 추가로 들고 나온 것은, 건강보험(건보) 재정상태가 그만큼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에 이를 안정화시키기 위함이리라.

건보재정 악화는 약제비 비중이 선진국보다 높기 때문이고, 또한 약제비 비중이 높은 이유는 국내 약가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아서 그런 것이기 때문에, 거품이 끼어 있는 약가수준을 내려 약제비 비중을 낮추기 위해서는 금번의 약가 일괄인하 정책 추진이 불가피했으며 옳은 일이었다는 것이 당국의 판단이요 업계에 대한 항변이며 국민에 대한 선전이다.

그러나 당국의 판단은 틀렸다. 공권력 남용의 억지고 책임전가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첫째, 약가 일괄인하 정책 추진의 당위성과 이유를 제공하고 있는「약가가 높아서 약제비 지출이 과다하다」는 당국 논리의 성립 요건인 약가가 높다는 것에 대해, 당국이 업계가 항변할 수 없는 ‘근거’를 제지하지도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정책 추진 시 당연히 밟았어야 할, 업계를 충분히 이해시키고 준비시키는 대화 과정도 권도(權道)를 부리고자 함인지 생략됐기 때문이다.

둘째, 건보약가는 의료보험제도 도입 이래 34년간 줄 곳 당국에 의해 책정돼 왔고 그 적정성 여부가 엄격히 관리돼 왔으며, 특히 10여 년 전 종전의 고시가상환제가 폐지되고 실거래가상환제가 새로 시행될 당시 일괄적으로 31%나 인하됐으며 그 이후 매년 5~6차례씩 인하돼, 지금의 약가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당국이 지난 34년간 갖가지 약가정책을 다 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놈의 약가에 아직도 거품이 껴 있다면 그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당국자는 그럼 한 세대가 넘는 긴 시간 동안 정말 까막눈 상태에서 약가정책을 펴왔단 말인가?

그렇다면, 약가 일괄인하 정책이야말로 업계에 대한 책임전가이자 당국의 책임회피수단이 아닐 수 없다. 약가 일괄인하 정책 추진의 유일한 핵심적 명분이 되고 있는, “약가수준이 외국보다 상대적으로 높다”는 근거로 당국은 ‘권순만’씨의 연구 자료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보면, 환율지수 기준으로는 국내 현 약가수준은 외국에 비해 결코 높지 않은 수준이지만, 구매력지수로 볼 때는 분명 우리나라 약가수준이 외국보다 높은 것으로 돼 있다.

이에 대해, 제약업계 측은 신뢰를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구매력지수 국가 간 비교자료는 약가 일괄인하 정책 때문에 직접 피해를 입을 당사자인 제약업계 측의 검증이 사전에 필요하다하겠다.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구매력지수 자체의 특성과 함정을 고려해 볼 때, 당국은 필히 그 자료에 대한 객관적 검증 절차를 반드시 거치도록 해야 한다.

국가 간 구매력지수는 연구자의 구매력 평가 대상 제품 선정 차이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일 국가 내에서라도 조사지역과 조사시점 그리고 조사자 등에 의해 지수 산정에 사용될 구매가격이 상당히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오로지 한 연구자의 구매력지수 자료에 근거해, 적정성 여부 검증도 없이 약가 수준이 외국에 비해 높다고 단정하고, 국민건강을 책임질 의약품산업의 미래를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 약가 일괄인하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아주 잘 못됐다고 생각된다.

또한 당국은 금번의 약가인하 방안에서, 국내 제약기업들이 난립하여 영세화되고 신약개발 투자보다 판매경쟁에 치중하는 후진적 경영활동을 행하고 있는 이유가 높은 약가 때문이라 인식하고, 그 근거로 국내 제약업계의 판매관리비(판관비)가 국내 제조업 전체 평균의 3배나 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제약산업의 특성을 잘 알지 못한 데서 나온 틀린 주장이다.

