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영상장비 수가인하 논리와 방법 틀렸다!

4개월만에 중복 인하 건정심 구성 '속빈강정'

무리하게 수가 억제하면 의료행태만 왜곡시켜

건강보험료 인상 어렵다면 '적자유지'도 한 방안

성익제

전 대한병원협회

사무총장
KOICA 아프가니스탄

의료자문관

본지는 의료경영 및 관리 전문가인 성익제 전 대한병원협회 사무총장의 도움으로 본 란에‘의료경영칼럼’을 신설한다. 본란에 소개될 칼럼에서는 필자가 서울대병원경영연구소, 한국의료관리연구원, 경희대 의료영영학과 겸임교수, 동국대병원행정처장, 대한병원협회 사무총장 등 의료경영과 밀접한 분야에서 쌓아 온 연구와 실무경험을 통해 의료제도, 건강보험, 의료자원 관리 등 의료경영에 전반에 관한 사항을 비판적, 분석적 의견을 제시해 나갈 계획이다. 현재 필자는 KOICA 아프가니스탄 재건 의료자문관으로 아프가니스탄에 체류하고 있어 칼럼은 당분간 격주 단위로 연재한다.

정부는 지난 5월 1일 CT, MRI, PET 등 주요 영상장비의 보험수가를 전격적으로 15~30% 인하 했다. 의료비 지출이 너무 빠르게 증가해 이대로 두면 머지않아 건강보험재정 적립금이 바닥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병원계에서는 이에 반발해 즉각 성명서를 발표하고 수가인하의 부당성을 가리기 위한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공단과 의료계간에 건강보험 수가협상을 한지 4개월 만에 또다시 영상장비 수가를 인하하는 것은 정부 스스로 수가협상 자체를 부인하고 의료계를 기만하는 것이라는 게 병원계의 생각이다.

건강보험수가는 상대가치 점수와 상대가치 점수당 단가에 의해 결정된다. (A항목 수가 = A항목 상대가치점수 × 상대가치 점수당 단가). 여기서 상대가치 점수당 단가는 매년 보험공단 이사장과 의료단체 대표 간에 수가협상에 의해 결정되며, 항목별 상대가치점수는 건강보험 정책심의위원회(의료공급자 대표, 보험가입자 대표 및 공익대표로 구성)에서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정부는 상대가치점수 조정과 점수 당 단가 조정은 각각 별도기구에서 독립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므로 영상장비 상대가치조정에 의한 수가인하가 합법적이고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위의 두 요소는 상호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상호 독립적이라고 볼 수 없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번 영상장비 수가인하는 철회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연초에 수가를 조정하고 4개월 만에 또다시 영상장비수가를 인하하는 것은 수가를 ‘중복해서 인하’하는 것이다.

‘중복 인하’라고 보는 이유는 금년도 병원수가는 1% 인상되었으나 전년도 물가상승률이 4~5%(임금 및 소비자물가상승률의 가중평균)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병원수가가 3~4% 인하된 셈인데, 또다시 영상장비수가를 15~30% 인하하는 것은 명백한 ‘중복 인하’이기 때문이다.

매년 보험공단과 의료계 간에 이뤄지는 수가협상은 의료기관 전체의 경영수지를 근거로 이뤄지는 것이며, 여기에는 영상장비부문의 경영수지는 물론 의료 외 부문의 경영수지까지도 포함된다.

