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보건의료계 수가협상이 본격화됐다.

지난 11일 건강보험공단과 공급자측이 상견례를 갖고 합리적인 협상을 다짐했지만 벌써부터 결렬 예상이 나오는 등 협상이 순항하는데는 제반여건이 녹록치 않다.

의원급 협상을 맡은 대한의사협회 측에서는 수가협상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가협상 거부'라는 극한 제안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어서 험로가 예상된다.

이정윤 편집부국장
이정윤 편집부국장

한정된 재정으로 공급자에 대한 수가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건보공단은 협상에 보수적으로 임하는 반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 물가 속에다 원가에 못미치는 수가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의료계의 강한 요구가 부닥치면서 어차피 파열음은 예상되는 대목이다.

문제는 어느 쪽이 더 합리적 주장을 하는가에 달렸다.

의료계는 수가협상의 기초가 되는 자료인 SGR(Sustainable Growth Rate, 지속가능한 목표진료비 증가율)이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을 한다.

수가협상 SGR 모형에 대한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된 내용이며, 공단도 그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

의료계는 SGR 모형을 만든 미국도 사용하지 않는 모형이라며 용도폐기감이라고 주장한다.

올해 제도발전협의체를 통해 고치겠다고 했지만 1년이 지났어도 똑같은 SGR 모형을 가지고 2024년 수가협상을 하겠다고 하니 답답하다는게 의료계 입장이다.

실제 SGR 모형은 거시지표의 선택과 목표진료비 산출 적용 시점에 따른 격차 발생, 장기간 누적치 사용에 따른 과대(과소) 편향 가능성, 산출결과의 실효성 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문제는 또 있다.

공급자에게 지급할 재정을 추계하는데 가입자와 공익대표만 참여한다는 점이다.

협상을 해서 지급할 재정을 돈을 내는 가입자들만 모여 추계한다면 적을수록 좋다는 의견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크다.

가장 적은 돈을 내고 가장 우수한 의료혜택을 받겠다는 '놀부 심보'에 다름아니다.

적절한 의료공급으로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공급자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으며, 적절한 의료공급을 하는데 어떤 애로가 있는지 경청을 하는 것이 온당하다.

협상의 중요 기초자료인 수가모형을 개선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될 수 없다 치자. 그렇다고 공급자의 상황이나 애로를 듣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

정부나 건보공단은 어떻게든 파이를 적게 만들려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가입자끼리 모여 지급할 재정을 정하니 파이가 오죽 작아지지 않겠는가.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는 가입자나 의료서비스 공급자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짤 때 재정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 건보공단과 보건의료계간 협상력도 높아질 것이다.

정부나 건보공단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고질적인 저수가가 대한민국 의료를 위기로 몰고 있다.

수 십년간 원가에도 못미치는 수가인데 장례나 식당 운영 등 본질이 아닌 기능이 의료기관들의 숨통을 간신히 붙여놓고 있다는게 의협의 주장이다.

저수가 속에서도 보건의료인들은 대한민국 의료를 글로벌 수준으로 올려놨다. 이제 바이오헬스는 국가 성장동력이다.

수십년에 걸쳐 보건의료계가 고통을 감내하고 일군 성과를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다.

적정한 수가는 시혜가 아니라 당연한 대가라는 생각이 필요한 때다.

그 시작이 공급자들이 처한 상황을 고려한 수가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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