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현 서울시의사회 홍보이사 
최주현 서울시의사회 홍보이사

[의학신문·일간보사] 술 권하는 사회는 현진건의 단편 소설 제목이다. 1921년 암담한 식민지 사회에서 조선 사회가 술을 권한다는 풍자적인 내용이다. 시대상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도 이른바 술 권하는 사회에 대한 우려는 그때보다 지나치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 음주 인구는 25백만 명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 15세 이상 인구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은 2021년 연간 7.7LOECD 평균 8.6L와 비슷한 수준이다. 성인 중 남성 70.5%, 여성 51.2%가 한 달에 한 번 이상 음주를 하고, 이 중 고위험 음주 유형이 14%를 차지한다. 2022년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자 청소년의 15.0%, 여자 청소년의 10.9%가 한 달에 한 번 이상 음주 경험이 있으며, 5.6%가 고위험 음주에 노출되어 있다.

과도한 음주는 개인의 신체 및 정신 건강뿐만 아니라 가정, 직장 및 경제활동 등 사회전반에 걸쳐 문제를 발생시킨다. 음주 관련 사고 및 범죄, 음주로 인한 결근이나 업무 비효율성 등의 생산성 손실, 가족해체,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의 문제를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 술은 중추신경 제제로 저농도에서도 사고나 판단과 같은 섬세한 기능이 장해를 받고, 충동을 억제하기 힘들어진다. 일반적으로 그다지 문제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회적 음주량도 중추신경계에 손상을 줄 수 있고, 술에서 깬 후에 지적 기능에 손상을 줄 수 있다.

캐나다 정부는 2011년에 여성에게 일주일 10잔 이하의 음주, 남성에게 15잔 이하의 음주를 권장했었지만, 2023년 가이드라인에서는 '건강한 성인 기준 일주일에, 3~6잔을 마시면 유방암·결장암 등을 포함한 일부 암 질환 위험이 높아지며, 6잔을 초과해서 마시면 심장질환이나 뇌졸중 위험이 커진다'고 보다 엄격하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음주정책의 강도는 OECD 국가들 중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지만, 1인당 성인 주류소비량은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과 함께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고위험 음주 등 지표도 정체 상태에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국민 건강을 위해 음주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국립 암센터는 암예방 10대 수칙에서 소량의 음주도 피하도록 권장한 바 있다. 술로 인해 건강이 손상되기 전에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음주와 관련된 직업윤리 및 가이드라인 제정 또한 필요하다.

Virtanen M. 등의 연구에 따르면 업무시간이 과도할수록 쉽게 과음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의사는 대표적인 과로 직종이다. 건강을 지키는 의사들이 자신의 건강을 잘 돌보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다. 엄격한 상하관계와 도제식 교육이라는 상명하복 의대 문화가 하급생들의 음주를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최근 음주진료와 이에 대한 자정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의료뿐 아니라 산업계 전반에 걸쳐 본인의 건강과 업무 안전성 제고를 위한 음주 관련 직업윤리 가이드라인 제정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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