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태<br>고려의대 명예교수
정지태
고려의대 명예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 모두 어떻게 되겠지...하는 마음인 듯하다. 전공의, 의대생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사표 내고, 휴학한 것은 의사협회, 의대교수협의회 등과 전혀 관련이 없는 자신들의 결정이다. 이제 정부의 대화나 협상 창구는 그들이다. 나머지는 다 주변인일 뿐이다. 이곳 저곳에서 통일도 되지 않은 의견을 가지고 선배들이 나설 일이 아니다. 중재자가 나서기 힘든 상황이고, 일을 더 꼬이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의료계의 원로라고 불리는 자가 무슨 그런 무책임한 소리를 하느냐고 욕하겠지만, 처음부터 그들은 의협과 다른 길을 가겠다고 했고, 의대 학장을 위시한 교수진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는데, 정부가 협박만 하고 그들과 직접 협상하지 않는다면 전부가 돌아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들은 스스로가 결정하여 스스로가 대표가 된 것뿐이다. 아마 속으로 많은 고민과 걱정을 하고 있겠지만, 선배들을 향해 '당신들이나 잘하세요.'라고 외치고 있지 않을까? 아니면 재정 지원이나 화끈하게 하던가!

선배들은 나무 그늘에 숨어 소리만 지르고 있고, 걱정 근심 가득 찬 얼굴이지만, 변함없이 자기 일을 하고 있는데... 2020년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스스로의 결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금 의료대란이라 하지만, 어렵기는 해도 그들 없이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다. 얼마나 더 지속될 지 모르겠다고 걱정하지만, 5를 비롯한 상급종합병원들이 자기들 위상에 맞는 진료만 한다면 시스템 자체는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경영 파탄이 일어날 뿐이지.

교육부가 각 대학으로 보낸 증원 신청을 이들이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이 결과가 이번 사태의 향방에 큰 영향이 있을 것 같아 보인다. 사립의대들이 눈치 보며 적은 수를 신청해도 정부의 태도를 보면 국립 의과대학들과 서울의대에 100명 내외를 배정해 천명 이상을 채울 것이고, 눈치보고 있는 지방 소규모 의대는 40명 이상 더 신청해서 거의 2,000명 규모를 맞출 것으로 보인다.

의협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 하지만, 국립의대에 교수 천명 더 뽑는 일은 현재 교육부 발령이 아닌 사람들을 교육부 발령으로 바꿔주면 일도 아닌 숫자이다. 대학으로 보면 전액 병원이 부담하던 인건비를 세금으로 보태어주니 반대할 일도 아니고, 학생수 증가로 등록금 수입 증가하니 금송아지가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일인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기초의학 가르칠 교수가 없을까? 뽑아준다면, 지금 당장 미국서 짐 싸서 들어올 인재가 얼마든지 있다. 의사면허가 없다고 교수도 못하나? 자신 있어 보이는 얼굴로 의료계가 보기에는 황당한 소리를 하는 데는 그만한 계산이 있기 때문이다.

31일이 되면, 전문의 취득한 4년차 전공의 다 빠져나가고, 인턴은 들어오지 않고, 1년 계약한 전임의는 재 계약하지 않고 자기들의 길로 가고, 계약이 끝나는 임상강사들 다 나가면... 의료대란이 시작될 것이라 걱정하지만, 다른 차원에서 보면 그간 전공의나 비정규직에 의해 겨우 유지되던 상급종합병원을 비롯한 대형 수련병원들은 전문의 중심진료라는 정상화의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런 대혼란을 초래한 원인은 1989년 전국민의료보험이 시행될 때부터 있던 의료전달체계를 국민들이 불편하다고 1998년 권역진료의뢰제도를 폐기해서 나타난 20년 후의 결과물이다. 이 때 이를 폐기하면서 상응하는 대책이라고 뾰족한 것이 나오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이해관계가 얽혀 오늘에 이르렀는데 2000년 의약분업 투쟁 시 줄인 350명 의대정원이 문제라는 지적은 그야말로 아전인수, 후안무치의 해석이다. 그 당시 보건의료발전을 위해 5년마다 발전계획을 세운다는 법을 만들고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번의 계획도 만들지 않은 사람들이 의료계인가? 이번 의대 증원처럼 의료계에 당신들이 계획을 한 번 내 보시지라는 무책임한 말조차도 안 했다.

그동안 겨우겨우 봉합되고 눈가림해 왔던 일이 이제 터지는데, 이런 방식이 아니고는 개선될 수도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어떻게 잘 되겠지 설마 무너지게 두겠어?”를 넘어 천지개벽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국민도 의사도 큰 피해 없이 정상적 의료로 돌아가기를 기대해본다.

정부는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결정하고 그것을 이행해야 하는 일인데, ‘국민이 원하는 것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한다면 얼른 자리를 비켜주는 게 국민을 위해서 옳다. 그런데 자리를 비키면 더 말이 안 되는 그들의 정책만 보이니 안타깝다. <의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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