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평론가 수필 릴레이]

- 이정균<한양대 명예교수·이정균내과의원장>

북한강-남한강 합류하는 두물머리
강변따라 곱게 펼쳐진 운길산 능선
팔당 호반 절경 가세 구름도 쉬어가

토요일 저녁, 심 교수는 “내일 산행은?” 오늘 북한산을 다녀왔는데 가을 가뭄이 심각하더라. 마른 낙엽이 뒹굴고, 길은 먼지투성이고.. “내일 산행지를 결정해라”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 운길산으로 결정했다. 건조한 계절 물에 젖고 싶었다. 날씨는 청명하고 물기 없는 계절에 두물머리, 운길산을 연상하면 새벽 물안개에 푹 젖고 싶은 생각이 들면서 정학유(鄭學遊)의 농가월령가가 불현듯 머리에 스쳐 간다.

농가에서 1년동안 할 일을 가사 형식으로 만들어서 권농의 내용을 읊은 노래,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는 조선왕조 때의 농촌 풍속 및 고어 연구에 도움이 되는 문학작품이다.
‘장마를 겪었으니 집안을 돌아보아 곡식도 거풍하고 의복도 포쇄하소’ 포쇄(曝灑)는 젖거나, 축축한 것을 바람을 쏘여 볕에 말리는 것이다. 농부는 곡식을 말리니 농포맥(農曝麥)이요, 부녀자들은 옷을 말리니 여포의(女曝衣)다. 선비는 책을 말린다. 사포서(士曝書)가 되겠지.

세월과 시간의 질서 속에 무더위도 속절없이 무너져 가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이제 시인들의 가을 기도를 다시 읊조려 보았다.

금년 서점가에는 행복 관련 서적이 지난 6월 이후 26권이나 출판 되었다고 한다. 한국 국민의 행복도는 81위에서 이제 102위 바닥권이라고 한다. 사회적 성공이 반드시 행복이란 공식이 우리 주위에 통용되었다.

이제는 우정, 일, 운동 그리고 취미 같은 개인적 노력이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로 꼽히는 세상이다.

코스모스는 가을바람에 하늘하늘 춤을 추고, 대추와 사과는 가을햇볕에 화상을 입은 듯 볼이 붉게 달아오르고 긴 장마와 수마를 이겨낸 황금들판이 대견스러워지는 계절이다.


봄소풍과 가을 운동회는 어린시절 행복에 젖어 기다리던 가장 큰 이벤트가 아니었나 싶고, 밤잠 설치며 기다리던 시간들이었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가을하늘에는 고추잠자리떼가 편대비행을 하고 논두렁콩 익어가는 들판길 숲속에서는 방아깨비, 풀무치가 높이뛰기 하는 계절, 만국기가 펄럭이는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온동네 잔치가 벌어졌었다. 온동네 잔치에 잡상인들이 빠질 수 있을까.

“이겨라 이겨라 오징어 먹고 이겨라!” 흥겨운 엿장수 엿가락 장단 속에 엿치기 내기 열을 올리고.. 풍선 장수 한몫 보는데 솜사탕 장사는 절로 힘이 솟는다. 신명이 난다. 모두 즐겁다. 계란, 밤, 고구마 삶아 간식 장만하면 그것은 특식이 아니었던가. 할머니는 시골길 타박타박 흰머리 휘날리시며 인 함박 가득 머리에 이시고 손자 찾아 오셨으니..

일제 강점기에는 모든 경기는 홍백전(紅白戰), 광복 이후에는 청백전(靑白戰)으로 변하였고, 열띤 응원 속에 박터뜨리기, 줄다리기, 공굴리기, 기마전 그리고 청백 이어달리기는 빠지지 않던 운동회 레퍼토리가 아니었나.

오늘날은 차전놀이 같은 전통 놀이가 선을 보이고, 이벤트도 다양해졌다. 손녀 형인이는 유아원에서 연극을 하게 되었는데 ‘나레이터’를 맡게 되었다고 할아버지를 초대하였다.

운동회라면 형인이와 이인삼각 경기를 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선다. 우리 형제들은 운동회 때 달리기는 다 잘해서 연필, 공책을 타오지 못하는 형제는 없었으니까.

어린시절 운동회와 봄소풍을 생각하면 건강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어린시절 봄소풍의 김밥은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천마산악 동호회 그룹이 야생화 산행 때 점심 김밥은 인기가 좋다. 나의 집근처 서초쇼핑에는 일년 내내 김밥을 말아 팔고 있는 김밥집이 있다. 온 집안 식구가 밤새 김밥준비를 도와 정성껏 김밥을 장만하는 곳이다. 우리들이 김밥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린시절부터 즐겁고, 행복했던 소풍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게다.

김밥을 썰어놓으면 오방색(五方色)이다. 오행(五行)에 상응하는 다섯 가지 색깔은 청, 적, 황, 백, 흑이다. 당근의 주황색, 오이와 시금치는 초록색이요, 계란 지단은 흰색과 황색이다. 햄은 분홍색이며, 단무지는 노란색이다.

치즈 들어가면 치즈김밥, 참치가 들어가면 참치김밥에 소고기 들어가면 소고기 김밥이다. 내가 사가지고 가는 김밥은 소고기를 넣지 않는다. 웰빙김밥이다. 우리 일행들에게 불평이 있다면, 김밥 짜투리가 더 맛이 있는데, 왜 가지고 오지 않느냐는 것이다.

