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분야 주요 이슈와 정책과제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

[의학신문·일간보사]

응급의료체계란 응급실뿐 아니라 119신고단계, 병원전단계, 병원단계를 거쳐 최종치료의 제공이라는 모든 과정을 포함한다. 이 모든 단계들이 유기적으로 한치의 오차 없이 적절하게 움직일 때 비로소 ‘제대로 작동하는 응급의료체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복잡한 시스템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절한 관리감독과 지원, 구성원들의 역량과 인프라가 모두 갖추어져야 가능하다.

우리의 응급의료체계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아주 짧은 기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냈다. 마치 우리나라의 고도 성장기에 자고 나면 고속도로와 아파트들이 생겨났던 것처럼 응급의료체계도 급속한 성장을 하였고, 불과 30년만에 전국 400여개의 응급의료기관에서 2000명의 응급의학 전문의가 매년 1000만명의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하였다. 하지만 고도성장에 가려졌던 문제들이 해결을 위해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응급의료체계 역시 급속한 성장의 이면에 여러 현실적인 어려운 문제들에 봉착해 있다.

초창기에 응급의료체계를 빠르게 안착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인력기준이 만들어졌고, 전공의 고년차, 타과전문의, 심지어는 일반의까지도 응급실 전담의사가 가능했다. 당시로서는 불가피했던 20년 전에 만든 이런 최소한의 인력기준이 지금까지도 바뀌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응급실의 인력을 법으로 정하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그 이유는 그나마도 법에 없으면 그만큼이라도 뽑지 않을 병원들이 많았기 때문이며, 지금 인력기준을 더 늘리지 못하는 이유는 현재 수가상 응급실의 수입으로는 인건비 충당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법적으로는 대부분의 응급의료기관이 평가의 필수항목을 충족한 인증기관들이지만 기능적인 측면을 고려해볼 때 아직까지 우리의 응급의료체계는 제공자인 응급의료인도 사용자인 환자도 불만족스럽기만 하다. 종별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수도권과 대형병원의 환자쏠림 현상은 가중되고 있고, 지역 의료인프라는 갈수록 취약해져 가고 있다. 대형병원일수록 고위험환자보다는 돈 되는 분야에 집중하고, 의원들도 경증환자보다는 피부·미용·통증 등 비보험과 실손보험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연명해 나가는 상황에서 정작 진료가 필요한 단순진료와 경증환자의 부담은 모두 응급실로 향할 수밖에 없다.

중증 응급환자를 봐야 할 권역응급의료센터들도 자의로 내원하는 경증 환자들을 거절할 수 없다. 상급병원의 과밀화는 의료자원을 소모시켜 중증응급환자를 위한 여력이 부족해진다. 응급실에 방문하는 경증환자의 대부분은 별 생각 없이 본인의 불편함을 간단히 빨리 해소하기 위해 내원하지만, 그 중에는 갈 병원이 없어서 응급실로 오는 환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자면 단순열상, 염좌, 교통사고, 감기, 설사, 두드러기 등 다른 나라라면 당연히 개인병원이나 클리닉에서 진료받을 환자들이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응급실로 모여들게 된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메이저 과목들의 몰락은 향후 이러한 경증이지만 봐주는 의원은 찾기 힘든 상황이 더 늘어날 것이다.

개인의원에서 단순열상조차도 봉합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병원장 입장에서는 시간은 많이 걸리고 수가는 낮으니 차라리 그 시간에 비보험 환자를 보는 것이 훨씬 이익이며, 이후에 흉터관리나 합병증, 나아가 분쟁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큰 병원에 보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응급의료기관의 경우 치과, 성형외과, 정형외과가 없다는 이유로 큰 병원으로 열상환자를 보낸다. 안과나 이비인후과 등 특정과와 연관된 문제라면 비록 경증이라 하더라도 지역응급의료기관에서 환자진료를 꺼린다. 응급처치는 가능하다 해도 수술이나 입원포함 최종치료까지 한 번에 제공받지 않으면 치료받지 않았다고 느끼는 환자, 보호자들과 실랑이하느니 처음부터 보지 않는 것이 위험을 회피하는 방법인 것이다.

응급의료기관을 종별로 나누고 단계에 따라 환자의 종류를 나누겠다는 생각은 이론적으로는 합당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응급실을 가야겠다는 환자 중에 본인의 중등도를 생각해서 경증이면 지역응급의료기관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코피가 난다고 119를 부르고 대학병원으로 데려오는 이유는 동네병원 이비인후과에 대한 불신에서부터 무료임에도 환자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구급대, 어렵게 설득하여 작은 병원 응급실에 가봤자 이비인후과가 없다고 거절하는 응급실의 현재의 상황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응급실에 오는 모든 환자에게 원하는 만큼 의료서비스를 한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중증응급환자에 적절한 응급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경증환자의 분산대책과 과밀화 해결책, 취약지 응급의료대책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응급상황에서 가장 가까운 응급실에서 적절한 응급조치를 받고, 이후 필요한 후속치료에 대하여 빠른 연계와 이송이 보장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응급의료체계에 가깝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증응급환자를 받아줄 상급종합병원들의 여력이 보장되어야 한다. 과밀화의 해결없이 단지 중증응급의료센터를 추가 지정하는 것으로 해결은 불가능할 것이다.

응급의료체계의 개편은 단순히 이름을 바꾸거나 숫자의 조절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응급의료 시스템 안에서 각각의 기관이 얼마나 제대로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지역의 중소응급의료기관에 모든 질환의 최종치료센터를 구축할 수는 없지만, 모든 응급환자의 응급처치는 제공해야 마땅하고 여기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다. 결국 지역의 응급의료기관의 역할은 응급환자의 적절한 응급처치와 최종치료를 위한 전달체계 활성화가 되어야 한다.

이번 4차 응급의료기본계획은 향후 5년간의 이정표가 되겠지만, 응급의료체계는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모두의 지혜를 모아 함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현장의 동의와 의사소통을 통한 적절한 교감이 성공적인 정책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