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사 ‘사람+거래처’ 잃어 타격 커

국내 제약업계가 열 받았다. 큰 업체들이 더 화났다. 다국적제약사들에게 쓸 만한 영업사원들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다. 돈과 시간을 들여 기껏 키웠더니 ‘털도 안 뽑고 먹는다’고 분노하고 있다. 상위권 제약업체 영업본부장들이 모여 대책회의도 가졌다. 언론에 사실을 공개해 몇몇 다국적제약사의 부도덕성을 문제 삼기도 했다. 제약협회도 나서 어준선 회장이 일간지 등과의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슈화하기도 했다.

실제로 다국적제약사의 몰염치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공장도 연구기능도 없이 본사의 우수 브랜드 제품을 완제품으로 들여와 파는 이들은 우수한 제품력, 넉넉한 자본력을 무기로 남이 키워 놓은 우수인력을 데려와 힘 안들이고 병원 인맥을 만들고 쉽게 제품을 팔며 돈을 번다. 도덕성, 공정성을 유난히 강조하는 이들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해 토종제약사 입장에선 가증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일견 일리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국내 제약 영업직원들 상당수가 ‘기회가 된다면 다국적제약으로 옮기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그만큼 전반적 여건이 국내 제약과 차이가 많다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다국적제약에 있는 사람은 ‘현실에 만족하고 현 직장에서 톱의 위치까지 오르겠다’는 의지를 가진 반면, 국내 제약 직원은 ‘다국적사에서 제안이 온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옮기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직원 빼가기 실태와 문제점
국내의 최상위권 업체들조차도 다국적제약의 직원 빼가기에 속수무책 당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톱클래스 제약사 영업총책임자급들이 긴급 회동했다. 더 이상 다국적제약사들의 직원 빼가기를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대책 마련을 위한 만남이었다. 이 자리에서 다국적제약사의 행태가 낱낱이 드러났다.

다국적제약사들은 대규모 공채를 실시하지 않는다. 필요시 마다 몇몇씩 충원하는데 신입사원도 있지만 경력직도 많다. 그 경력직의 상당수는 국내 제약 출신이다. 필요한 타깃이 정해지면 헤드 헌터들이 중간에 나선다. 특별한 노하우를 가진 개인도 있고, 거대 신약 도입의 경우 한 팀 단위의 인력이 필요하기도 한 데 핵심 인력을 데려와 그와 연관된 인력을 굴비 엮듯이 엮어 데려가기도 한다. 제약협회가 최근 회원사 대상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했더니 최근 3년 동안 33개 국내 제약사가 외자사에게 235명의 영업직원을 빼앗겼다는 답변을 받았다.

국내 제약사들은 상위 업체들을 중심으로 주로 대규모 공채를 통해 인력을 선발한다. 기초부터 교육시켜 60~90일간의 현장 트레이닝을 통해 인수인계가 이뤄지고 홀로서기가 가능하려면 한 2년은 걸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다수가 탈락한다. 신입사원 100명 가운데 2년 후에 살아남아 제 역할을 하는 인원은 15~16명에 불과하다. 물론 연차가 지나면 지날수록 그 인원은 줄어들기 마련인데 바로 그들을 빼앗기는 것이다.

제약회사들에게 직원을 빼앗겼다는 의미는 영업 노하우를 빼앗겼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개인의 자질이나 품성이 스카우트 표적의 주요 요인이 아니라 그 직원이 거래처(주로 의료기관)와 얼마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느냐가 선택되어지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는 전언이다. 다시 말하면 한 직원의 전직은 한 업체와 의료기관간의 거래관계까지도 이전되는 것. 빼앗긴 쪽에선 다시 시작해야 하고, 빼앗은 쪽은 따로 준비없이 의료기관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실제 다국적으로 간 영업직원들은 그동안 다니던 거래처에 잠시 발걸음을 끊다가 한 달 정도가 지나면 다시 들락거린다는 것이다.

영업총수들은 영업비밀보호 관련법에서 일정기간 동업종 취업을 금지하고 있는 조항 등을 들며 다국적제약사들을 몰아붙인다. 도덕적•윤리적 문제도 제기한다. 어떤 경우는 공식 항의를 해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사과도 받아내기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공장은 철수하고 연구개발(R&D)투자는 외면, 고용창출도 없고 세금기여도 없는 다국적제약사가 본사의 우수 신약을 완제 수입으로 들여와 남들이 키운 영업사원과 그가 가진 의료기관에 대한 노하우를 활용, ‘땅 짚고 헤엄치듯’ 쉬운 돈벌이에만 급급하다는 것이 국내 제약사들의 다국적 제약사들에 대한 비난이고 이 부분과 관련해선 다국적사도 딱히 답변할 것이 없어 보인다.

왜 다국적제약사인가
5년 경력의 한 다국적사 영업직원은 자신의 꿈을 “이 곳에서 ‘톱’의 위치까지 오르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곳에서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계속하고 싶고, 기왕이면 CEO까지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 만큼 회사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영업을 하다보면 국내사 직원들과 만나기도 하는데 이것저것을 비교해 보니 모든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성과급 등이 있어서 단순 비교가 어렵긴 하지만 연봉은 국내사에 비해 한 직급 높은 수준인 데다 제품력이 뒷받침돼 어느 곳에서든 자신 있게 제품을 소개할 수 있고, 직원들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 기준에 따라 합리적으로 이뤄지며 복지도 잘 돼 있다. 특히 자신이 사내 누구에게든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고, 자신의 의견이 함부로 다뤄지지 않는다는 점에 만족한다는 설명이다.

10년 경력의 한 국내 제약사 영업팀장급은 “지금이라도 다국적사에서 콜이 온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아마도 국내사 영업직원들의 다수가 그럴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다국적제약으로 전직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음을 의미한다는 것. 연봉이 뛰고 그 곳에서 딴 곳으로 가더라도 몸값 기준이 일단 달라지게된다는 얘기이다. 게다가 직장 분위기, 복지혜택 등 부러운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국내 제약의 문제점은
영업직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국내 제약의 우선적 문제점은 합리적인 평가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사 등에 있어서 학연, 지연이 영향을 끼치고 CEO 등과의 관계가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는 지적이다. 업무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의 PDA폰은 왠지 감시하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불편해 진다는 지적이고 심지어 영업직원을 막 대한다는 불만도 제기하기도 한다. 능력이 아닌 직급 위주의 연봉 책정으로 일한 만큼 보상받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고, 초봉만 높고 연차가 갈수록 낮아지는 봉급체계에도 이의를 제기한다.

다국적제약의 국내 제약 영업직원 빼가기는 도덕적으로 비난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궁극적 선택은 영업직원들의 몫이다. 그들이 ‘돈을 좀 더 주겠다’는 다국적제약의 제안에 ‘고맙습니다’며 바로 짐을 싸는 상황이라면 국내 제약사가 더 심각하게 문제인식을 해야 한다. 영업직원들이 긍지를 갖지 못하고 왠지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 제약회사는 우수 인력을 보유할 자격이 없는 곳이다.
/ 김영주 기자 yjkim@bo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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