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 - 김보라미 KRPIA Market Access위원회 본부장

김보라미<br>KRPIA Market Access위원회 본부장
김보라미
KRPIA Market Access위원회 본부장

올해 5월에 개최된 세계 3대 암학회인 ASCO(미국임상종양학회)에서 한 유명 제약회사 CEO는 지금 개발 중인 획기적인 신약들이 향후 25년 내 모든 암의 사망률은 지금보다 50%정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혁신 신약을 개발하는 것도 어렵지만, 이 약이 각 나라의 정책이나 약가제도와 같은 장애물을 뛰어 넘어 어떻게 환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지가 더 걱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예전의 약들은 하나의 성분이 하나의 적응증을 가졌다. 그러나 지금 개발되는 약은 하나의 성분이더라도 환자상태, 질환, 암종의 병기별로 다양한 쓰임새를 가지고 있다. 혁신적인 신약들은 허가 받은 하나의 적응증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약제와 병용하거나 용법용량을 달리하면서 새로운 질환에서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건당 수 조원에 이르는 임상시험을 연이어 수행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이렇게 다수의 적응증을 보유한 항암제나 생물학적 제제, 면역제제나 희귀질환치료제의 허가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약제의 가치는 기존 한 가지 적응증만을 가졌을 때 평가받던 것과는 달라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한 면역항암제가 상대적으로 환자수가 많은 폐암치료에 효과를 입증함과 동시에 용법용량과 치료기간을 다르게 해서 그동안 뚜렷한 치료법이 없었던 중피종(복막, 흉막, 심막 등 조직에 발생하는 악성 희귀암)에서도 뛰어난 효과를 입증했다면 이 약의 가치는 어떻게 봐야 할까? 여러 치료옵션이 많은 폐암환자에겐 해당 약제가 하나의 치료옵션이지만, 희귀암 환자에서 얼마가 들더라도 사용하고 싶은 유일한 치료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시스템에서 신약이 처음 건강보험에 등재될 때는 정해진 단일 가격과 급여기준을 따라야 한다. 이후 다른 질환에 새로운 쓰임새를 허가 받아 급여기준에 추가하려면 가장 낮은 가격의 비교약제를 참고한다. 현재 건강보험에 등재되려면 선진국 중 최저가 혹은 OECD 평균의 62% 수준인 약가를 수용해야 하고, 등재 이후에 판매금액이 일정 수준 증가하면 약가를 수시로 인하하는 등 정부가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혁신적인 신약이 환자들에게 전달되기까지 기존 제도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한 가지 대안이 바로 ‘적응증별 약가제도(Indication based pricing)’이다. 적응증별 약가제도는 환자에게는 혁신적인 약을 쓸 수 있게 해주고, 의사에겐 임상적으로 확립된 치료옵션을 늘어나게 해주며, 바이오벤처〮제약사에겐 약의 가치와 약가를 연결시켜 연구개발의 동력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유용한 제도이다.

적응증별 약가제도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적응증에 따라 단순 가중평균하는 방법이다. 전체에서 적응증별로 판매개수나 매출액, 환자수 비율에 따라 가중평균하여 하나의 가격을 책정하는 방식으로 프랑스와 독일에서 수행하고 있다. 두 번째는 위험분담제를 활용해 하나의 표시가격을 가지고 있되, 환급율을 다르게 적용하는 방식이다. 이태리에서는 비용-효과성, 환자수, 비교약제별 가치에 따라 적응증별로 실질가격을 다르게 책정해 놓고, 다른 비율로 환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사실 국내에서 지금도 위험분담제를 실시하고 있는 약제의 경우, 급여기준에 속한 적응증 혹은 비급여 적응증인지에 따라 환자에게 사후적으로 다른 비율로 환급해 주고 있다. 두번째 방식은 심사청구시 정확한 상병코드를 기재해야 되고 환자에게 사후정산을 해줘야 한다는 행정적 불편함이 있지만, 전자의무기록시스템과 전자 심사청구 등의 확대추세를 고려한다면 추후 개선가능하다고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올해부터 보건복지부와 적응증별 약가제도의 시범사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하나의 약이 다른 영역에서의 치료 효과를 새롭게 입증하고 상이한 비용-효과성을 보일 때, 각각의 적응증에 적절한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루어진다면, 적응증별 약가제도는 신속하게 국내에 도입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