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감이요? 요즘 그런거 없습니다.”

필자가 몇 년전 대학병원을 출입할 때 한 의과대학의 중견 교수가 한 말이다.

인턴이나 레지던트들이 전공과목을 선택할 때 사명감보다는 돈을 택하는 세태를 지적한 것으로 짐작한다.

이정윤 편집 부국장
이정윤 편집 부국장

그런데 돈 대신 사명감을 택한 의사들이 요즘 ‘기피과’로 전락하면서 개인은 물론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형국이다.

응급의사가 부족해서 생긴 ‘응급실 뺑뺑이’나 경영난을 견디다 못해 터진 ‘소아과 폐과선언’ 등은 의료계가 안고 있는 고민 가운데 빙산의 일각이다.

우리 국민들은 고루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의료계 일각이 온난화에 북극 빙하 무너지듯 폭삭 가라앉는다면 그 피해는 온전히 국민 몫이다.

국민건강을 담보하는 ‘의료 생태계’를 보전해야 할 책무가 있는 정부가 팔을 걷어 부치고 필수의료를 다시 세워야 할 이유다.

의료계는 정부도 필수 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법 리스크 해결-업무부담 경감-보상 강화’ 등 해법에 동의하는 편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해법마다 느끼는 온도차가 매우 크다는게 문제다.

우선 사법 리스크 해결책을 보자. 현재 의료분쟁조정법으로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법제도적으로 구제받을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의료계의 입장은 다르다.

교통사고 특례법처럼 8개항 위반이 아니면 형사처벌을 면제하고 보험사가 개입해서 해결하듯이 고의나 중대 과실이 아닌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의료인 기소나 형사처벌을 면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교통사고특례법 취지는 중하지 않은 사고에 대해 형사 면책권을 줘서 국민들이 사고 수습에 들이는 공력 대신 생업에 주력하라는 뜻이다.

필수 의료 의사도 마찬가지다. 소송에 휘말리면 진료를 제대로 할수 없다. 적어도 중하지 않은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의사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제도가 필요하다.

건강보험 급여 등 보상 문제도 고민할 대목이다. 정부가 필수적인 기능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외딴 지역이나 수익이 나지 않는 지역에 정기버스를 투입하고 적자를 공공 재원으로 메꿔 주는 버스 공영제가 그렇고, 환자 수가 적어 생산을 포기하는 의약품이지만 환자 치료에 필수적인 의약품의 가격을 보전하는 필수의약품지정제도 그 대표적 사례다.

'필수’에는 국가 책임이 따르는 법인데 필수의료를 위한 정부의 지원은 ‘언 발에 오줌누기’에 그치고 있다는게 의료계 시각인게 엄연한 현실이다.

‘업무부담 가중’은 대다수 전문과목이 공통된 현상이기는 하지만 소아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 필수의료 분야는 레지던트(교육생)부터 지원자가 적어 현장의 업무 부담이 훨씬 크다.

이제 정부-정치권-의료계가 합심해서 필수의료를 살려야 국민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의료공백을 없앨 수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 필수의료의 위기를 감지하고 나름 대응에 나서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발의된 필수의료육성법안은 필수의료의 분야를 정하고 그 필수의료의 종사자의 전문성과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합리적인 보상체계를 마련하며 국가가 필수의료 의사의 양성이나 수련비용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눈에 띄는 대목은 필수의료 과정에 발생한 무과실 의료사고는 형사처벌을 감경 또는 면제하고 피해자 보상비용도 국가가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환영할만하다. 그러나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데 어떤 장애물이 있을지 걱정된다.

필수의료, 의료생태계를 유지하는 최첨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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