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편하게 찌르세요.”

생명선이라 불리는 인조혈관을 가진 팔을 선뜻 내주시며 편안한 미소를 지어주신 환자분.

지금은 이 곳 인공신장실에서 7년이라는 경력을 갖고 있지만 그 때만 해도 인공신장실에 온지 2달 남짓으로 익숙하지 않은 인조혈관주사와 인공신장실에 온지 얼마 안 되는 간호사라면 무조건 믿지 못하겠다는 말기 신부전 환자들의 걱정스런 시선으로 병원에 처음 입사 했을 때의 신규 간호사 시절보다 더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냈던 때였다.

보통 인공신장실에서의 동정맥루 바늘삽입 트레이닝은 바늘을 삽입하기 비교적 쉬운 환자를 선배(프리셉터) 선생님이 지정해 주는데 새로 온 나에게 흔쾌히 팔을 내밀며 허락해주신 그분께 죄송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제가 인조혈관 바늘 두 번째 꽂는 건데 이렇게 흔쾌히 받아주셔 너무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드렸었다.

다른 환자들의 경우는 선배(프리셉터) 선생님의 부탁에 할 수 없이 팔을 내어 주면서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근심 어린 시선이 혈관에 바늘을 꽂을 때마다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이마엔 송글송글 땀이 맺힐 만큼 긴장하고 떨게 했다. 그런 내게 그 환자는 너무나 큰 힘이 되어주셨다.

그 분은 60대 중반의 남자 환자로 30대 중반부터 혈액투석을 시작해 한번 신장이식을 했고 4년 후 재발로 인해 다시 투석을 하신지 24년이 넘은 투석실의 역사와 함께 하신 분이다. 그간 얼마나 힘든 고비도 많으셨고 우여곡절도 많으셨을까? 그래서인지 그분은 웬만해서는 힘든 것도 속상한 것도 잘 내색하지 않으셨다. 항상 웃는 얼굴로 우리 간호사들에게 먼저 미소를 지어주셨다.

일 배우기에 또 일하기에 급급했던 어느 순간 나의 눈에 그분의 미소 뒤에 표현하지 않는 우울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떻게 저분께 다가갈까 고민하다 마침 그분이 속이 불편하여 위내시경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전에 위내시경을 받았던 내 기억을 되살려 왜 위내시경을 받았는지 그때의 느낌이 어땠는지, 내가 겪었던 속 불편함 증상과 또 검사 후에는 어땠는지 식이 및 약물 요법 후 효과 정도 등을 말씀 드렸다. 그 분은 본인과 같은 증상을 겪고 그로인해 도움을 주고자 했던 내게 마음을 열어주었다.

그 후로 나는 그 분이 투석하러 올 때마다 틈틈이 시간을 내어 조금씩 그 분과 대화를 하게 되었고, 대화를 하다 보니 그 분이 원하는 건 특별한 친절이나 커다란 관심이 아니며, 단지 자신의 오랜 투석 생활과 그로 인한 우울한 마음에 대해 대화 할 수 있는 상대가 필요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반성했다. 혹시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그 분과 같은 환자분들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이제는 그분의 얼굴을 잠깐만 봐도 알 수 있다. 또 다른 환자분들이 자신의 마음을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조금은 알 것 같다. 작은 관심과 먼저 다가가는 배려가 내가 섬기고자 하는 환자분들에게 큰 희망과 사랑을 줄 수 있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이희진

여의도성모병원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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