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분야 주요 이슈와 정책과제

윤석준 고려대 보건대학원장, 고려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윤석준 고려대 보건대학원장, 고려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

최근 대한민국에서 쟁점화되어 있는 진료지원인력은 그 시작이 미국 등에서 합법화된 직종으로 자리잡은 PA(Physician Assistant, 이하 PA)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우는 병상수 증가가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부족한 병원내 의료인력 문제를 해결하고자 병원별로 광범위하게 진료지원인력이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그 핵심쟁점은 이러한 진료지원인력이 합법적 범위에서 근무하는 인력인지 여부와 현재도 행해지고 있는 주요의료행위가 어디까지 진료지원인력에게 위임될 수 있는지 여부이다.

필자는 보건복지부의 의뢰로 2021년부터 민원이 많이 발생했던 주요 의료행위 약 50여 항목에 대해 전문가 의견, 기존 판례, 기존 정부의 유권해석 등을 토대로 위임가능한 의료행위에 대해 구분하는 작업을 수행해본 경험이 있다.

현행 의료법은 제2조에 ‘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는 조항이 있다. 그런데 이 조항 자체가 상당히 모호한 측면이 있어 실제 현장은 의료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여러 해석상의 어려움을 안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당연히 피부봉합(skin suture)은 의사의 역할이었던 것에 비해 최근에 개발된 피부봉합용 스테이플러(stapler)를 사용하면 의사가 아닌 인력도 해낼 수 있는 것이 그 한 사례이다. 정형외과에서 많이 사용하는 석고붕대(cast)의 경우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위임가능한 행위라는 의견과 잘못될 경우 괴사 등의 커다란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부목(splint)과는 달리 반드시 의사가 수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었다.

미국·캐나다·영국 등은 인구밀도가 낮은 우리로 치면 취약지 의료기관의 의사부족사태를 해결하고자 PA 인력을 합법화하는 과정이 있었다. 시작은 의료취약지역에서 출발했으나 현재는 미국 뉴욕과 같은 대도시 대형병원에서도 드물지 않게 통용되는 인력으로 자리 잡았다.

필자가 2022년 미국을 방문해 미국 PA협회 관계자와의 면담, 현직 PA 와의 면담 등을 거치면서 느꼈던 점은 대한민국이라면 의료인 직종간에 큰 갈등이 펼쳐질 만한 시술 행위 등이 자연스럽게 미국사회내에서는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한 병원내에서는 PA가 환자상태에 대해 의사를 거치지 않고 진료의뢰서를 통해 PA끼리 서로의 의견을 묻는 상황도 있었다. 정형외과에서 근무하는 미국내 PA의 주요 시술내용을 들어보니 대한민국의 웬만한 전임의 수준의 시술이 PA에 의해 수행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PA의 미국내 교육과정은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과정(대부분 3년)에서 이론과 실습을 마친 후 현장 경험을 거쳐 길러진다고 한다.

미국은 각 주(州)마다 공식 면허를 부여하고 있으니 명실 공히 합법화된 의료인력인 셈이다. 직종간의 갈등이 첨예한 대한민국에서 이와 같은 공식화 과정을 거칠 수 있을까? 아마도 현재의 대한민국 병원문화로 보면 어려울 것 같다. 미국과의 가장 큰 차이는 수평적 조직문화가 보편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미국과는 달리 대한민국의 병원환경은 아직도 위계적 질서가 광범위하게 존재하기 때문인 점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진료지원인력의 국내현황을 살펴보고자 시행된 2021년 필자 등의 연구에서는 병원규모가 큰 종합병원 이상에서는 대부분 진료지원인력을 정규 간호사(RN)가 역할하고 있는 반면에 규모가 작은 병원일수록 정규 간호사 이외 응급구조사, 간호조무사 등의 인력도 활용되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정규 간호사라 할지라도 체계적인 교육훈련 프로그램이 주어지지 않아 그 편차가 매우 심하다는 점이다. 또한 진료지원인력을 관리할 병원내 거버넌스도 불분명한 경우가 많아 승진 등 진료지원인력 당사자 들의 체계적인 인사관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책임문제가 모호한 경우가 많아 상당한 수준의 고난이도 시술에 참여함에도 불구하고 기록이 남아 있지 않는 이른바 ‘유령’ 의료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은 더 큰 문제로 여겨진다.

이와 같은 혼란스러운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면 더 큰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는 점에 필자가 접해본 많은 관계자들이 동의하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필자가 생각하는 해결방안을 찾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진료지원인력의 의료행위는 반드시 정해진 방식의 기록(record)과 함께 수행되어야 한다. 간호사의 경우 간호기록지에 자신의 간호행위가 기록되고 있는데 반해 진료지원인력은 경우에 따라 더 고난이도 시술에 참여하는데도 기록이 안 남고 있다는 점은 커다란 모순이다. 필요한 항목에 대해서는 전산상에 의사와 공동 서명(co-signature)의 형태로라도 진료지원인력의 의료행위는 공식적으로 기술되어야 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첫 단추이다.

둘째, 병원별로 (특히 상급종합병원 위주) 공식화된 진료지원인력 관리운영체계를 운영하여 교육 훈련 등이 빠짐없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현황조사에 따르면 진료과별 또는 수술실별로 훈련받은 정도가 상당히 다른 상황임을 감안할 때 병원 집행부 차원의 관심과 모니터링이 필요해 보인다.

셋째, 쟁점이 되는 주요 의료행위의 진료지원인력에 대한 위임가능 여부에 대해서는 정부 산하 공공기관에 관련 조직을 신설하여 지속적으로 근거를 찾아 정리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우리나라 진료지원인력의 현황과 주요 외국의 경험은 우리나라 의료환경에 새로운 해결과제를 부여하고 있다. 그 매듭이 너무 늦어지면 실타래는 더 복잡하게 꼬여 버릴 수 있는 휘발성이 매우 강한 주제라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지혜를 모아가야할 시점이다.

- 윤석준 고려대 보건대학원장, 고려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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