따라서 수가인상률 결정 후에 또다시 상대가치를 조정해 영상장비 수가를 인하하는 것은 수가를 ‘중복 인하’하는 것이 분명하다. 부득이한 사유 때문에 긴급하게 특정 항목의 상대가치를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더라도 감액되는 금액만큼 다른 항목에서 증액시키거나 또는 연말에 상대가치 점수 조정과 병행해 수가협상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전체 병원의 경영수지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건강보험 정책심의위원회의 기능과 구성을 바로 잡지 않고는 상대가치점수의 합리적인 조정과 수가결정을 기대할 수 없다. 건정심의 구성을 보면 의료공급자 대표 8명, 보험가입자 대표 8명, 공익대표 8명으로 구성되어 있어 얼핏 보면 매우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을 구성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일방적으로 의료계만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의료계에서 아무리 타당한 주장을 해도 수가인상에 보험가입자 대표와 공익대표가 동의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의료공급자 대표에는 제약이나 간호처럼 의료서비스 공급과 관련이 없거나 의료기관을 대표한다고 보기 어려운 단체가 포함되어 있고, 의료공급자 간에도 이해가 상충되어 의견통일이 어렵다. 이와 같은 상황 하에서 영상장비 상대가치가 합리적으로 조정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셋째, 보험공단에서 제시한 영상장비 수가조정률 계산방법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영상장비의 수지현황을 파악하려면 영상장비에 대한 항목별 원가계산을 실시하거나 또는 부문별 원가계산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영상장비에 대한 간접비(병원 진료 지원 부문 및 시설관리부문, 행정부문 등에서 발생하는 원가 중 영상장비 부문에서 부담해야 하는 몫)를 정확하게 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행위별 원가 내용을 보면 간접비의 비중은 통상 10~30%에 달하고 있음). 그런데 공단의 영상장비 수가조정률 계산방법을 보면 영상장비 수입에는 비급여 수입까지 포함시켰으면서도 원가에는 간접비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입원관리비와 외래환자 관리비에 병원의 간접비가 포함되어 있다는 주장은 원가계산의 원리도 모르는 사람들의 주장임).

뿐만 아니라 일평균 검사건수 3건 이하의 장비를 계산에서 제외하였는데 그렇게 하려면 일평균 검사건수가 일정건수(예컨대 15건) 이상의 장비도 제외해야 한다.

병원에서 하루 8시간 이상 장비를 가동하는 것도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일평균 검사건수, 소요인력, 장비가격, 소요재료 등에 대해서 표준을 설정하고 행위별 표준수입과 원가를 계산하는 것이 옳다.

하루 8시간 이상 장비를 가동시키는 대형병원의 영상장비는 포함시키면서 일평균 검사건수 3건 이하의 중소병원 장비를 제외한다는 것은 결코 공정한 계산방법이 아니다. 영상장비에 대한 원가계산을 올바르게 하면 오히려 수가를 인상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넷째, 건강보험재정의 적자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수가를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건강보험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험료 인상, 의료기관 설립허가 및 병상신증설 기준 강화, 수가인하 및 항목별 상대가치점수 조정, 정부의 재정지원, 수가제도의 변경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이중 수가제도의 변경이나 의료기관 설립허가 및 병상신증설기준 변경 등은 오랫동안 신중한 논의를 거쳐 결정돼야 하므로 정부에서는 손쉬운 방법으로 영상장비 상대가치 점수 조정을 택한 것 같다.

그러나 특정항목의 수가상대가치 점수를 조정하려면 해당 항목의 상대가치가 다른 항목에 비해 과다하게 책정되었음을 입증해야 하며, 그렇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연말 수가조정에 반영해 상대가치점수와 점수 당 단가를 동시에 조정하는 것이 옳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특정항목의 상대가치점수를 인하하기 보다는 보험료 인상을 통해서 보험재정 건전화를 꾀해야 할 것이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보험료 인상이 어렵다면 여건이 나아질 때 까지 보험재정을 적자상태로 유지할 수도 있다. 일본의 예를 보면 우리나라보다 보험재정 적자가 훨씬 심각한데도 수년 동안 적자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험재정이 적자라고 해서 당장 무슨 큰일이 난 것처럼 호들갑 떨며 수가인상을 억제하거나 특정항목의 상대가치점수를 인하하는 것은 매우 신중하지 못한 처사라고 본다.

의료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영상장비 수가를 인하하려는 것은 이를 통해 의료비 증가를 억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정부는 매년 물가상승률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으로 수가를 억제해 왔지만 의료비는 오히려 종전보다 훨씬 큰 폭으로 증가하였으며 의료행태만 왜곡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누구도 시장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