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성모병원에 입사 후 독립해 업무를 수행한 지 두 달 정도 되었을 때의 일이다. 섬김 간호라는 개념을 전혀 모른 채 ‘오늘 하루는 그저 맡겨진 일을 실수 없이 무사히 다 마치고 집에 가리라’는 목표만을 가지고 병원을 다니던 때가 있었다.

병원 입사 후 환자들의 상황을 최대한 이해하고, 그들의 신체적 고통을 경감시킬 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까지 배려해주는 간호사가 되겠다고 다짐했었지만, 독립하고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바쁜 일상 속에서 부족한 기술과 간호 지식으로 기계적으로 환자를 간호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매일 바쁘다는 핑계로 환자분들의 요구사항을 하나하나 깊이 경청하지 못했고, 요구사항을 즉시 메모하면서도 잊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 환자분들이 간호사실까지 나와서 다시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들어오는 환자분들의 통증에 대해 나는 매우 무뎌져 있었다.
통증에 대한 깊은 관심보다는 너무도 당연하게 주치의에게 보고하고 처방된 진통제를 투여하는 행동을 습관적으로 하고 있었다.

독립한지 두 달쯤 되었을 때, 약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마른 체격의 남자분이 수술을 위해 입원했다. 그 분은 위암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한 날 부터 지속적으로 통증을 호소했고, 나는 환자분의 통증양상을 주치의에게 보고하고 매일 진통제를 투여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하게 됐다.

그리고 며칠 후 환자분은 위암 수술을 받았고 병실로 돌아왔다. 수술 후에도 환자분은 지속적인 복부 통증으로 두 시간 간격으로 진통제를 원했고, 아무리 진통제를 투여해도 큰 효과가 없어 배를 웅크린 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간호 처치를 위해 병실에 들어서면 환자분은 투약 준비를 하는 나를 보면서 “진통제 언제 줄 거야?”라며 진통제 투여를 재촉하곤 했다. 나는 바쁘다는 상황만으로 그저 “주치의선생님께서 처방 해주면 약국에서 약을 받아오는 대로 바로 드릴게요” 라는 말만 한 채 뒤돌아섰다.

나는 할 일이 많다는 핑계로 환자분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조차 건내지 못한 채 일에만 집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손에 작은 상처가 나서 반창고를 붙이고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손으로 한창 투약할 약을 준비하는데 환자분이 나를 불렀다. 나는 당연히 진통제를 원한다고 생각을 했고 “000님 진통제 원하세요?” 라고 물었다. 그러자 환자분은 “내가 무슨 진통제만 달라는 사람이야?”라고 하셔서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

환자분께서는 제 손을 가리키며 “손 왜 그래?”라고 물으셨고 나는 “좀전에 장에 손을 스쳤어요” 라고 대답하자 환자분은 “어디? 일하는데 손은 안 아파? 조심했어야지”라고 말씀하셨다.

내게 얼마나 아프냐며 조심하라고 하시고는 내 손을 유심히 보는 환자분의 모습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의 큰 고통보다 타인의 작은 고통에 더 관심을 가지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 환자분들의 고통에 무덤덤해진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간호사인 내가 환자분의 고통을 감소시키고, 만족과 감동을 드려야하는데 지금까지 환자분들에게 관심과 감동을 받고, 섬김을 받았으니 그동안 환자분들의 고통을 그저 타인의 작은 고통으로만 생각했던 나 자신에 대해 깊이 반성하게 됐다.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간호를 제공함으로써 내 인생에 너무도 값진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음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앞으로 환자분들에게 간호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실천하며 부족한 부분을 조금씩 채워 나가려고 한다.

노현희
여의도 성모병원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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