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리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정부를 구성하려면 대통령이 선거에 이겨야 할터이니 국민에게 신경을 안 쓸수 없고 예산과 법 제개정권을 쥔 국회의원도 당선되려면 유권자인 국민의 환심을 사야 한다.

상인이나 기업도 소비자가 국민이기 때문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좋은 제품으로, 눈에 확 띄는 광고로 국민 사로잡기에 나선다. 국민 눈에 수가 틀리면 사정없이 외면 당한다.

이정윤 편집 부국장
이정윤 편집 부국장

국민이 권력의 근간이자 소비자이니 정치가나 기업인이나 모두 국민을 무서워하고 국민을 못 이긴다는 말로 국민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급급하다.

그럼 의사들도 같은 처지일까? 당연히 국민 가운데 환자가 나오고 그 가족도 있으니 어떤 의료기관이나 의사도 국민을 존중하고 받들어야 한다.

정치가나 기업가와 조금 다른점이 있다면, 아프면 환자는 어떤 경우라도 의사를 찾는다는 점이다.

정치가는 어떤 경우도 국민이 무섭다. 하지만 의사는 필요한 국민(환자)이 찾기 때문에 정치가처럼 절박하지는 않다.

의사가 환자를 자신의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것은 국민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히포크라스 정신에 기댄 의료윤리에 기인한다고 봐야 한다.

대다수 국민이 의사 증원에 동의하는데 의사들이 국민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는 지적도 의료계에선 이견을 단다.

우선 의사 증원없이 의사 재배치를 통해 의사 부족을 해결할수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증원은 하되 한꺼번에 2000명 증원은 많아도 너무 많다는게 의사 정서다.

어떤 전례가 갑자기 65% 증가가 있던가?

현재 3058명인 의대 정원이 하루아침에 5058명으로 늘어나면 지금 공부하는 의대생들은 자기의 미래가 어찌될지 따져볼거고 ‘젊은 의사’인 전공의들은 미래 수익이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는 불안감이 생길 것이다.

의대를 못간 공대나 기초과학 우수생들이 2000명 증원에 새 미래를 설계하면서 대학 생태계가 여지없이 무너질 형국이다.

도대체 ‘의대 2000명 증원’이 불러올 나비효과를 분석이나 해봤는지 묻고 싶다.

‘밥그릇’은 어쩜 천박하지만, 직업 선택의 가장 중요한 잣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수익 지향’을 절대 탓할 일은 못된다.

탓한다면 종교인이거나 양심을 속이는 사람이다. 의대에 입학할 때 ‘내가 의사 5년이 되면 이 정도 수입이 되겠다’는 기대가 무너지는데 어찌 고민이 없겠는가.

이대로 가면 지금보다 수익이 늘어나고, 500명을 뽑으면 경쟁이 생기면서 수익이 줄고 2000명을 뽑으면? 주판을 튕기는게 경박한 일인가.

밥그릇 애착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탓하기 전에 의대 2000명 증원이 의대생과 의사 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에 미치는 여파를 분석해서 적어도 파장을 줄이는 일이 정부의 역할이다.

공권력으로 의료계를 눌러서 생기는 부작용도, 의료계가 정부를 이기고 생기는 부작용도 모두 정부 책임이다.

의대 2000명 증원 사태를 통해 국민을 향한 책임은 무한하다는 점을 정부가 인식하길 바라며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의료계 움직임이 ‘국민과 싸움’이라는 명제를 철회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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