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현 서울시의사회 홍보이사 겸 대변인
최주현 서울시의사회 홍보이사 겸 대변인

[의학신문·일간보사] 전북 고창이 아이들 외가다. 외가에 간다고 하면 아이들은 신이 난다. 낮에는 온통 푸른 들판을 맘껏 뛰어다니고, 밤에는 등불 없는 깜깜한 밤하늘 별 잔치를 구경한다. 수십 년 전에는 제법 들썩였던 이곳 읍내 시장은 한산하다. 수박 농사로 유명했던 곳이라는데 요즘은 인적이 드물 정도다. 전북 고창군은 정부가 지정한 89개 인구감소지역 중 하나다. 5년 주기로 지정되는 인구감소지역에는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조성해 정부가 지원한다고 한다. 지방소멸 위기는 저출산, 고령화, 다문화 등 인구 사회 구조 변화와 함께 국가적 과제 중 하나다.

지역인구 감소가 유발하는 교육, 의료, 보육 등 기본 정주 여건 미비가 다시 인구유출을 가속화하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은 지방소멸 문제의 핵심원인을 인구 고령화와 청년인구 유출이라고 짚었다. 청년인구 유출은 학업과 직업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 청년들의 삶의 질과 정주 여건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출산율이 급격히 감소하고 지방은 소멸위기에 몰려있는데, 의사가 부족하니 더 뽑아야 한단다. 의사가 서울에 너무 많이 몰려 있고 지방에 의사가 없으니까, 의사를 늘리면 이른바 낙수효과로 지방으로 갈 것이라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OECD 국가 중 리투아니아, 일본, 튀르키예, 핀란드 등 의사가 많거나 급증했던 나라들에서 도시와 지방 간 의사 밀도 차가 줄어들지 않았다. 의료 공급이 부족해서 지방 의료가 붕괴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 수요가 부족해서 붕괴한다는 것이다. 즉 지방소멸 위기의 한 단면이다.

보사연의 2022년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를 보면, 한국의 의사 수 연평균 증가율은 3.1%OECD 평균 1.2% 보다 대단히 높으며, 국토면적 대비 의사 밀도도 다른 OECD 국가들보다 높다. 해마다 3천명씩 의사가 늘고 있어 조만간 의사인력 과잉 상태에 접어들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의 문제 중 하나는 국민 1인당 의사방문 횟수가 OECD 국가 중 최다로, 대단히 많다는 점이다. 국민 1인당 내원일수, 재원일수가 평균 대비 2배 이상 많아서 의사 1인당 업무 강도도 OECD 평균 대비 3배 이상 높다. 의사 공급은 충분하나 의료 수요가 2배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어, 무엇보다 의료수요 측면의 변화와 개혁이 시급히 필요하다.

특히 지역의료 불균형 측면에서 환자의 도간 이동 및 권역 외 의료기관 접근을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어 지역의료 쏠림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기에, 정부와 정치권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또한 보장성 강화만을 외치며 필수의료의 문턱을 낮추면서, 미용, 성형 등 비 필수 분야로 의료 자원이 집중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고, 실손보험의 폐해와 함께 심각한 의료 왜곡 현상이 있어 개선이 요구된다.

요컨대 의료 수요 측면의 대대적인 변화와 개혁이 없다면 의료공급 변화를 아무리 외쳐봐야 자원 소비 불균형을 막기 어려울 것이다.

보건의료 인력의 적정 수급을 위해서는 직종별 면밀한 수급 구조를 판단하고 이를 토대로 필요한 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중장기 로드맵을 구축해야 한다. 현재는 급조된 정책으로 좌지우지 되고 있기에 아쉬울 따름이다. 미국, 유럽 등 해외 선진국처럼 보건의료인력에 대한 정교한 추계 모형이 필요하다. 인구 변화, 예측 경제 성장률 등 외생변수를 반영하여, 사회적, 재정적으로 감당 가능한 적정 보건의료 인력 수준을 검토해야 한다.

현재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가파르게 늘고 있고, 저출산, 고령화 등과 맞물려 오히려 과잉 공급을 걱정해야 할 시점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전체 의사 수가 아니라 의료기관 종별, 지역별 격차이며, 의료자원 쏠림 현상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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