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의학, 생명과학기술의 핵심
단기성과에 급급 R&D투자 저조
전문인력 육성-제도적 지원 시급

▲ 박찬일 교수
- 연세의대 병리학교실

- 기초의학협의회 회장

기초의학은 인간의 건강과 질병에 대한 이해 및 해석에 관하여 연구하는 분야로 의료분야의 발전은 물론 생명과학의 핵심적인 분야이다. 우리나라 기초의학은 그 동안 여러 의과대학 기초의학교실의 교수, 박사, 연구원과 의학 관련 국공립연구소의 박사, 연구원 등 전문가들의 노력과 연구를 통해 많은 성과를 이루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초의학 연구가 단기간에 신제품 개발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R&D 투자주체의 단기적 목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홀히 여겨져 왔다고 생각한다.

세계가 생명과학기술 산업의 확대를 통한 국제경쟁력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생명과학기술을 미래유망 핵심기술의 하나로 인식하여 해마다 R&D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

그러나 기초의학자의 입장에서는 의료분야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할 기초의학분야 투자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느끼고 주장하는 이유를 R&D 투자, 기초의학과 생명과학의 관계, 그리고 기초의학 연구 인력의 3가지 측면에서 짚어 본다.

■ R&D 투자

이전 session을 통해서 우리는 의과학과 생명과학 R&D 투자에 관한 진실을 알 수 있었다. 요약하면 1994년부터 4년 동안에는 연평균 1천억에도 미치지 못하다가 1998-2001년에는 연평균 2천억을 넘었으며, 2002-2005년에는 연평균 6천억 이상으로 증가했고 금년에는 한 해 동안에만 1조 원을 넘을 전망이다(과기부, 2003년 생명공학육성연차별시행계획). 그 뿐 아니라 과학기술부가 선정한 미래유망 6개 신기술분야 투자액 중 생명과학 분야에 투자한 비율도 2001년 17.8%에서 2004년 23.4%로 증가하였다(과기부, 2005년 생명공학백서).

이와 같이 생명과학 R&D 투자규모와 투자비율을 빠른 속도로 늘려가는 정부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어서 고무적이지만 아직도 OECD 상위 rank 국가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우리정부가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절대규모는 미국의 1/18, 일본의 1/8이며, 인구 1인당으로 환산하더라도 미국과 일본의 약 1/3에 불과하고, 생명과학 투자비율(2005년)도 미국은 약 22.7%, 일본/독일/영국은 12.0-13.8%인 반면 우리나라는 전체 R&D 예산의 9%(2004년에는 11%)에 머물고 있어서 격차는 더욱 크다(과기부, 2005년 생명공학백서). 이러한 격차는 그대로 세계 생명공학시장에서의 경쟁력 약화로 나타나 현재 910억 달러나 되는 생명공학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율이 2.2%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규모 11위 국가의 경쟁력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초라하다.

■ 생명과학과 기초의학

생명체의 본질과 생명현상의 보편적 진리를 탐구하는 모든 학문이 생명과학이라면 기초의학은 인간 생명의 본질을 규명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고 인류가 직면한 난치병 또는 불치병의 정복을 당면목표로 하는 연구개발로서 실험동물을 비롯한 생명체를 대상으로 생물학 및 생화학 분자생물학, 역학 등의 기술을 통해 연구하고 개발하는 과학기술이다. 생명과학의 핵심적인 부분인 동시에 임상의학 또는 치료의학과 순수기초학문의 가교역할이 기초의학의 주요기능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초의학과 생명과학이 모두 생명현상의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점, 그리고 기초의학의 많은 부분이 분자유전학적 연구기법에 기반을 둔다는 점 등이 두 학문 사이의 구분을 모호하게 함으로써 기초의학 고유분야에 대한 투자비율의 확충을 고집할 명분마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이러한 모호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생명과학분야에서 기초의학자가 담당할 영역을 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연구주체가 모두 합리적이라고 인정할만한 과학기술분류체계를 확립하여 정부기관을 비롯한 R&D 투자주체가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 연구개발사업에 대한 투자가 어떤 분야에 어떠한 형태로 얼마만큼 이루어지는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또 앞으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관한 정책개발 자료로 삼기 위해서도 과학기술의 분류체계는 정밀해야한다. 2004년 생명과학연구 중에서 기초연구가 45.4%를 차지하여 응용연구(32.3%)와 개발연구(22.3%)보다 훨씬 높았다는 보고(유경만, KISTEP 2005년)가 있지만 기초의학자를 비롯한 생명과학분야 기초연구자의 느낌과 괴리가 생기는 것도 과학기술분류가 미흡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R&D 투자의 주체인 정부나 산업체가 단기 수익성을 추구하는 속성 때문에 생명과학 중에서도 가급적 단기간에 산업화로 연계될 가능성이 높은 분야에 편중하여 지원하는 점이다. 기초의학연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성과나 진가가 나타나는 속성 때문에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성과가 나타나는 시기가 늦는다고 하더라도 기초의학의 발달은 결국 임상의학을 통해서 삶의 질 향성에 기여하게 되고 의료산업으로 연결되어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이다. 기초의학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한다.

