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들, 수술 및 입원 일정 조정 등으로 당장의 위기 대처
잔류 의료진 업무 과중-전임의 가세-장기화시 의료대란 불가피

[의학신문·일간보사=이재원·정광성 기자] 의대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사직이 전국적으로 나타나는 가운데, 병원에 따라 수술일정 연기 등의 조처로 당장의 ‘의료대란’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근무중단이 갈수록 늘어나고, 전임의들마저 이에 동조하는 성명을 내면서 남은 대학병원 의료진들의 업무에 과부하가 걸리거나 근시일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중앙사고수습본부 부본부장)은 2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정례브리핑에서 19일 오후 11시 기준 전공의 6415명의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사직서 수리는 이뤄지지 않았으며, 전공의 1630명이 근무지를 이탈했다고 밝혔다.

◆ 수술 연기·진료 축소 사전 조치로 당장의 위기는 모면

이미 지난 19일 인턴 및 전공의 612명 중 600명이 사직서를 낸 세브란스병원에 이어 기존에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예고했던 대로 20일 오전 6시부터 빅5병원에서 대거 사직서 제출과 근무 중단이 이뤄졌다.

일찌감치 비대위를 구성해 수술을 반으로 줄이고, 남은 의료진에게 업무를 분배한 세브란스병원에 이어, 다른 빅5병원들도 며칠 전부터 수술 일정과 환자 입원을 연기하고 있으며 외래를 축소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이미 18일 또는 19일부터 환자들에게 전공의 파업으로 인한 혼선과 진료 지연을 안내했으며, 수술 일정을 조정했다. 응급실 앞에는 병상 부족으로 진료가 어렵다는 문구도 걸어놨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언론에 공개된 성인 70% 소아60% 수술을 줄였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라며 "다만 현재 일부 진료과에서 수술 등 일정은 조정한 상황이다. 진료도 일정부분 미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는 “응급실 중환자실과 더불어 중증도나 긴급을 요구하는 수술의 경우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나 일반적 수술은 진료과별로 연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모병원에 따르면, 전체 19일 기준 290명 중 190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수술 일정을 미리 조정했던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수술이 30% 연기된 것 외에는 괜찮은 상황“이라면서도 ”21일부터가 문제"라고 우려했다.

서울아산병원도 일부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 응급상황과 중증도 높은 환자 위주로 진료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

서울과 근접한 인천지역에서도 전공의 사직서 행렬이 이러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일 오전 10시 기준 인천의 11개 수련병원 전공의 540명 중 325명(레지던트 196명, 인턴 129명)이 사직서를 낸 것으로 집계됐다.

병원별로는 인하대병원 128명, 가천대 길병원 66명,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65명,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에서는 40명이 사직서를 냈다.

길병원 관계자는 "당장의 의료공백은 없다"면서도 "추이를 지켜보며 일정 조정 등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안암병원 관계자도 "아직 전공의들이 유의미하게 동시다발적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진료 일정을 일부 조정을 한 상황"이라며 "아직까지 병상 가동률이 나쁘지 않다. 아직 오전인 만큼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고려대 구로병원 측도 "현재 사직서를 제출하긴 했지만 정상적으로 진료를 하고 있다"며 "하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수술이나 입원, 진료 일정 조정할 계획은 가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산하기관에서 추가 인력을 차출해 19일부터 수련병원 대규모 현장점검을 실시 중이다. 복지부는 근무지 이탈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미복귀시 행정처분에 나선다며 강경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잔류 의료진 업무 과중...전임의까지 집단행동 움직임

20일 당장은 한숨 돌렸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교수와 간호사 등 병원 잔류 의료진들에게서는 업무 과중현상이 나타나고 있거나 우려되고 있다.

18일 저녁 메일 인증 방식의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빅5병원 중 한곳의 간호사라고 밝힌 A씨는 "지금 인턴만 파업 중인데 병원에서 도저히 인력이 안 되니 인턴 업무를 간호사에게 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공의까지 없는 상태에서 심장마비 환자 발생하면 어떡하냐. 바로 처방하러 달려올 사람이 없어서 약도 못 준다. 정말 큰일"이라고 지적했다.

당직을 맡아야하는 교수들도 한숨을 내쉬고 있다. 전체 의사 중 전공의 비율이 유독 높았던 세브란스병원의 경우 특히 교수들의 부담이 커진 상태다. 세브란스병원 필수과 교수는 "진료 중단과 이탈로 교수들의 부담이 커진 상황"이라며 "전임의와 전담전문의 등으로 어찌저찌 돌려막기에 들어갔으나, 최소 2주이상 파업이 장기화되면 그 뒤는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설상가상으로 전임의 및 임상강사들도 집단행동 동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일 전국 대학병원 임상강사 및 전임의, 예비 임상강사 및 전임의 일동은 성명을 통해 이대로면 의업을 이어가기 어려울 것 같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정부에서 발표한 정책은, 현재 낮은 필수의료 수가 및 비정상적인 심평원 심사 기준 진료 등 의료계의 현실과 고령화 및 저출산으로 야기될 앞으로의 대한민국 보건현실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진행되고 있다"며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사안이 단순히 의대정원 증원의 문제로 치부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한 이후로도, 수련 병원에 남아 더 나은 임상의와 연구자로서의 소양을 쌓고자 했다“며 ”그러나 의료 정책에 대한 진심어린 제언이 모두 묵살되고, 국민들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매도되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의업을 이어갈 수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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