다음부터는 김밥집 할머니에게 사정을 말씀드리고 챙겨가야 하겠다. 이름하여 오방색 김밥은 화려해 질수록 빨리 쉰다고 하니, 인생살이 성공신화 중에 지위가 높아질수록 화려해지고, 꿈이 많으면 행복해지기 어려워지고, 항시 더 높아지겠다는 욕망도 행복과는 거리를 멀리하게 되리라. 오방색꽃 김밥은 향기 짙고 예쁜 야생화 꽃밭을 닮았다.

바람에 아름답게 흔들리지만 언제 꺾일지 모르는 백합이나, 가시 돋쳐 꽃을 피울 때만 사랑받는 장미도 아닌 들꽃 사랑을 하고 싶다. 들꽃 사랑은 행복한 사랑일 터이니까..

경기도 남양주시, 하남시, 양평군의 북한강과 남한강변 일대를 흔히 우리는 양평이라 부른다. 서울근처에서 가장 규모가 큰 유흥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자동차 물결 넘치는 곳이 이곳이 아닌가.

그러나 그곳에는 고즈넉한 명소가 있다. 역사의 숨결을 느끼는 곳이 있지 않은가. 운길산(610.2m)은 북한강변에 있다. 산세가 부드럽고 등산로는 순탄하여 가족 산행지로 추천할 만한 곳이다.

산행기점은 45번 지방도를 따라 진중리와 송천리를 기점으로 산행이 시작된다. 진중리 보건지소 앞에서 정상을 향하는 깊은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지만 치닫이 등산길, 코가 땅에 닿는다는 표현이 맞다.

전원마을, 전형적 농촌마을인 송촌 그리 마을 회관을 거쳐 올라가는 길은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 모두 편리한 등산길이다.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선생이 심었다는 거대한 400년생 은행나무에는 노랗게 익은 은행이 풍요를 자랑한다. 한음의 별서(別墅)가 있던 자리에는 돌멩이 하나가 서 있다. 별서는 별장과 비슷하지만 농사를 경영하였다는 점이 다르고, 들 같은데 한적하게 지은 집을 말한다.

한음은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선생과 교유하면서 운길산에서 사제곡(莎堤曲)을 썼다. 그는 영남가(嶺南歌) 노계가(老溪歌)도 저술하였다. 노계는 조선왕조 선조 때 시인이었고, 임진왜란 때 많은 공을 세웠다.

운길산에는 잣나무 조림지, 참나무 숲이 있다.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푸른 소나무 숲을 지나, 걸음이 빠른 사람은 30분이면 수종사에 도착할 수 있다. 청량한 바람, 고요함 속에 서울 근교를 잊게 한다. 광주산맥 높고 낮은 봉우리, 뭉게구름을 흘러 보낸다.

더구나 경내에는 묵언(言)이란 표지가 붙어있다. 수종사 건국연대는 부정확하다. 경내에 있는 팔각 5층탑은 조선 초기 형식이다. 사찰은 6 25전쟁 때 화재를 만나 소실되었던 것을 1974년에 대웅보전이 중건되었다. 단청이 퇴색한 꽃무늬문살은 단아하다. 이 사찰에는 해탈문이나 일주문은 없다. 대웅보전 오른쪽에 불이문(不二門)이 있다.

조선왕조 세조는 권좌에 오른 후 금강산을 찾아 기도를 드리고 한강을 따라 배를 타고 환궁하던 중 두물머리(양수리)에서 날이 저물었다 한다. 한밤 중 홀연히 범종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날이 밝아 산을 답사했더니 암굴에서 18나한을 발견하고, 굴속에 떨어지는 물소리가 종소리처럼 들렸다하여 사찰을 세우고 수종사(水鍾사)라고 했다. 불이문 수종사 경내는 구름에 떠 있는 듯 묵언(言) 중 방문객들도 덩달아 말을 아끼는 듯, 가을 산사는 정말 절터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두물머리 풍경은 선경 같고, 철마가 달리는 중앙선철교, 양수교 그리고 6번국도가 지나는 양수대교는 나란히 두물머리와 함께 일찍이 조선왕조 문호 서거정은 동방의 사찰 중 최고의 전망을 가진 사찰이라 했던 그 뜻을 알만하다.

사찰 뜨락 아래엔 북한강과 남한강의 두 물줄기가 만나는 두물머리 양수리 팔당댐에 가로 막힌 거대한 호수가 빚어내는 장쾌한 그림 그 절경이 펼쳐진다. 그러나 그 옛날 황포돗대 유유히 지나던 옛 정취 잃은지 오래고, 철마가 시간 시간 굉음을 울리며 산골짜기를 뒤흔드니 그것이 흠이라면 흠이라 한탄스럽다.

운길산은 구름이 가다 걸려 멈춘다 고 표현하는 산이다. 수종사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치닫이 깔딱고개다. 정상에 서면 남쪽으로는 예봉산 줄기가 조금 보인다. 서쪽으로는 남양주 벌판과 구리시내 아파트군이 전망되고, 북쪽으로는 조망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올라왔던 길 되집어 내려오면 능선따라 515봉을 되돌아 내려올 수 있으나 결국 수종사에 다시 도달하게 되니 정말 절묘한 곳에 사찰을 지었다고 감탄하게 된다.

수종사 불이문을 나서면 수종사 창건을 기념하여 세조 4년 1459년 세조가 기념식수하였다는 노거수 은행나무 두우향수(頭牛香樹) 두 구루가 서 있다. 그 그늘 아래 쉼터에서 우리 일행은 들꽃처럼 어여쁜 웰빙김밥으로 브런치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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