선진외국과 비교해 보면, 국내 제약업계의 판관비는 결코 높은 수준이 절대 아니다. 국내 제약업계와 비교 가능한 2003년 기준 일본 제약업계의 경우, 매출액 대비 판관비 비율은 무려 48.26%나 된다. 이중 연구개발비 10.85%를 공제하더라도 그 외의 판관비 비율이 37.41%나 된다. 이에 대에 국내 제약업계의 경우, 총 판관비 비율은 41.64%로 이중 연구개발비 2.27%를 제외하면 기타 판관비는 39.37%가 된다. 이를 일본과 비교해 보면 연구개발비를 제외한 기타 판관비 차이는 고작 1.96%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 정도의 차이라면 제약환경과 제반 여건 등이 아주 다른 국가 간 비교에서 차이라고 볼 수 없다(일본자료: ‘약사핸드북2006’ 208쪽 지호우社, 국내자료: ‘기업경영분석’ 2005년판 219쪽, 2010년판 177쪽 참조).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지금 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약가 일괄인하 정책은 타당한 근거도 없이 추진되는 나쁜 정책의 표본이라고 생각된다. 약제비 비중이 높은 원인은 당국이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약가수준이 높기 때문이 아니다. 그동안 당국이 건보약가를 기회 있을 때마다 수없이 인하시켜 왔지만 약제비 비중과 금액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이것이 바로, 약제비 비중이 높은 것은 결코 약가 때문이 아니라는 방증자료가 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약제비 고율에 대한 다양한 원인과 개개 원인에 대한 약제비 기여 비중 등은 국가와 국민 건강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라도 당국과 업계와 연구기관 및 학계 등이 공동으로 면밀히 연구해야 한다. 당국 입맛대로 시간에 쫓겨 엉터리 아전인수식의 연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약가 수준이 높지 않더라도, 약제비 비중이 고율이 될 수밖에 없는 심증적 요인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약제비 높낮이는 국가마다 약제비 지급대상 항목과 부담률 그리고 부담기간 등 약제비와 관련된 의료보험제도의 상이에 따라 전혀 달라질 수가 있다. 때문에 단순히 상대적으로 약제비 부담률이 높다고 해서 곧바로 약가수준이 높기 때문이라고 속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둘째, 처방전 당 기재되는 의약품 품목 수 등의 많고 적음에 따라 약제비가 국가마다 적지 않게 차이가 날 수가 있다. 셋째, 고령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평균 수명이 아주 길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약제비 지출 규모도 상당히 달라진다. 넷째, 특허만료 전의 고가 오리지널 제품에 대한 처방 비중이 국가마다 다를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약제비 지출 비중이 차이가 날 소지가 크다.

이처럼 약제비 비중을 높이는 다양한 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연구도 없이 국내 약제비 비중이 선진국보다 단순히 높다고 해서, 뚜렷한 근거도 없이 그 원인을 오직 약가에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것은, 혹시 제약업계 등이 다루기 쉽고 만만해서 그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지금 업계는 죽을 지경이다. 제약업계 상반기 결산실적을 보면 암담하다. 전문지마다 실시간으로 정보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예를 드나 마나다. 마이너스 성장이고 적자투성이다. 종전에 없었던 일이다. 저가구매인센티브제도와 리베이트 쌍벌제 영향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도 부족하여 ‘약가 일괄인하 정책’이라는 핵폭탄까지 투하하면 국내 제약업계는 탈출구가 없다. 아주 망하는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 살아남을 몇몇 제약회사에 돈 빌려주고 세금 깎아 줄 테니까 신약을 연구개발해 선진화하라고?

앞서 언급한 12개 단체와 언론사를 비롯한 모두가 금번의 약가 일괄인하 정책에 대해 한 목소리로 잘 못됐다고 비판하는 이유는 ‘정말 이것만은 아니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 약가수준의 높낮이에 대해 객관적인 연구와 검증을 통해 제약업계와 신뢰성 있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약제비 고비중 원인과 그 원인들 중 약제비 기여 비중이 심도 있고 공정하게 연구될 때까지 약가 일괄인하 정책은 철회되는 것이 마땅하다.

검증 및 연구 결과, 과연 국내 약가수준이 선진국보다 상대적으로 높다하면 국민을 위해 건보 약가를 높은 수준만큼 인하해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약제비 고지출이 약가로 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약가 일괄인하 정책 방안은 당연히 없었던 것으로 해야 한다. 그것이 당국이 해야 할 책무다.

류충열
한국의약품도매협회

정책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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