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평론가 수필 릴레이]

- 이창란 <수필가문인협회 회원 · 전 송림소아과의원장 · 의사평론가>

-경영기법과 몇 사람의 생명을 구했을까?-

1500명 내외의 환자 생명을 구했을 때마다 무릎 꿇고 감사했다. 이제 현직에서 물러나 조용히 추억을 더듬어 생각해 본다.

의사란 누구인가? 일생을 환자를 위해 봉사하고 자기 가족의 안전과 평화와 행복을 위해 살아왔다고 생각된다.

환자에게 주는 약 봉투는 부인의 옷 색깔에 맞추어 기호에 신경을 쓴다. 그리하여 즐거웠던 대화가 끝나면 점잖게 환자에게 안부를 전해주십시오. 레지던트 시대 한가한 날 도서관에 가서 향수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향수의 원료는 크게 분류하여 동물성과 식물성 두 가지가 있다. 동물성 원료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사향(麝香)과 용연향(龍涎香)이 있다. 사향이라는 것은 중국 사천성과 운남성에 사는 특종사슴의 생식기에서 나오는 분비물을 말린 것이고 용연향은 고래가 교미기에 바다에 배설해 놓은 호르몬 분비물을 해녀가 잠수작업으로 꺼내어 말린 것이다. 고급 향수에는 이 두가지 중에 어느 하나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그러고 보면 향수와 성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셈이다.

식물성 원료는 장미 백합 정자향 같은 프리지아 수선 아카시아 월계수 등 향기가 웬만큼 좋은 꽃들은 대개 향수의 원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성과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다. 향기가 풍기는 것은 나비를 유인하기 위해서지만 꽃향기 그 자체는 꽃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냄새이다. 성과 관계가 있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보아 정당한 이론이다. 그런데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빛깔이 없는 흰 꽃일수록 향기가 강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색채로 나비의 시각을 자극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신 강한 향기로 나비의 취각을 자극하여 유인하기 위해서이다. 결국 그렇게 따지고 보면 여자들이 향수를 애용하는 것은 이성을 끌기 위한 본능적 행위라고 보아야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개업을 시작할 때 종합병원과 경쟁을 위해 인원과 장비 시설을 확장했다. 종합검사 기구 엑스레이를 도입, 병원 근대화 시설과 장치에 신경을 써서 깨끗하고 쾌적한 병원을 만들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일본을 비롯한 구미병원을 견학하고 사회보장제도인 의료서비스는 의사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있었다. 한국도 머지않아 이러한 의료보험 제도가 올 것을 예감했다. 그때가 오기 까지는 의료경기는 황금시기였다. 개업한지 몇 해가 지나 많은 환자가 우리 의원을 찾았다. 입에서 입으로 알려져 마포 서대문에서 꽤 이름이 알려졌다. 해마다 환자수가 늘고 의원이 번창 할 수록 나는 더 긴장이 되었다. 나의 지혜가 의원의 번영을 일군다. 나는 경영대학원 1년 연구과정을 공부했다. 나는 직원 11명의 조그마한 의원 경영철학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했다.

시대는 지배하는 위치에서 이제는 섬기는 지도자의 시대가 왔다. 환자(고객)를 섬기고 아랫사람을 섬겨야한다. 환자(시장)를 당신의 의원(회사)을 사랑하고 임직원들은 이 ‘의원(회사)은 내 의원(회사)’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의원(회사)은 비전이 보이고 번영과 행복의 공동체가 될 것이다. 환자는 의사의 진료가 마음에 들면 다시 오고 또다시 온다. 다른 환자도 소개하고 좋은 입소문을 내준다.

그러나 흡족하지 않으면 미련 없이 등을 돌린다. 주변사람에게도 인연을 끊게 한다. 그들을 친절한 마음과 성실로 대우해야 한다. 왜냐하면 환자는 고객이고 우리의 왕이다.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 의원안의 고객(직원)도 소홀히 해선 안된다. 대접을 받아 본 사람만이 남을 대접할 줄 아는 까닭에 친절한 대접은 물론 대화의 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

경영학의 인사관리 책은 이렇게 말한다. 직원은 그 직장에서 최고의 만족을 느끼고 즐겁게 근무하게 하고 그의 잠재능력까지도 발휘 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 주라. 직원이 친절하게 미소를 띄고 환자를 대할 때 원장 마음은 흡족하다. 이것은 고도의 훈련과 교육 교양 주객간의 온정과 주인의식에서 나오는 발로이다. 원장을 대신해서 환자에게 자신 있게 대화가 이루어 져야한다.

