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 - 김보라미 KRPIA Market Access위원회 본부장

김보라미 <br>KRPIA Market Access위원회 본부장
김보라미
KRPIA Market Access위원회 본부장

하나의 신약을 개발을 하려면, 아이가 태어나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는 시간과 중견회사의 임직원수에 해당하는 연구인력, 그리고 수조원의 비용을 투자하면서도 실패할 확률이 성공할 확률보다 수만배가 높은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

과학과 기술에 기반한 혁신성이 높은 신약은 질환 치료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개인 맞춤형 치료로 가는 시간을 앞당기고 있다. 신약을 사용하면서, 국민의 수명이 늘었으며 환자 본인과 가족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었고, 암뿐만 아니라, 희귀 및 난치질환 치료의 기회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반면 약가정책은 혁신 없이 그 자리에 멈춘 듯 서있다.

코로나가 발생했을 때 백신과 치료제 도입을 위해 각 나라들이 치열하게 경쟁했던 것처럼, 의약품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각국의 제약사들은 보이지 않는 선점 경쟁을 하고 있다. 모든 신약에 대해 무조건 낮은 가격만을 고집하는 우리나라는 신약의 가치를 적절히 인정해 주거나, 의약품 시장이 큰 국가에 비해 수급의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저렴한 가격에 신약을 들여오는 단기적인 정책이 부메랑이 되어 장기적으로는 신약을 공급할 수 없는 상황 즉 국민의 건강권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게 된다.

국내외 제약바이오 회사에서 신약이 건강보험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부서를 마켓엑세스(Market Access)라 한다. 글로벌 회사의 마켓엑세스 부서는 소득수준은 높아 지불할 능력이 되는 한국에 특별히 낮은 가격으로 신약이 공급되어야 하는 정당성을 찾아 본사를 설득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거기에 더 하여 규제가 많고 까다로워 건강보험 적용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어렵게 받은 보험약가마저 지속적으로 떨어뜨리고 있는 상황이 암담하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 약가 인하를 할 때 한국의 낮은 약가가 참조되는 상황은 더더욱 한국에 신약을 들여오는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이나 중동지역 등 의약품 시장이 더 큰 나라에서 우리나라의 약가를 참고하는 경향이 더 두드러짐에 따라 한국의 신약출시는 더 늦어질 수밖에 없다.

위의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환급제도(Refund, 이중가격제도)’의 활용이다. 환급제는 국외에서 참조하는 ‘표시가’와 정부와 제약사 간에 합의된 ‘실제가’의 차이를 제약사가 정부와 환자에게 환급하는 제도이다. 즉 정부는 국민들에게 ‘실제가’로 신약을 공급할 수 있어 재정적 부담을 덜 수 있고, 제약사는 ‘표시가’로 국외 참조 약가가 되는 부담이 덜어진다. 여러가지 사후관리 제도로 빈번한게 약가 인하를 요구받는 현 상황(실거래가 약가인하제도, 사용량-약가연동제도, 사용범위 및 적응증 확대 약가 인하제도, 위험분담제 재계약, 해외약가비교 재평가)에서 환급제는 환자의 신약접근성을 높이고 국민 건강권을 지키는 실용적인 방안이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국민소득에 합당하고 적절한 약가를 유지하기 위한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현재 환급제는 ‘위험분담제 계약(Risk Sharing Agreement)’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승인하는 경우에 한해서 적용이 가능하다. 본 환급제는 환자의 신약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치료하지 않을 경우 2년 내에 사망할 치명적인 희귀 또는 암 질환의 신약 중 비용효과성이 입증된 경우로만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이제는 환급제를 모든 약제를 대상으로 확대하고, 길을 열어 줄 때가 되었다. 환급제는 국내에서 신약을 개발해 외국으로 수출할 때도 필요하며, 정부도 재정이 더 소요되지 않기 때문에 상생전략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중증 희귀질환 환자들에게 필수적인 신약을 공급하기 위한 ‘혁신생태계 조성’을 하겠다고 발표한 현 시점에서 모두 상생할 수 있는 환급제의 확대를 시행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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