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문준 원장 <서면메디칼정근안과>

장비 부족 고급진료 못해 안타까워

돋보기 덕에 안과 인기 최고
일회성 아닌 항구적 지원 필요

2008년 대한의사회 창립100주년을 두 해 앞두고 인술의 범세계적 전파를 위하여 그린닥터스가 주최한 실크로드의료대장정의 일환으로 제3, 4국 카자흐스탄과 키르키스탄 의료봉사단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고대 동서양의 교역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실크로드의 여러 갈래 중의 하나인 텐산북로가 지나가는 경로에 이 두 나라가 위치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텐산산맥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몽골 중국과 접하고, 서쪽으로는 카스피해, 북쪽으로는 남부 시베리아까지 뻗은 중앙아시아의 넓은 나라이며, 키르키스탄은 톈산산맥 중앙에 위치한 산악국으로 빙하로 덮인 높은 산들과 호수가 많고 북쪽으로 카자흐스탄, 동남쪽으로 중국과 국경을 이루고 있다.

6시간 반의 비행 후 어둠 속의 알마타 공항에 도착하였다. 현지시각은 오후 11시. 1시간정도 자동차로 이동하여 숙소에 도착해 바로 취침에 들어갔다.

아침! 이식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인구 약 5만의 우리나라의 군 정도의 행정구역으로서 중심부에 지역병원이 하나 있는데 이 병원의 진료실을 몇 개 빌려서 진료봉사를 실시하였다.

이식의 아침은 신선한 공기, 맑은 하늘 ,눈부신 아침햇살, 만년설의 산맥, 광활한 대평원 등이 시야를 가득 채우며 이국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지역병원에는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줄을 서느라 부산했다. 내과, 외과, 소아과 부인과, 안과로 진료과목을 나누어 6명의 의사와 약사1명 간호사3명 행정요원3명 이 진료를 하여 첫 날 약 280명, 둘째 날 약 350명의 환자를 진료했는데 우리 진료팀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 더 많은 환자들이 내원했다는 후일담이 있었다. 특히 안과에서 돋보기안경을 나누어주는 바람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려 매일 10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하여야만 했다.

이곳의 의료환경은 열악해 보였고 진료의 질도 낮아 보였는데, 환자들은 한국의 선진 의료기술에 대한 기대감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으며, 안과의 경우 이동진료를 해야하는 여건상 장비의 준비가 힘들다는 제약 때문에 고급진료를 하지 못해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러나 이곳 지역병원의 직원들까지도 우리 봉사팀의 진료를 앞다투어 받았고 또 돋보기를 받기위해 애쓰는 모습들을 보고서는, 발달된 의료기술에 대한 갈망이 크고, 또 기본적인 물자의 부족으로 생활에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 날은 오전진료만 하고 지역병원장 및 직원들과 이별식 및 간단한 장비 및 약품전달식을 하고 키르키스탄을 향해 출발했다.

이식에서의 추억은 점심시간에 마을 뒷산 계곡에 올라가서 도시락을 먹은것, 뒷산이라는 곳이 절경이어서 약 15분정도 차로 오르니 회색빛 바위산에 짙은 초록의 침엽수군락이 머리카락장식처럼 멋지게 자라나 있고, 깊은 계곡에는 눈녹은 물이 사행으로 흐르고 있었는것, 멀리 만년설의 설산을 배경으로 코발트색의 호수가 산속에 호젓하게 자리하고 있는 정경등 이다. 카나디안 록키산맥의 절경 빅토리아호수를 축소해놓은 듯한 아름다운 풍경이 이식 뒷산에 소문도 없이 자리하고 있었다. 또 한 가지는 출근길에 수많은 소떼가 도로를 건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말을 탄 소치기 목동이 아침햇살을 등지고 힘차게 소리치며 소떼를 모는 모습은 자연의 힘과 인간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 주는 듯 했다. 길이 막힌 많은 차량들은 이 행렬이 끝날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고만 있었다.

키르키즈스탄의 수도는 비쉬켓.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광활한 대지엔 양과 소와 말이 노닐고 있다. 초록보다는 거의 갈색 내지 회색의 황무지같은 땅과 그리고 작은 구릉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만년설의 눈녹은 물이 강을 이루며 흐르고 있고 초록의 경작지도 눈에 띈다. 고원지대 키르키즈스탄은 우리나라의 농촌 모습과 유사했다.

도착시각은 밤 1시. 선교사님의 아파트를 빌려 사용했다. 20년 전 군의관 복무시 살았던 낡은 군인아파트 생각이 났다. 6시기상 화장실 하나로 7명이 시간을 나누어 사용하고, 식사 후 1시간가량 차량으로 이동하여 진료지역에 도착하였다.

진료장소는 한국기아대책단체가 이 곳 영농지도자 양성교육을 위해 설립한 농군학교에서 실시하였는데 깔끔하고 시설이 좋았다. 역시 많은 환자들이 내원하였고, 전체 약 300여명 정도 진료하였으며 안과의 인기는 돋보기덕분에 끝이 없었다.

비쉬켓에서의 진료는 오지를 찾아가서 진료한 후 돌아온 다음 다시 다른 오지를 찾아가는 일정이어서 다음날엔 숙소로부터 1시간 20분간 떨어진 또 다른 곳으로 찾아갔다.

중간에 레닌 동상도 보이고 구 소련시대의 상징물들이 마을에 그대로 설치되어 있었다.

둘째 날, 군부대 뒷켠에 자리하고 있는 보건진료소급의 조그만 진료소를 빌려 진료를 실시하였다.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이슬람교도이다.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차분한 표정으로 편안하게 앉아있는 여인들의 모습은 사진에서 많이 보았던 전통 이슬람 여인의 모습이었고, 짧은 모자를 쓰고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의 모습도 눈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시골로 갈수록 사람들이 차분하고 여유가 있었으며 표정이 온화해 보이는 것 같았다.

실크로드 의료대장정 중 카자흐스탄과 키르키즈스탄의 봉사는 총 1000여명의 현지인을 진료하였고, 그들에게 조금이지만 한국의 선진의료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진료팀은 현지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던 것 같다. 아직 외부의 도움을 많이 필요로 하는 그들의 의료환경을 볼 때 앞으로는 일회성이 아닌 보다 체계적이고 항구적인 지원을 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이들 두 나라에 의료를 통해서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면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지고 있는 이들 두 나라와 앞으로 예상되는 경제적인 차원에서의 상호 이득창출에 의료가 일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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