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안병정 기자] 의과대학 정원 확대가 핫이슈다. 코로나 사태가 주춤해 지자 일부 지자체와 정치권이 '9. 4 의정합의'를 들며, 미뤄왔던 요구를 분출하기 시작한데다 필수의료 인력난이 불거지면서 여론이 급부상하는 양상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도 의대정원 확대 의지를 감추지 않고 있다.

물론 의료계는 개원 의사를 중심으로 의사 증원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다만 의료사회의 또 다른 축인 병원계는 ‘의사 구하기가 힘들다’며 “의대신설에는 반대 하지만 의대 정원은 늘려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혼란스럽다.


어쨌거나 작금 대두되고 있는 의대 정원 문제는 결코 간단치가 않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로 병원 문턱이 낮아졌고, 노인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의료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게 사실이다. 그런 반면 의사들은 낮은 수가체계 때문에 박리다매 식 서비스로 생명력을 유지해 왔다. 그 과정에서 ‘쉽고-편하고-안전한’ 분야만 추구하는 직업 문화가 고착화 되었고, 그 결과로 필수의료체계 붕괴를 가져왔다고 봐야 한다. 지역의료체계 붕괴 또한 인구 감소로 지방이 소멸되다시피 했고, 이로 인해 지방에서는 의료가 최소한의 시장기능을 갖추지 못한데서 비롯되는 것이 본질적인 문제다.


그럼에도 상황이 사회문제로 불거지자 정부가 내놓는 대책이 ‘의사인력 공급 확대’ 다. ‘공급이 넘치면 필수의료는 물론이고, 지방 벽오지를 가리지 않고 의사들이 살 길을 찾아 나설 것‘이란 계산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작금 야기되고 있는 필수의료나 지역의료, 또는 공공의료에 관한 문제는 ‘의사 수’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다. 낮은 수가체계, 열악한 근무환경, 의료사고 책임 등 의사들이 마음 놓고 진료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아 촉발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다면 정부나 정치권이 추구하는 '공급을 늘리면 넘쳐흐를 것'이란 기대는 현실과 괴리감이 크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현재의 왜곡된 의료체계를 그대로 둔 채 의사수를 아무리 늘려봐야 수적으로 늘어난 의사들은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의학의 분화를 비집고 들어가 의료서비스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또 다른 행태로 생존을 추구해 나갈 것이라며 악순환을 경고하고 있다.


이를 내다본다면 당장 의사부족에 집중하여 의사수를 늘리는 정책은 신중을 기했으면 한다. 그 보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왜곡된 의료체계를 바로잡아 기존 의사자원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의료의 건강성을 회복시키는 정책에 지혜를 모으는 일이 순서라고 본다.


그럼에도 의사가 총량적으로 부족하다면 당연히 의사를 늘려야 한다.
이러한 경우에도 제대로 된 의사를 양성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기존 의과대학에 정원을 늘려주는 방식이 옳다. 지역 안배나 정치적인 고려로 의과대학을 신설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결국 이런 엄중한 정책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따라서 전문가들과 충분히 논의할 것을 권고한다.


의사 전문가 집단 또한 피해의식만 가지고 무조건 반대만 해서는 안된다. 물이 흘러갈 수 있는 수로를 견고히 만드는 일에 진정성을 갖고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그래야 둑이 터져 의료라는 토양이 황폐화 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곧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다뤄질 논의에 앞서 의협과 병협이 충분히 소통하여 적어도 의사인력 문제에 관한 한 의료계가 단일대오를 갖추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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