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안병정 기자] 의대 정원 확대를 놓고 의‧정 갈등의 골이 다시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증원 정책’을 고수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고, 의협은 총파업 불사를 외치며 강경대응 태세다. 특히 의협은 11일부터 총파업 여부에 대한 전 회원 찬반투표에 들어갔고, 17일에는 전국의사총궐기대회에 나선다는 계획이라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거듭 된 얘기지만 의대 정원 문제는 지난 2020년 전공의 파업과 의대생 수업 거부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코로나 19’가 안정화된 이후 의‧정 협의를 통해 추진키로 했던 ‘약속사항’이다.

그래서 원칙에 입각하여 타협하면 원만히, 그리고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이를 가능케 보는 것은 그동안 의료계에서도 각 직능에 따라 의사인력의 과부족에 대한 인식이 달랐고, 그 가운데 병원계는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밝혀왔기 때문에 내부의 조정과 타협을 통해 어느 정도의 합의는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실제 정부와 의료계는 연초부터 의료현안협의체를 가동하면서 원론적 수준 이었지만 의사 수 증원문제를 다뤄왔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의료계가 무조건 반대를 하지 않았고, 전제를 달았지만 타협의 가능성을 열어뒀었다.

그래서 절충 가능성을 기대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정부 쪽에서 ‘필수의료 강화와 지역의료 불균형 해소’라는 명분을 내세워 ‘의사인력 증원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는가 하면,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정책을 결정하겠다”고 나서면서 일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정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의대정원 수요조사’라는 해괴한 정책수단으로 '대규모 증원'을 시사하고 나왔다.

이렇듯 의정 '협의 사항' 이었던 의대정원 문제가 정부 주도로, 그것도 여론몰이 식으로 변질되는 양상이 되자 의료계는 “결국 우리를 패싱 하려든다”며 극도의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의대정원 문제는 국민건강과 국가보건의료시책의 백년대계를 위해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즉흥적이거나 포퓰리즘적 이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동안 전문가들과 각종 매체에서 누누이 제기해 온 바 있지만 현재와 같은 의료체계에서는 의과대학 정원을 아무리 늘려봐야 그들이 필수의료나 지역의료에 뛰어 들 기전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정책적인 목표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 뿐 아니다. 지금도 의학교육 부실 문제가 심각한 상황인데 역량을 갖춘 교수요원도 없이 의대생을 무작정 늘린다면 이들을 누가 가르칠 것인지도 문제다. 부실의사가 양산될 것이 뻔해 보인다. 그럼에도 정책당국이 ‘교육 인프라 확충’이라는 꼼수에 가까운 조건부를 내걸어 정원을 배정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크다.
이런 점을 헤아린다면 의사수를 늘려야 할 과학적 객관적 근거가 아무리 넘쳐난다 해도 당장 막대한 인원을 늘릴 일은 절대 아니다. 정원을 대폭 늘렸다가 10년 뒤 또 무슨 화에 휩싸일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한명도 늘려서는 안된다’는 논리 또한 이치에 맞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의정 양측 모두 '마이웨이'를 고집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국민건강과 국가보건의료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9.4 합의’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특히 이번에는 정부가 전문가 집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기 바란다.

분명 ‘9.4 합의문’에는 “보건복지부는 의대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추진을 의정협의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한의사협회와 협의한다. 또한 의대정원 통보 등 일방적 정책 추진을 강행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런 합의의 정신으로 타협을 이뤄 낸다면 종국에 가서 의대 정원을 몇 명이나, 어떻게 늘리던 누구도 시비를 걸지 않을 것이다. 원칙이 지켜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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