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호기<br>인제대 백병원 교수, 의사평론가&nbsp;<br>&lt;의협 코로나19대책전문위원회 위원장&gt;<br>
염호기
인제대 백병원 교수, 의사평론가
<의협 코로나19대책전문위원회 위원장>

[의학신문·일간보사] 30년 이상 다닌 병원이 문을 닫는다. 87년 된 병원이 문을 닫는다. 문을 닫으려고 하는 사람과 폐업을 막으려는 사람들이 부딪히고 있다. 병원을 여는 것과 병원을 유지하는 것만큼 병원 문을 닫는 것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중국 당나라 태종이 나라를 창업한 신하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후대에 정관정요(貞觀政要)’라는 책으로 발간되었다. 정관정요의 가장 첫 번째 질문은 '창업이 어려운가 수성이 어려운가?'이다.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화두가 되는 말이다. 창업을 한 사람에게는 창업이 어렵다. 창업을 이어 나가는 사람에게는 수성이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책은 창업도 수성도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굳이 창업과 수성 둘 중 어느 것이 어려운지 저울에 달아 본다면 후세의 사람들은 창업한 자보다 수성한 자들이 많기 때문인지 수성이 어렵다고 한다. 왜냐하면 수없이 많은 나라와 기업이 창업 후 조기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미국 주식시장에 수없이 많은 기업이 상장되었다. 그중 100년 이상 지속된 기업 중 100대 기업에 들어가는 기업은 10개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100년 된 기업이 없다. 삼성이나 현대가 구멍가게 하던 시절부터 계산해도 90년이 되지 않는다. 매일 같이 수없이 많은 기업창업이 되지만 창업보다 더 쉽게 사라진다.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90%가 창업 후 5년 이내 폐업한다. 기업의 창업은 쉽지만, 수성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듯 어렵다. 창업가는 죽을 만큼 힘든 창업가 정신으로 창업하지만, 수성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정신이 없다. 편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서울백병원 폐원도 흔히 볼 수 있는 수성의 실패이다. 수없이 많은 수성의 실패 중에 하나로 잊혀 질 것이다. 창업자의 업적과 그림자를 지우려고 하는 사람들의 의도이든 시대의 흐름이든 창업자의 정신은 역사로 남는다. 하지만, 기업이 문을 닫는 것은 창업만큼 고통스럽고 복잡한 과정이다. 폐원으로 생존이 걸린 직원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완전히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인 폐업이라면 남은 부분에 대한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같은 방식으로 수성(경영)하면 나머지도 생존을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 폐업의 통상적인 관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수성에 실패했다고 실패한 방법으로 폐원에 접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서로 따뜻한 마음과 냉철한 머리를 맞대고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 폐원도 수성이나 창업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백병원 직원들이 원하는 안정적인 고용승계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가장 큰 문제는 환자에 대한 배려이다. 의사는 의료현장에서 갑작스럽게 언론을 통해 폐원 소식을 듣고 걱정과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끼고 당황해하는 환자를 매일 만난다. 서울백병원 폐원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가장 간과했던 부분으로 느껴진다. 내가 편한 길, 쉬운 길, 명예로운 길을 선택하고 싶은 욕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고민은 깊이 하였지만,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저쪽 길은 내가 아니라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쪽 길은 내가 아니면 갈 수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병원을 함께 다니신 환자분들의 걱정과 분노를 지켜만 볼 수 없었다. 연로하신 어르신이 손을 잡고 눈물로 아쉬워하시는 분, 장문의 편지를 들고 오시는 분, 그동안 보살핌으로 감사를 표현하시는 분, 흔들리는 눈빛과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잊지 못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이들을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에 결정은 쉬웠다. 다른 것을 고려하지 않고 그동안 인연을 맺어온 환자만을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고, 그것이 올바른 판단이라고 생각하여 어렵지 않게 결정하였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했던 일이 아니라 하지 않았던 일이다. 나는 오늘 그 일을 하려고 한다.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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