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안병정 기자]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대폭 늘려 의사 수를 확충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알려져 의료계가 긴장하고 있다. 아직 몇 명을 어떻게 늘릴지는 확실치 않지만 언론보도나 정치권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2025학년도부터 의대 입학정원이 최소 500명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의사 인력 증원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정부와 의료계는 ‘9.4 의정합의’를 통해 ‘협의 추진’을 약속한 바 있고, 그 합의를 바탕으로 의료발전협의체에서 논의를 이어오는 중인데 언론보도에 이어 정부도 지난 주 ‘필수의료 혁신 전략’을 발표하면서 의대 증원 확대를 기정사실화 했다.

어쨌거나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의사가 부족하다면 당연히 늘려야 한다. 그러나 작금 야기되고 있는 필수의료 붕괴나 공공의료 공백이 모두 ‘의사 부족’에서 야기되는 것인지, 이를 타개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의사 증원’이 적절한 해법인지, 과연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서 비인기과로 의사들이 유입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동안 여러 전문가들이 제기해 온 바 있지만 당면한 우리나라의 의료 현안, 특히 필수의료체계의 붕괴와 같은 문제는 기본적으로 낮은 의료수가와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에 기인하는 것이다. 공공의료가 뒤쳐지고 지역 간 의료격차가 벌어지는 것 역시 출산율 감소에 따른 인구절벽이나 지방의 붕괴와 같은 복합적인 문제가 결부된 것이지 단지 ‘의사 수의 문제’ 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의사인력을 늘리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책이라면 이를 반대하는 의사들의 주장과 요구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그에 앞서 정부와 정치권, 나아가 일부 정책전문가들이 OECD 통계를 들어 의사 부족의 심각성을 들고 있는데 그렇다면 다른 보건지표도 꼼꼼히 따져보았으면 한다.

최근의 OECD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임상의사 수가 글로벌 평균에 한참 미달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병상수는 평균의 3배, 국민 1인당 외래이용 또한 약 3배에 달하며, 병원 재원 일수도 2배가 넘는다. 그런 반면 GDP대비 경상의료비 지출은 오히려 OECD 평균 이하다. 이 통계를 보면 의사들의 기여와 희생이 얼마나 큰지 유추 해석 할 수 있다. 이런 마당에 그간의 정책적인 오류나 불균형은 덮어두고 의사들만 탓한다면 그것은 무리라고 본다.

지금은 세상이 변해있다. 국민들이 건강에 대해 유독 최고‧최선을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처럼 의사들도 고도의 전문가로서 직업전문성을 확보하면서 워라밸을 추구하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요즘 젊은 의사들은 보람이나 비전이 없고, 위험이 도사린 분야에는 눈길도 주려하지 않는다. 이런 결과들이 쌓이고 쌓여 작금의 필수의료 공백 등 일련의 의료사태를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도 구조적인 문제를 바꾸지 않고 막연히 의사수를 늘린 다거나 ‘혁신’ 이라는 이름으로 대책을 세운다고 현안이 해결될 지 의문이다.

그러나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의사인력 확충을 넘어 의료체계 전반의 비정상을 정상화 시키면 된다. 우리나라는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이다. 이제 국가 위상과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 맞게 국민의료비 부터 올려놓고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 형평에 맞게 돈을 쓰면 된다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 국가가 의료비 지출을 과감히 늘려 나가길 바란다. 동시에 국민들도 서비스에 상응하는 부담의식을 갖도록 정부가 적극 설득에 나서 줄것을 기대한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의사증원 시책이 필수‧지역의료 혁신을 위한 ‘필요조건’이라면, 의료수가 현실화는 ‘충분조건’이란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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