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들이 군대에서 사망하는 사건들이 발생할 때 마다 거론되는 것은 군 의료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매번 군 의료를 성토하는 글이 나오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겠다고 다짐하건만 군대 내 사망 사고는 반복된다. 최근에 군대 내 사망 사고를 확실하게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장기군의관의 확보가 중요하다는 주장과 함께 국방의학원 설립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과연 국방의학원 설립이 대안이 될까? 단언컨대 그렇지 않다. 왜 그런지 한번 살펴보자. 병사들의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온 나라가 군 의료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가만 들여다보면 군 의료 체계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는 에매하다. 지휘관이 병사의 문제를 묵살하다가 때늦게 이송해서 사망한 것인지, 의료의 문제라기 보다는 병사 자체의 문제인지, 의료 사고라고 한다면 정말 의료진의 문제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그냥 군 병원에서 사망했으니 군 의료사고이고 의료 체계의 문제라고 한다. 이처럼 원인 규명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군 의료가 경험 없는 단기 군의관들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면서 단기군의관들을 주범으로 단정 짓는다. 그렇기 때문에 실력 있고 경험 많은 장기 군의관의 확보가 절실하다는 주장인데 과연 그럴까? 군 의료의 대부분이 단기 군의관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맞다. 또 아무래도 병역 의무이다 보니 아무려면 근무의 성실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것도 맞다. 하지만 단기 군의관들이 실력이 없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군 의료의 중심인 병원급에는 대부분 전문의들이 포진하고 있는데 전문의가 실력이 없어서 사고가 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전공의들이 응급 1차 진료의 대부분을 감당하고 있는 민간 대형병원은 과연 어떻다는 말인가? 내가 만나 본 단기 군의관들은 의외로 의사로서의 사명감에 충실하고 실력도 뛰어나고 전문가 정신도 투철했는데 도대체 어디에 근무하는 단기군의관들이 특별히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훈련소의 경우 짧은 시간 안에 적은 수의 군의관들이 하루에 수 백명을 1차 진료부터 치료까지 그것도 병의 경중에 따라 분류된 환자들도 아니고 그냥 밀려드는데 양질의 의료를 한 다는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 와중에도 수 차례 전문의가 진료를 했고 특이 소견이 없어서 외진이 불필요하다고 했는데 아픈데도 괜찮다고 했다는 병사의 말만 믿고 군 의료를 매도한다면 그 자리에는 누가 있어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군의관의 자질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진료 체계를 개선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장기 군의관이 대안일까? 글쎄. 대부분의 장기 군의관은 임상 현장 보다는 행정에 치우쳐 있어서 민간 병원에서 근무하다 막 입대한 단기군의관들에 비해 진료의 감이 결코 낫지 않을 텐데 도대체 장기군의관이 실력이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국방의학원을 졸업한 군의관이 배출되면 그들은 행정은 보지 않고 대부분을 임상에만 투여하겠다는 말인가? 가능할까? 그러면 행정은 단기 군의관이 하나? 거론되는 원인 가운데 또 하나가 군 의료 시설의 열악함을 든다. 민간 병원에 비해 시설이 열악한 것은 맞다. 하지만 최근의 중요 군 병원들은 결코 민간 병원에 비해 낙후되지 않았다. 다만 의사가 아닌 전문 의료 인력, 예를 들면 의료 기사나 약사와 같은 인력이 부족한 것은 맞다. 설령 시설이 뒤 처진다는 것을 전제한다고 해도 과연 열악한 시설이 의료사고의 주요 발생 원인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안전한 의료는 결코 최첨단 장비에 의해서만 보장되지 않는다. 내시경 검사를 했는데 위암임에도 불구하고 진단을 못 내린 것은 위 내시경 기계가 낙후되어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분명 의료 시설과 장비의 개선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그것이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모든 주장을 인정한다 치자. 원활한 장기 군의관 수급을 위해 국방의학원의 설립이 필요할까? 장기 군의관이 왜 그렇게 안정적으로 많이 필요한지도 의문이지만 장기 군의관을 확보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국방의학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독특한 발상이다. 왜냐하면 의과대학이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 다는 것이고 국방의학원을 졸업한 사람은 모두 군에서 정년을 맞는 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과거의 경험으로 보면 모순투성이다.

