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의료연구소 정재현 기획조정실장

[의학신문·일간보사] 정부는 지난 2월 1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하며, 보상체계의 공정성 제고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불제도를 다변화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밝힌 지불제도 개편 방안의 내용은 의료기관의 적자 사후보상, 진료 성과 기반 보상, 기관 단위 보상 도입, 가치와 연계한 수가 인상 등으로 요약된다. 문제는 정부가 언급한 지불제도 개편안의 주요 내용들을 포함하는 지불제도가 있고, 이 지불제도의 최종 지향점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바른의료연구소 정재현 실장
바른의료연구소 정재현 실장

정부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서 발표한 지불제도 개편 내용은 2월 2일 발표했던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 포함되어 있는 미래 지불제도의 확립 계획의 일부만 언급한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추진하는 지불제도 개편의 방향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을 면밀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서 언급된 지불제도 개편과 관련된 핵심 키워드는 세 가지로 성과 중심의 심사·평가체계로 개편, 묶음지불 확대를 위한 신포괄수가제 개선, 책임의료조직(ACO) 시범사업 추진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내용들은 미국식 지불제도 개편안인 대체지불 모델(Alternative Payment Model, APM)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성과 중심의 심사·평가체계를 포함하는 지불제도는 바로 가치기반 지불제(Value-based Purchasing, VBP)이다. 가치기반 지불제에서 가치란 환자치료에 소요되는 비용 대비 의료의 질과 치료결과를 의미한다(가치 = 질(치료결과) ÷ 비용). 즉, 소요되는 비용이 적으면서도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의 질과 치료결과가 우수한 경우를 매우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가치기반 지불제는 기본적으로 가치 있는 의료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에는 인센티브를 주고, 그렇지 않은 의료기관에는 디스인센티브를 주는 제도이다.

가치기반 지불제 시행은 필연적으로 비용과 질, 치료결과 등에 대한 정보를 보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의료기관에서 수많은 정보를 보고하는 데에는 막대한 행정적, 시간적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정보 보고에 막대한 금액을 지불하고 있는데 반해, 의료수가도 세계 최저 수가로 책정하고 있는 한국이 과연 제대로 된 금액을 보상할리는 만무하다. 보고의 문제도 있지만 평가 자체도 대한민국 현실과 맞지 않는 미국이나 유럽의 기준으로 이루어질 것이 자명하기에 제대로 된 평가에 의한 보상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묶음지불 확대를 위한 신포괄수가제 개선 방안은 곧 묶음 지불제(Bundled Payment)의 일종인 에피소드 기반 지불제(Episode-Based Payment)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행위별 수가제에서는 의료공급자가 제공한 각각의 서비스에 모두 지불하는 반면, 에피소드 기반 지불제는 의료공급자에게 해당 에피소드 진료 기간 동안 환자가 받는 서비스의 질과 비용에 대해 모두 책임을 지도록 한다.

묶음 지불제는 목표비용을 정하고, 실제 지출금액이 목표비용보다 적으면 의료기관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지출금액이 목표비용보다 많으면 차액을 의료기관이 보험자에게 환급하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결국 이렇게 하면 병원급 의료기관의 여러 묶음 수가를 합하면 해당 의료기관의 전체 목표비용을 산출할 수 있게 된다. 묶음 지불제가 바로 병원급 의료기관들의 총액을 계산하고 예측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지불제도인 것이다.

정부가 시범사업으로 추진하려고 하는 책임의료조직(ACO, Accountable Care Organization)는 1차 의료기관을 포함한 지역의료의 비용 총액을 통제하기 위해 미국 메디케어ㆍ메디케이드 센터에서 시행하고 있는 지불제도 형태이다. 지역별로 연간 의료비 총지출액을 예측하여 예측 비용보다 낮은 목표 비용을 산출하고, 실제 비용이 목표 비용보다 낮으면 그 차액을 의료공급자와 공유하고, 실제 비용이 목표 비용보다 높으면 의료공급자가 손실을 부담하게 하는 제도이다.

ACO의 문제점은 해당 지역의 비용 총액이 정해져 있으므로, 내부적으로 제로섬 게임처럼 되어 과도한 경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반대로 어차피 비용 총액에서 남는 금액이 있으면 인센티브로 지급되기 때문에, 공급자들이 과소 진료를 통해 이익 실현에 나서는 도덕적 해이 현상도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실제 ACO를 시행하는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로, 이로 인해 미국에서는 ACO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과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가치기반 지불제, 묶음 지불제, ACO와 같은 지불제도 개편안들은 미국식 지불제도 개편안인 대체지불 모델(Alternative Payment Model, APM)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이 대체지불 모델의 최종 지향점이 바로 총액계약제와 인구기반 지불제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정부와 일부 관변학자들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총액계약제의 필요성을 수시로 언급해왔다. 하지만 국내 의료계에는 대만식 총액계약제의 폐해가 널리 알려져 총액계약제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의대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라는 폭탄 속에 총액계약제라는 핵폭탄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의대정원 증원 필요성을 역설하고,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포함된 수 많은 독소 조항들의 학문적 배경을 제공한 김윤 교수가 미국식 대체지불 모델의 국내 도입과 총액계약제 역시도 주장해왔다는 사실은 정부도 알 것이다. 그런데 이런 김윤 교수가 정치인이 되겠다고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모습을 볼 때, 의사들은 어두운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를 걱정하며 깊은 절망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부와 김윤 교수가 추진할 총액계약제는 곧 대한민국 의료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임을 국민 모두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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