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분야 주요 이슈와 정책과제

이승구 대한의학회 수련교육이사&nbsp;<br>연세의대 영상의학 주임교수
이승구 대한의학회 수련교육이사
연세의대 영상의학 주임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

얼마 전 뇌혈관수술을 시행할 신경외과 전문의가 없어 아까운 생명을 잃는 일이 있었고, 일부 지방에는 산부인과 전문의가 없어 장거리를 차를 타고 이동해야 분만이 가능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상급종합병원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없어 어린이 입원 진료를 중단하는 믿지 못할 현실이 우리나라에 나타나면서 필수의료 살리기에 정부와 의료계 모두 발벗고 해결에 나선 상태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필수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과 인력을 강화하고, 지역별 보건의료 인프라 격차를 해소하는 것인데, 공공병원 및 인프라 확충, 재정확보, 보험체계 개선 등은 정부와 해당 전문가들이 방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든 점진적으로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이에 반하여 필수의료 인력 양성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보다 긴 호흡을 가지고 접근해야한다. 현재 각 전문과목 학회별로 배정된 전공의 정원은 매우 오래전부터 고정되어 왔기 때문에 인구 구조, 병원에 내원하는 환자군의 변화에 따라 전문과목별 정원을 늘리거나 줄이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에는 수요와 공급에 대한 확실한 추계가 이루어진 뒤 각 전문과목 학회간 공감대를 형성하며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난 10년간 일률적으로 전체 전문과목에 걸쳐 전공의 정원을 감원, 현재 전체 정원을 3100여명으로 고정하고 그 안에서 내부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제는 다시 한번 정밀하게 수요를 예측, 유연하게 증원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열악한 지방 의료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수도권-지방 지역별 전공의 정원을 조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공의를 교육할 만한 좋은 환경을 갖춘 수련병원을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며, 젊은 의사들이 앞다퉈 지원을 하는 매력적인 기관과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지방 거점 국립대병원들의 경우 서울의 대형병원과 대등한 시설과 응급, 중환자 진료체계를 갖추어 가고 있는데, 여기에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의료 취약지역과 긴밀하게 연계된 전달 이송 시스템까지 갖춰지면 젊은 의사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 여러 전문과목학회에서 전공의 수련과정을 역량중심평가로 체계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일부 학회는 매우 훌륭한 수련교과과정을 구축, 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시범사업까지 계획 중이다. 대표적인 필수의료과목인 외과의 경우 매우 오래 전부터 현장, 역량중심평가를 도입, 완성도 높은 수련체계를 갖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전공의 하나 하나에게 위임 가능한 전문 역량을 가르치고 현장에서 평가해야 하는 과정부터, 지도전문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교수나 전문의가 받아야할 교육 등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이 정도면 전공의를 제대로 가르치고 평가하며 전문의로 키워내는 일을 맡은 수련병원과 지도전문의에겐 엄청난 책임과 업무 로딩이 지워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렇게 잘 만들어진 수련교과과정도 지원자가 없으면 헛수고가 된다. 무엇보다 젊은 MZ세대 의사들이 ‘바이탈’과에 대한 로망, 열정과 지원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체계화된 수련과정도 없고, 일주일 내내 당직을 참아내며 전문의가 된 뒤의 라이프만 꿈꾸던 과거의 의사들 생각으로 지금의 젊은 의사들을 판단해선 안된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의료사고로 형사처벌하고, 전문의가 돼서도 하루 걸러 당직을 서야만 하며, 그에 반해 비보험 수술이나 미용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들에 비해 턱도 없이 낮은 대우를 받는 선배들을 보면서 그 어느 젊은 의사가 필수의료 과목을 지원할지 의문이다.

전공의법에 규정된 수련규칙을 지키면서 교육까지 제대로 하려면 전공의는 더 이상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일꾼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한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여러가지 원인으로 의료계 파업이 일어났을 때, 전공의가 빠진 종합병원들이 파행적으로 운영된 사례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되며, 전공의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병원이 당연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

최근 몇 년간 보험제도 변화로 뇌 MRI검사 건수가 엄청나게 늘었고, 우리 병원도 지난 3년간 매년 15% 정도 급증했다. 그에 비해 뇌신경영상을 보는 전문의 숫자는 그대로이다 보니 엄청난 양의 CT, MRI 판독을 매일 해야한다. 거기에 전공의가 옆에 앉아 있으면, 계속 가르치고 물어보고 고쳐주고 해야한다. 어느날 전공의가 휴가를 가니, 홀가분하게 훨씬 빠른 속도로 판독을 하게 되고 일 끝나는 시간도 빨라져서 좋기는 했지만, 역시 큰 보람은 학생과 전공의를 가르칠 때 느껴지는 것 같다. 물론 수술실, 중환자실의 경우와는 다른 상황이긴 하지만, 과에 관계없이 궁극적으로 전공의 수련교육은 지도전문의에게 막중한 책임과 시간을 할애해야하는, 힘들지만 고귀한 일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전공의 수련과정이 인턴 1년, 레지던트 3-4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의과대학 교육과정, 그리고 전문의 취득 후 교육까지 유기적으로 연계된 시스템을 만들고, 필수의료 영역에 대해 전주기적으로 교육수련이 되는 과정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양질의 의사를 양성, 장기적으로 국민보건의료 향상을 이룩할 수 있다. 각 대학, 민간의료기관에 맡기는 교육수련이 아닌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주체가 필요하며, 무엇보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지원이 요구된다.

- 이승구 대한의학회 수련교육이사, 연세의대 영상의학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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