■ 기초의학과 연구인력

생명과학자가 반드시 의학을 전공한 기초의학자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체생명현상과 질병기전을 밝히고 이를 치료에 응용하는 것이 생명과학의 핵심적인 부분이란 사실을 감안하면 생명과학분야 연구의 실용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기초의학자가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초의학을 전공하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고 문제이다.

2004-2005년 의과대학교육현황에 의하면 41개 의과대학의 8개 기초의학(해부학, 생리학, 미생물학, 기생충학, 생화학/분자생물학, 약리학, 병리학, 예방의학) 교수가 1225명으로서 대학 당 평균 30.9명에 불과하며, 20명도 안 되는 대학이 4개나 된다(기초의학협의회, 2005). 기초의학과 생명과학의 발전을 위해서 전문인력 확충이 시급함에도 실제 상황은 너무나 비관적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생명과학분야 기초과학 진흥과 인력양성을 위해 순수기초연구그룹 지원, 기초과학연구 지원, 선도과학자 육성 지원, 선도기초과학연구실 지원사업을 시행해 왔지만 기존 연구인력의 연구력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하였을 뿐 새로운 연구인력을 창출하지는 못하였다. 특히 국가전략분야의 연구 인력양성을 목표로 1999년부터 BK21사업을 시행하면서 생명공학분야에 10개 대학 11개 사업단을 선정하여 6년 동안 총 856억 원을 지원하였다, BK21사업은 주로 non-MD 생명과학 전문 인력과 전일제 대학원생을 지원대상으로 하였고, 그 결과 연구인력 양성과 연구업적의 획기적인 향상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이 사업 역시 의과대학졸업생을 기초의학 연구인력으로 유인하는 방안이 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기초의학 전문인력 확충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기초의학에 대한 국민의 인식 부족 △임상의사에 비하여 취약한 기초의학자 처우 △기초의학 전임교수 확보에 대한 의과대학인정평가제도의 미온적 운영과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전문인력 부족 △임상의학평가에 편중된 의사국가시험(학생들은 기초의학을 소홀히 다루게 되고 기초의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다른 자연과학도나 공학도와 달리 병역특례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 점 △임상의학을 전공하는 동료들에 비해 진로가 불안한 점 등이 제기되었지만, 기초의학 기피현상이 나아질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의학전문대학제도의 도입은 기초의학에 또 다른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 기초의학 발전 방안

기초의학이 당면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안은 마땅히 R&D 확충, 기초의학에 대한 인식의 전환 및 전문인력 양성의 측면에서 세워야 할 것이다. 기초의학협의회가 2005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제안한 방안을 보면 그 요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전체적인 국가 R&D 투자규모를 선진국 수준으로 확충해야하며, 생명과학, 특히 의료연구개발 투자비율을 지속적으로 늘려나가야 한다.

둘째, 기초의학육성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정부와 관계기관이 대국민 홍보에 적극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나서야 한다.

셋째, 기초의학 연구인력 확충을 위해 전공인력의 처우, 취업 및 활용 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임상의학에 편중된 의사국가시험제도와 불필요한 의학석사제도, 편파적인 병역특례제도를 비롯하여 기초의학발전을 저해하는 제반 관련제도를 개선해야한다.

넷째, 의과대학인정평가제도를 강화하여 대학이 기초의학 전공교수를 적극적으로 충원토록 유도해야한다.

다섯째, 정부가 학생의 학비 및 생활보조비를 지원하는 MD-Ph.D 제도를 긍정적으로 검토해야하며, 미국 NIH처럼 우리나라에도 정부 산하에 의료연구개발 전문인력 양성기구가 설립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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