나는 2000년 7월31일(의약분업이 되는 날) 의사가 된지 55년, 마포구 아현동 330-3(굴레방다리)에 개업한지 47년 만에 의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속담에 의사와 기생은 일대에 끝난다고 했다. 후계자도 없이 쓸쓸하게 끝나는 직업 나와 같은 사람을 두고 한 말이다. 그 중 아현동의 개업은 나의 청춘 전성기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인생의 하이라이트’였다. 국가에 세금도 많이 냈고 지역사회 봉사활동도 많이 했다. 아현동 동네 사람들과 모임을 같이 했다. 지금도 아현시장에 들르면 손자나 손녀의 주례를 부탁하는 사람, 어린시절 의원을 다니며 성장한 사람, 음식점에 가면 주인아줌마 주례를 서주어 잘 살고 있다며 고마워하는 사람 등을 만날 수 있어 훈훈하고 흐뭇하다. 의사의 직업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병을 낫게 해주어 환자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 희열을 느낀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생명을 구하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렸다고 생각했을 때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어느 외과 의사가 1000명의 환자를 일생동안 살렸다고 했다. 얼핏 보기에는 많은 숫자처럼 보이지만 타당성이 있는 말이다. 요즈음 와서 의학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대학병원에서는 내과-외과에 있어서 장기별로 환자를 나누어 본다. 즉 신장내과, 순환기내과, 소화기내과 등이다. 따라서 개업의는 교통순경이 교통정리를 하듯이 환자를 분류하여 각 과에 소개서를 써 주는 것이 보통이다. 까다로운 환자에 대한 의사의 보신책도 된다. 옛날 의사들은 그러하지 않았다. 의사와 단골이면 일생 단골 의사이지 좀처럼 낯선 의사를 택하기를 꺼려했다. 또 환자의 주머니가 비어있는 상태에서 의사를 찾는 환자는 중증 환자들이다. 장티푸스, 폐결핵, 간염, 위십이지장궤양 등 만성 환자들이다. 소아과는 급성 환자가 대부분이다.

△디프테리아 : 일제 때 부터 해방직후 유행 되었다. 목이 막혀 심한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병이다. 치료는 혈청주사가 특효약이다.

△소아 파상풍 : 어린애 탯줄을 끊을 때 소독이 불충분하여 파상풍이 생긴다. 치료는 진경제와 혈청주사를 쓰지만 소아과 의사의 애를 먹이는 병이다. 홍역 합병증으로 오는 폐렴은 치료하면 잘 낫지만 고열로 경기를 동반하면 경기치료에서 폐렴치료까지 의사손이 많이 가고 신경을 써야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백일해 합병증으로 오는 폐렴에 가장 잘 듣는 약이 임뮴크로부린이다. 미국에서 생산된다. 소아과 의사는 항시 각종 혈청주사를 준비해 놓는 것이 의무적이어야 하고 이런 병을 낫게 하여 생명을 구하면 의사된 보람을 느꼈다. 1960년대부터는 전술한 병은 D.P.T 예방주사 실시로 현저하게 감소하였다.

△장중첩증 : 성인에게는 대단히 드물지만 영·유아에게 흔한 병이다. 이 병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빈도가 같다. 장에 있어서 윗부분이 밑으로 들어가 장이 막혀서 생긴다. 어린애가 토하고 배가 부르고 몹시 고통스러워 한다. 우측 하복부 1/4 부위에서 소시지 같은 덩어리가 만져진다. 시험적 관장을 하여 형벌이 나오면 이 병을 짐작케 한다. 치료방법은 바리윰액을 항문에 주입 높이 올리면 수압에 의하여 꼬인 벨이 풀어지는 바륨 고위관장법이 유효하다. 바리윰액은 엑스레이 상에 나타나 장이 풀린 것이 확인된다. 이 병은 소아과 의사가 진단을 정확하게 또한 초기에 발견하여 이 방법을 시도하면 대개의 환자가 성공된다. 풀리지 않을 때는 장이 상했기 때문에 수술을 하게 된다. 풀었을 때 의사의 기쁨은 말할 수도 없으며 한 생명을 살린 것이다. 하나님과 부처님께 두 손 모아 기도 드린다. 장중첩환자는 외래환자에서 흔히 보게 된다.

△탈수증 환자 : 해방 전부터 1980년대까지 탈수증환자 즉 중증설사환자는 여름과 가을철에 흔히 볼 수 있었다. 소아과 의사를 다이어레닥터라고 하는데 그 만큼 설사병이 흔했다. 탈수증 환자를 탈수된 정도에 의하여 경도 중증도 중증 탈수증 환자로 구분한다. 탈수증이 생기면 눈이 쑥 들어가고 입술과 혀가 건조하고 얼굴과 피부는 탄력이 없어지고 배가 팽팽하여 솜을 만지듯이 부드러우면 중증 탈수환자로 수액요법을 시작한다. 체중과 탈수증의 정도에 따라 생리식염수 총수액량을 정한 후 그 중 1/4를 양으로 30분 내에 넣어준다. 한 시간 후 환자 상태는 급속히 좋아져 의사를 보고 웃기도 한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칼로리를 보충하기 위한 5% 당액과 포하슘을 보충하기 위해 하트맨 액을 주입하기도 한다. 중증 탈수증 환자는 소아과의사의 예리한 판단 경험과 주사 놓는 특수한 기술에 의해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죽어가는 환자를 살려주면 부모의 기쁨과 의사에 대한 존경심을 받을 때 더욱 기쁘다.

의사는 신앙심을 갖는 것이 참으로 마음 든든하고 일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 나는 절에서 공부한 인연으로 불교를 종교로 삼았다. 의사의 신성한 직업은 부처님의 가피를 입은 것이고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지식과 기술도 부처님께서 주신 인술(仁術)로 생각한다. 1500명 내외의 환자의 생명을 구했을 때마다 무릎 꿇고 감사했다. 의사 된 보람과 희열과 행복을 느낀다. 이제 현직에서 물러나 조용히 추억을 더듬어 생각해 본다. 의사란 누구인가? 일생을 환자를 위해 봉사하고 자기 가족의 안전과 평화와 행복을 위해 살아왔다고 생각된다. 정부로부터 몇 해 전 그 동안의 국민건강에 공헌한 공노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게 된 것은 저의 분에 넘치는 일대의 영광이고 가문의 명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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