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당뇨병연합 김광훈 대표이사

[의학신문·일간보사] 정부가 주도하는 의료개혁, 정확히는 의대 정원 확대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병원을 나갔다. 양측이 강 대 강으로 대치하는 사이 중증환자들의 생명은 위험에 처했지만, 아쉽게도 사태를 조기에 수습할 의지는 서로 보이지 않는다.

본인은 환자 당사자이자 기관의 대표이지만,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책임소재를 논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당장 조속한 타결과 봉합만을 요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의사와 정부 양쪽 모두가 환자의 입장, 혹은 생명에 대한 가치가 생각보다 후 순위에 있다는 실망감은 크다. 하지만 이번 의사와 정부의 갈등은, 우리 보건의료체계에 겹겹이 쌓여있는 한계에 언제라도 한번은 터졌을 일이다.

의료는 공공재인가? 물론 공공재적 성격을 띠지만, 엄밀하게 공공재는 아니다. 완전한 공공재라면 의료 서비스를 위한 재화와 교육, 생산과 결과 등 모든 관련 행위 전반이 정부가 온전히 지원하고 관리 되어야 한다. 의대생을 예로 들면, 이들이 적어도 군인처럼 국가의 보호 안에서 온전히 키워지고 관리되어야 하며, 정부는 의사에게 일정 이상의 공공기능을 수행할 책임과 안정적인 삶, 그리고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부여해야 한다.

하지만 의대생들은 어린 시절 과외부터 대학의 등록금에 전공 서적 한 권까지 자신과 가족의 힘으로 마련했고, 졸업 후 모두 교수로 임용되는 것도 아니며, 개원이라도 하면 막대한 자본과 사업의 성패 부담 역시 오롯이 짊어져야 한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숭고한 책임의 가치를 화폐나 숫자로 평할 수 없겠지만, 정작 의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자본주의 개념에서 한발도 벗어나 있지 않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탄생한 의사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윤의 추구가 그들에게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그리고 지역이나 과별로 기대할 수 있는 이윤의 격차에 더해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위험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의사의 쏠림현상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스스로 의료 전반의 균형을 조절할 유인이, 흔하게 말하는 선량한 마음으로만 해결되기에는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지금까지 각자도생해 온 의사들에게는 없다.

보건‧의료‧복지분야에 종사하는 직역에서는 선량한 마음을 추구하는 사회적 기대는 낯설지 않다. 간호사, 교사, 사회복지사 같은 이들도 공공재의 역할이 당연시되고, 큰 업무량과 책임이 기본적으로 따른다.

그러나 코로나 시국에서 밤낮없이 투입된 보건‧의료‧복지계의 희생과 피땀에 대해 국가와 국민이 정당한 대가를 지급했다고 믿는 당사자들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다음에 비슷한 상황에서도 그들의 희생을 기대할 수 있을까? 또한, 우리모두가 히포크라테스, 나이팅게일, 더불어 사회복지 가치까지 봉사와 희생이라고 표현하면서 전문성보다 선량한 마음을 기대하고 있지 않은가?

이번 사태의 본질일 수 있는 특정 직역의 권리와 책임, 의무에 대한 문제가 그동안 일반 국민의 마음속에 축적된 의사들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표출되는 것도 문제다. 일부 의사들의 과잉진료, 리베이트, 대리수술 등 크고 작은 일들로 국민을 실망하게 했다 해도 그게 특정 집단을 악마시하고 전체를 공권력으로 찍어 눌러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이 문제를 감정적으로만 재단하려 하면, 당장은 통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다음 척결 대상은 우리의 직역이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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