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재충전, 응급 환자 조치 위한 빠른 판단력 향상과 긍정적 성격 변화로 이어져
강릉아산 허석진 교수 “좋은 파도 향한 느긋한 기다림 속 어느새 복잡한 머릿속 정리”

[의학신문·일간보사=오인규 기자] “피곤한 몸 상태로 퇴근하던 중 바다가 보이는 길로 들어서자 종일 내리던 비가 그치고 좋은 파도가 있었습니다. 파도는 무지개와 함께 저를 반겨줬죠. 저는 해지기 전까지 무지개를 보며 서핑을 했습니다. 이때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말 행복한 경험이었죠”

365일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강릉아산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응급의학과 허석진 교수는 주로 소아응급 분야를 맡고 있다.

허석진 교수의 여가활동은 서핑이다. 바다의 파도를 타고 있다. 서핑에 대한 엄청난 열정에 주위 사람들은 그를 ‘섶허(surfer+huh)’라고 부른다. 아무래도 성이 ‘허씨’이고, 서퍼(surfer)랑 발음이 비슷하다 보니 그렇게 불러주시는 것 같다는 허 교수의 재밌는 분석이다.

허석진 교수의 손 모양은 서퍼들의 '샤카(Shaka)'라는 인사법이다.<br>
허석진 교수의 손 모양은 서퍼들의 '샤카(Shaka)'라는 인사법이다.

그는 “과거 군의관 시절 국군강릉병원에서 근무를 했다. 당시 주로 나이트 근무만 하다 보니 무의미한 낮 시간을 보냈었는데, 이런 시간이 아까워 무엇을 해볼까 고민하게 됐다. 그래서 ‘바다 근처에 사는 동안 해양스포츠를 해보자’고 결심하게 돼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확실히 업무를 함에 있어 스트레스가 안 생기고 직업의 만족도도 챙기게 됐다.

허 교수는 “재충전이 되는 기분이라 더욱 일에 집중할 수 있다”며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사로서 응급실로 내원하는 여러 증상의 응급 환자들에게 빠른 판단과 조치가 필수인데, 서핑을 통해 스트레스가 감소되다 보니 상황의 판단력이 올라가는 느낌이며 더불어 성격도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응급실은 1분 1초에 환자 생명이 바뀌다 보니 매우 정신없이 움직인다. 다양한 응급 환자들이 내원하기 때문에 여러 생각을 해야 하며. 그래서 항상 긴장하고 머릿속이 복잡하다.

하지만 서핑은 다르다. 서핑은 좋은 파도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소위 ‘기다림과의 싸움’이라고 한다. 바다에 나가 파도를 느긋하게 기다리다 보면 복잡하던 머릿속이 정리가 되고 비워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서핑은 기다림과 싸움, 명상 같은 과정 속 긴장과 스트레스 완화

파도를 즐기다보면 '인생샷' 하나쯤 얻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파도를 즐기다보면 '인생샷' 하나쯤 얻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허석진 교수는 “서핑은 대부분 기다림이다. 파도가 매일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때로는 일주일, 한 달을 기다리기도 한다”며 “가끔 좋은 파도가 오는 날 주간 근무를 하게 되면 마음속 박탈감은 이루 말을 할 수 없다. 얼마 전, 한동안 파도가 오지 않아 울적한 마음이었다. 거기다 주간 근무까지 유독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환자에게 건강한 삶을 주기 위해 항상 시간과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의사도 사람인지라 지속적인 긴장과 스트레스는 건강을 해치게 되고,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다른 생각 없이 파도에만 집중해 만족스럽게 파도를 타고 마무리했을 때는 짜릿한 쾌감을 맛본다. 허 교수는 “파도를 기다리는 과정에서는 평소에 잘 보지 않던 풍경도 본다. 때로는 하늘과 산을, 때로는 일출, 때로는 붉은 노을로 뒤덮인 바다를 이렇게 바다에 떠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에 서핑 후 샤워를 하고 누우면 노곤해져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아 잠에 들 수 있어 무엇보다 좋다. 이런 활동이 꼭 명상의 한 과정처럼 이뤄져 응급실 근무 시 받는 긴장과 스트레스를 완화해 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설레고 즐겁지만 매우 위험한 파도치는 바다, 안전교육은 필수“

서핑은 24시간 365일을 가리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스포츠. 단, 안전이 최우선이다.
서핑은 24시간 365일을 가리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스포츠. 단, 안전이 최우선이다.

파도가 필수적인 서핑을 취미로 하기에 어려운 점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특히 바다가 가깝지 않은 곳에 살고 직업과 가정이 있다면 더욱 힘든 일이다.

그래서 허석진 교수는 바다가 가까운 서핑 최적의 장소인 강릉아산병원으로 취직을 했고 바다 앞에 집을 지었다. 다행히 아내가 자녀들이 자연에서 가까이 지내는 것에 동의해주며, 가족이 모두 같은 취미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전자기기도 충전해야 사용하듯이 사람도 충전을 해야 한다”며 “서핑을 하기 위해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파도를 기다리면 복잡하던 머릿속이 정리되고 긴장과 스트레스가 풀려 재충전이 되는 기분이다. 이러한 이유로 다른 분들도 한 번쯤 서핑을 타 보셨으면 좋겠다”고 권했다.

또한 “파도치는 바다는 설레고 즐겁지만 매우 위험하다”며 “응급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외상(타박상, 염좌, 골절, 열상 등) 및 해양생물 손상(해파리, 성게 쏘임) 뿐만 아니라 위험한 익수나 척수손상 같은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서핑의 룰과 매너, 안전교육을 강습해 주는 곳에서 교육을 받아, 안전하고 즐겁게 서핑 하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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