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분야 주요 이슈와 정책과제

이정근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
이정근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

[의학신문·일간보사]

2021년 8월 4일 보건의료발전협의체에서 정부는 의료계와 사전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료보조인력 시범사업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먼저 진료보조인력(Physician Assistant, PA)이란 의료법상 용어가 아니고, 그 법적 근거 없음을 들어 무면허보조인력(Unlicensed Assistant, UA)로 지칭하기도 하나, 이 글에서는 일단 진료보조인력으로 통일하여 지칭한다.

이후 2021년 10월 27일 보건복지부의 연구용역 의뢰를 받아 고려대학교 보건대학원이 개최한 ‘진료지원인력 관련 정책방향 수립을 위한 공청회’에서 ‘진료지원인력 관리운영체계 방안’이 발표되었는데, 여기에서는 의료기관의 자율성을 고려하여 현장에서 수용 가능할 수 있는 표준화된 규정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진료지원인력의 무분별한 활용을 제한하고 무면허의료행위나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논란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우선적으로 진료지원인력의 자격기준, 업무범위, 교육, 책임소재, 관리체계를 포괄적으로 포함하는 관리운영체계를 기관별로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이후 정부는 2022년 2월 ‘진료지원인력 관리운영체계 시범사업’을 8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시작했고, 지난달에는 위 시범사업 결과를 바탕으로 시범사업 범위를 45곳의 상급종합병원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위 시범사업은 진료보조인력 양성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바, 정부는 이러한 시범사업은 진료보조인력의 무면허의료행위를 암묵적으로 묵인하는 것으로서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라는 점과, 이러한 접근 방식은 진료보조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방안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진료보조인력 양성화 시도는 다음과 같은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의료인 면허제도의 근간을 훼손한다. 우리나라는 의료법에 따라 의사 및 간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해당 학문을 전공하는 대학을 졸업한 자 등이 국가시험에 합격한 후 보건복지부장관의 면허를 받도록 하고 있고, 해당 면허자는 해당 면허에 부합하는 업무만을 수행할 수 있도록 업무범위를 국한받으며, 해당 업무범위를 넘어서는 경우 무면허의료행위로 처벌받고 있다.

이와 같이 엄격한 면허관리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료보조인력이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의료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으로서 현행 의료인 면허제도의 근간을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둘째, 의료서비스의 수준을 저하시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진료보조인력의 양성화는 의사만 할 수 있는 고도의 의학적 판단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의료행위를 그에 미치지 못하는 진료보조인력이 수행할 수 있게 한다는 것과 같으므로, 의료기관은 환자에 대하여 현재와 같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게 되고, 이는 당연히 의료서비스의 수준을 저하시키게 되며, 궁극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셋째, 전공의의 수련기회를 심각하게 박탈한다. 전공의는 수련병원에서 임상수련을 통해 환자 진료를 위한 술기를 습득하고 역량을 제고해야 하고, 이후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이를 통해 국민에게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그러나 진료보조인력이 늘어날수록 전공의는 정당한 수련기회를 박탈당하게 되고, 전공의는 올바른 수련을 받지 못하게 되며, 이 역시 궁극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넷째, 기피전문과목을 고착화시키고, 의료인의 수급에 차질을 발생시킨다. 현실에서는 진료보조인력이 부족한 전공의 인력 공백을 메우는데, 특히 기피전문과목의 전공의 인력 공백을 메우는데 투입되고 있는 실정으로, 이로 인해 불법적인 진료보조인력은 더욱 활성화되고 기피전문과목의 전공의는 더욱 축소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의 기피전문과목의 의사는 계속 부족해지고, 전문과목별 수급 불균형은 물론 전체 의료인 수급에도 상당한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다섯째, 진료보조인력의 업무범위 확대를 기반으로 간호단독법이 제정되는 경우 단독개원을 위한 실질적, 법적 요건을 모두 충족하게 된다. 진료보조인력 양성화는 진료보조인력의 업무범위를 의사 고유의 의료행위까지 확대하게 하는 것이고, 이에 더해 간호단독법이 제정될 경우‘지역사회’에서 진료보조인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간호사가 의사의 지시·감독을 벗어나 독립적인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까지 마련함으로써 간호사가 단독 개원을 할 수 있는 개연성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

이상에서 본 것과 같이 진료보조인력 양성화를 기피전문과목의 의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임시방편의 일환으로서 근시안적으로 접근할 경우, 가까운 미래에 의료인 면허제도의 붕괴, 의료인 수급 차질에 따른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 수련교육시스템의 극심한 왜곡과 같은 심각한 문제들을 발생시켜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 전반에 회복 불가능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

따라서 진료보조인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의 마련이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서는 의료계와의 심도 있는 협의를 통해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기피전문과목에 더 많은 의사가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인 기전을 마련하는 것을 포함하여 관련 정책 및 제도의 전반적이고 대폭적 개선이 필요하다.

정부가 그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진료지원인력 관리운영체계 시범사업’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게 될 미봉책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심각한 여러 문제들을 발생시킬 것이 명약관화하고,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의료의 후퇴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해당 시범사업을 중단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 이정근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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