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호기&nbsp;<br>인제대 백병원 교수, 의사평론가&nbsp;<br>&lt;의협 코로나19대책전문위원회 위원장&gt;<br>
염호기
인제대 백병원 교수, 의사평론가
<의협 코로나19대책전문위원회 위원장>

[의학신문·일간보사] 의사의 의료 행위를 통하여 수익을 창출해야 국민건강이 보장된다. 대한민국 건강보험제도는 의사의 의료 행위보다 검사와 검진을 통하여 수익을 창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국가 암검진이라는 포퓰리즘 의료가 진정한 의료, 필수 의료를 죽이고 있다. 의원을 개원하여 건강검진을 하지 않으면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 너도나도 환자 진료는 뒷전이고 건강검진을 표방한다. 환자는 하지 않아도 될 내시경, 초음파검사, 전산화단층촬영(CT), 자기공명검사(MRI), 조직검사를 한다. 환자는 공짜라고 생각하지만, 비용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한다. 건강보험공단 재정이 질병 치료에 쓰이지 않고 효과도 불확실한 예방사업에 사용된다. 정치인들은 공짜 건강검진 쿠폰으로 표를 구걸하고 정작 자신이 아프면 갈 곳이 없어지는 줄 모르는 국민은 공짜 쿠폰을 즐긴다. 이렇게 현재의 의료체계는 의사를 진료보다 검진에 내몰리게 한다.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에서 일제강점기의 조선 지식인의 사회적 절망과 부적응을 다루는 작품이다. ‘검진을 권하는 사회술 권하는 사회처럼 의료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필수 의료에 사용되어야 할 의료자원은 비용효과가 불확실한 비필수의료에 투입된다. 우리나라 환자들은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 빈번하게 방문한다. OECD 국가의 평균보다 7배 더 많이 병원을 방문한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유명한 암 전문의사는 자신은 다섯 번째 의사라고 한다. 왜냐하면 환자가 자신에게 오기 전 최소 4곳 병원을 거쳐 온다는 것이다.

질병이 없는 사람의 검진 결과는 뻔하지만, 질병을 걱정하는 국민과 국민건강을 위하는 척하는 정치권의 결단으로 수없이 많은 유소견자를 만들어 낸다. ‘유소견이란 검진 후 아무런 이상 없음을 입증하기 어려우니, 판독의 흔적을 남기고 책임을 환자에게 돌리는 빛 좋은 개살구이다. 건강한 사람도 유소견이 나오면, 또다시 병원을 찾게 된다. ‘유소견을 받아본 의사는 또 다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추가적인 정밀검사를 한다 (의료소송에 말리지 않으려면 눈 질금 감고 정밀검사 처방을 해야 한다). 이렇게 대학병원의 검사실은 공장처럼 밤새 돌아가고, 환자 진료를 위한 대한민국 의료체계는 무너져 가고 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인턴 과정도 없이 피부과로 개원하는 의사가 많아지고 있다. 하루빨리 돈도 잘 벌고 편한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직업선택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왈가왈부할 수 없다. 의사(의료인력, 의료자원)가 부족하지 않다면 큰 사회 문제가 아니다. 힘들게 키운 의료자원이 필수 의료를 외면하고 미용과 성형에 투입된다. 질병을 치료해야 할 의사가 부족 현상을 가중하는 요인이다.

진료를 전담하는 의사는 만성적인 저수가로 인하여 경제적으로 힘들고 워라벨보장도 못 받는 현실이다. 우리나라 필수 의료는 고사 직전이 되었다. 필수 의료 전공과목인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를 전공하는 의사가 줄어들고 있다. 흉부외과를 필두로 필수 의료 진료 체계는 무너지고 있다. 의사 정원만 늘린다고 필수 의료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피부과처럼 생명을 다루지 않는 과목에 종사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국가 의료체계가 생명을 다루는 진료를 하여도 피부과처럼 적절한 수익과 워라벨그리고 의료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직업적 안전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의료 정책을 하는 사람들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알아도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의료 왜곡의 정도가 너무 심하여 교각살우(矯角殺牛)’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용기를 갖고 지금부터 고쳐나가지 않으면 언젠가는 괴물처럼 변해 버릴 것이다. 의료의 재화는 한정된 것이며, 공익적인 목적임을 국민과 의료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각종 불편함을 이겨내야 한다. 검사에 치중된 의료수가체계를 의사의 진료로 전환해야 한다. 새로 건강보험 수장이 의료임상 현장 경험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 그에게 이런 기대를 하는 것이 헛된 꿈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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