간단하게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겠다. 의과대학의 필수적으로 필요한 학문 분야로서 기초의학이라는 것이 있는데 현행 제도 하에서는 겸임이 아닌 정식으로 임명받은 교원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규정을 충족하기란 일반 종합 대학에서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민간 종합대학에도 기초 교수 자리가 없어서 교원을 확보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자가 없어서 공석인 경우가 많은데 국방의학원에 누가 지원할 것인가? 국방의학원의 교육을 서울대학교가 책임을 지겠다고 하나본데 이 또한 어리둥절한 발상이다. 그나마 가능한 시나리오라면 서울대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한 교수들로 채워야 할 지 모른다. 솔직히 다분히 정치적인 말로 들린다.

지금도 그렇고 과거에도 장기군의관 확보를 위해 정부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온갖 혜택을 주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장기 군의관들은 왜 군에 오래 남지 않을까? 약속을 지키지 않은 부도덕한 사람들만 그 동안 선발했나? 우리 군은 엘리트라고 자부하는 군의관들을 제대로 예우한 적이 없다. 보병 중심의 우리 군에서는 군의관을 군인정신이 결여된 찌질하고 항시 눈여겨봐야만 하는 부류로 보지는 않았던가? 군의관 문제가 발생하면 그 어느 병과보다 가혹하게 몰아세우지 않았던가? 문제가 발생하면 모두 군 의료의 문제로 몰아갔지 않았던가? 자기 지휘 하의 병사에게 문제가 생기면 군 병원으로 던지고 나 몰라라 하지는 않았던가? 신분에 대한 불안감과 보병 중심의 군 문화에서 발생하는 자괴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의사로서의 최고의 에리트들이 설 자리는 없다. 당장 사회에 나가도 훨씬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의사들인데 그들이 군을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법적으로도 기한이 만료되면 막을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우선 군의에 대한 군 전체의 시각이 변화되어야 한다. 전쟁을 치루는 미군에서 군의관들의 대우를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확연이 드러난다. 계급시스템과 대우 면에서 무엇이든 보병병과와 동일한 기준으로 보지 말고 오랫동안 군에 몸담을 수 있는 계급 체계와 독립성을 인정하려는 군 전체의 합의가 필요하다.

또 한 군 의료시스템의 개선 및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우수한 군 간호 장교들까지 동원해서 수 많은 환자들을 1차적으로 screening 하고 중증도에 따라서 다음 단계의 진료 체계로 넘어가는 triage system 을 도입해야 한다. 부대 단위의 예방적 건강관리 시스템도 도입해야 한다. 경중의 구별도 없이 오는 순서대로 진료를 하다보면 군 생활 자체를 힘들어 하는 대부분의 경증질환 병사들에 치어서 중증의 환자에게 집중할 수가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 한 군 의료는 외상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관으로 집중 육성되어야한다. 군에서 위암 치료와 당뇨 치료의 전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외상 분야에 군 의료를 집중하고 나머지 분야는 가급적 민간 병원으로 보낼 수 있는 체계가 훨씬 유리하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설 투자, 유능한 군의관 확보보다 의료사고를 막으려는 안전한 의료 문화의 정착이다.

최근 민간 병원은 의료사고를 보는 시각을 달리하고 있다. 안전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다면 시스템으로 의료사고의 70% 정도는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최근 군 병원도 민간의 이런 추세를 받아들이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군 병원에서 필요로 하는 의료는 최고 수준의 고난이도 시술이 아니라 어느 의사가 군의관으로 근무를 하더라도 의료 사고로 이어지지 않을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안전한 의료문화와 안정적인 진료 시스템의 부재는 시설과 기자재의 투자, 그리고 장기군의관의 안정적 확보 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이 점만 충분하게 지켜진다면 군대 내 의료사고는 현재보다 월등하게 감소시킬 수 있다. 의료계가 고작 40여명의 의사나 늘어나는 것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집고 넘어가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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