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안병정 기자] 최근 발표된 ‘OECD 보건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인구대비 의사 수는 여전히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반면 병상수 비율은 단연 으뜸이고, 국민 1인당 외래 진료를 받는 횟수는 연간 15회가 넘어 회원국 평균의 2.6배에 달한다. 입원기간도 OECD 국가의 평균을 훨씬 웃돌고 있다.

이 수치를 보면 우리나라는 적은 수의 의사들이 엄청난 환자를 감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지출하는 경상의료비의 총액은 OECD 평균에 한참 미달한다. 한마디로 우리 국민들은 적은 비용으로 의료복지를 맘껏 향유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우리나라는 GDP 규모로 세계 11위권 경제대국을 자랑하고 있다. 의료서비스의 질적 수준 또한 세계 최고를 자부하고 있고, 국민들의 의식 수준도 이에 버금가게 높아져 매사에 글로벌 표준을 요구하고 있는데 보건의료에 관한 한 격이 한 참 떨어져 있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다.

그럼에도 OECD 데이터는 우리가 안고 있는 제반 문제를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다만 데이터를 똑 같이 공유하면서도 다른 것은 다 무시하고 ‘의사 인력 최하위’만 부각 되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통계가 보여주는 우리나라 의료문제는 인력부족이 전부가 아니다. 과다한 의료이용, 그러면서도 낮은 의료비 지출이 더 크게 내재해 있다. 따라서 이런 불균형을 바로 잡는 노력으로부터 국가가 글로벌 스탠더드를 추구하는 책무가 필요하다고 본다.

어쨌거나 그동안 적은 의사인력으로 넘치는 의료수요를 감당하며, 의료서비스 수준을 고도화 시켜 온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낮은 수가체계 때문에 박리다매식이 아니고는 의료가 생존력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3분 진료가 고착화되었고. 시장이 왜곡되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로 인해 대다수 의료기관들은 규모의 경쟁에만 집중했고, 대형병원들이 문어발식으로 확장해 온 반면 정부는 의료보장 확대에 따른 공급에만 몰두하여 의료전달체계를 느슨하게 유지해 온 측면이 있다. 그 결과 중소병‧의원의 의료자원은 상당부문 사장되는 의료의 양극화가 조장되어 온 것이다.

이런 난맥상에서 대형병원에서 수련을 받아 온 전공의들은 격무에 시달리며, 미래에 대한 비전, 그리고 ‘워라밸’을 추구하는 시대적인 정서로 소위 3D과 기피현상이 심화되었고, 최근에는 힘만 들고 보상수준은 낮으며 의료사고의 위험성이 높은 필수중증의료와 응급의료분야는 아예 외면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의료의 현주소다.

그러자 정부와 정치권이 들고 나온 카드가 의사인력 확충이다. ‘공급이 넘쳐나면 3D과를 가릴 여지도 없으며, 지방이라고 외면하지도 못할 것’이란 계산인 것 같다. 그러나 ‘의료도 엄연한 시장’이다. 지금도 ‘위험성 적고 돈 되는 진료’에는 의사가 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의료수가의 현실화와 의사들이 환자진료에만 전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의사 수를 늘려봐야 정부가 기대하는 정책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 본질적인 방안은 결국 우리나라도 보건의료체계와 서비스의 전반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는 물론 국민들도 건강관리 비용에 대해 적정한 부담의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의료자원 이용의 효율화를 도모하고, 지나친 의료이용도 억제하며, 합목적적인 의료체계를 세워나가는 노력을 펼쳐야 한다. 사람을 늘리는 일은 맨 마지막 순서이어도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

이번 기회에 OECD 보건통계를 놓고 대한민국 의료가 글로벌 스탠더드를 이루고, 필수 의료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나갈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잘 따져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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